학자적 양심이 담긴 literature review에 대한 경외
연구를 해서 논문을 써내는 일은 한 단계 한 단계 쉬운 게 없겠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특히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선행 연구 검토(literature review)'이다.
나는 대학 4학년 때 수강했던 수업 하나, 같은 학기에 청강했던 대학원 수업 하나에서 텀페이퍼를 한 번씩 써 본 것이 전부이고 논문다운 논문을 정말로 써 본 경험은 전혀 없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보건대, 선행 연구를 검토하는 단계에서 연구자는 자기 연구의 합리성, 독창성, 필요성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해 양심이 허락하는 한 가장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는 매서운 검증의 무대 위에 스스로를 올려 놓게 된다. 자기 아이디어에 대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애착심은 물론이거니와 상황에 따라 이 연구를 논문으로 내느냐 못 내느냐가 생계에 직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려하면, 선행 연구 검토 과정은 가히 비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과학철학자/과학사학자 장하석 교수가 저술한 책 <물은 H2O인가?>의 제1장은 ‘플로지스톤 이론’이 ‘때이르게 살해당했다’라는 내용을 주된 주장으로 하고 있다. 즉 ‘화학 혁명’ 당시에 라부아지에가 플로지스톤 개념을 축출하자고 주장하면서 플로지스톤 화학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자기만의 새로운 화학 이론 시스템이, 당시로서는 플로지스톤 이론의 시스템보다 결코 더 합리적이거나 뛰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당대 화학자들은 결국 플로지스톤을 버렸는데도, 그리고 지금도 현대 화학의 직계 조상으로 간주되는 것은 플로지스톤 화학이 아니라 라부아지에 화학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플로지스톤 화학은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합리적이었고, 라부아지에의 화학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이상한 데가 많아서, 현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렇지만 라부아지에가 살던 당시에도 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틀렸거나 덜 틀렸다고 간주할 상황이 못 되었다고 장하석 교수는 주장한다. 요컨대 이런 이야기이다:
"우리는 '플로지스톤 이론은 X를 오해했다'를 최종 결론으로 간주하는 버릇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또한 라봐지에 이론은 X를 옳게 이해했는지, 그 이론은 Y와 Z를 오해하지 않았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라봐지에 이론이 설명할 수 없었던(혹은 현대의 기준에서 볼 때 오해한) 것들을 무시하고 최소화하는 경향이 철학계와 역사학계 모두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
<물은 H2O인가?> §1.3.1. (144쪽)
(장하석 교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근거를 들어 가며 매우 꼼꼼하게 논하고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물은 H2O인가?>를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이 책이 당대 과학자들 사이의 정치적/사회적 압력 관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과장하는 일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으며, 책의 주된 논증은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당대의 과학적 관찰과 이론의 논리에 직접 관련된 근거에 기초한다. 또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플로지스톤 진영은 기존에 자기들이 오해했던 X에 대하여 나중에 올바른 X 관찰을 반영한 '수정판 플로지스톤 이론'을 내기도 했다는 점을 언급할 가치가 있겠다.)
이제 장하석 교수가 책을 쓰기 전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물은 H2O인가?>의 제1장이 과학철학 및 과학사학계에 꼭 필요하고, 모순이 없이 합리적이며, 독창적인 연구가 되려면,
1) '라봐지에 이론이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을 무시하고 최소화하는' 기존의 과학사 연구를 반박하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2) 라부아지에를 변호하고 플로지스톤의 축출을 정당화하는 기존의 연구 중에 장하석 교수의 생각을 확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연구나 근거가 단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3) 라부아지에가 성급했고 플로지스톤은 더 오래 살아남았어야 했다는 장하석 교수의 의견과 뜻을 같이하는 연구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장하석 교수가 이번에 제시하고자 하는 생각과 얼마나 겹치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했을 것이다. (보통 논문을 낸다는 것은 학계에 조금이라도 새로운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이 중에 특히 2)번의 조건이 내게는 가히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아무리 저자가 세계적인 석학이며 연구 경험이 풍부하고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지난 수백 년간 전세계에서 쌓여 온 과학사 연구 중에 저자의 생각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논증이 단 하나도 없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동안 라부아지에를 다뤄 온 과학사학자들도 모두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한 명 한 명이 모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이 문제에 접근하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선행 연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미처 몇 글자 써 보기도 전에 수십 년 전 누군가가 이미 저술해 둔 연구에 의해 반박당하고 '플로지스톤은 더 오래 살아남았어야 했다'라는 자신의 소중한 아이디어를 속절없이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자적 양심을 지키면서 수많은 양의 선행 연구를 꼼꼼히 검토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장하석 교수는 아마도 그런 시련을 잘 통과한 것 같다.
장하석 교수는 <물은 H2O인가?> 제1장 전반에서 수많은 선행연구를 인용하고 있지만, 특히 제3절에서 화학혁명의 합리성을 옹호하는(라부아지에의 편을 들어 주고 있는) 연구 중에 '가장 좋은 3가지'를 선별하여 소개하고서는 반박하고 있는데, 이 장면이 대단히 인상깊다.
아래 인용문에 등장하는 '키처'는 그렇게 선별된 3인 중 한 명으로서, 라부아지에를 옹호하긴 하지만 그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그나마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키처는 플로지스톤을 비방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보다 훨씬 더 신중하다. 그럼에도 라봐지에의 분석[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라는 그의 인정은 한 문단의 절반 정도로 급히 중얼거리듯이 개진되고, 꽤 긴 변론성 각주가 덧붙는다(278쪽과 각주70)."
<물은 H2O인가?> §1.3.1. (144쪽). (가독성을 위해 원문의 '-은'을 '-에'로 바꿨다.)
장하석 교수가 친-라부아지에 과학사학자들의 연구 중 그나마 가장 좋은 3가지를 '선별'할 수 있었다는 점, 키처라는 사람의 연구가 어떤 주제에 대해 '나머지 친-라부아지에 연구보다 신중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친-라부아지에 관점의 과학사 논저 대다수를 읽었다(적어도 양심이 허락하는 한 그렇게 주장할 만큼은 읽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위 인용문에서 '플로지스톤을 비방하는 사람들'이란 장하석 교수에게 있어 학문적 동료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자 적이었다. <물은 H2O인가?> 제1장에서 내세우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잠재적으로 자기 아이디어를 반박/폐기할 수도 있는 연구를 상당량 성실하게 독파한 것이다. (나 같았으면 자신의 의견과 정면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재미가 없어서라도 읽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사실 학자적 양심을 저버린다면 자기 주장을 반박하는 선행연구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방법도 있다. 인접 분야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남들은 보통 자기 연구에 대한 선행연구를 면밀하게 검증할 만한 시간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을 애초에 고려하지도 않는 양심적인 연구자에게라면, 선행 연구 검토라는 것은 몇십 시간, 몇 년의 노력과 생계의 안정성을 거는 위험천만한 도전이고 용기이며 연구에 진심과 긍지를 담는 멋진 작업일 것이다. 끝.
최근에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다룬 만화책 <로지코믹스>를 보면서 이러한 학자적 양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프레게는 러셀이 발견한 역설이 자기 연구의 기초가 된 법칙 한 가지를 무너뜨렸다는 것을 알고, (<로지코믹스>의 서술에 따르면) 처음에는 출판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으나, 결국 해당 법칙을 급하게 수정해서 부록에 첨부하여 출판하였는데, <로지코믹스>와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프레게가 해당 부록에 러셀의 역설이 자기 연구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문구를 덧붙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나는 외대 대학원 영어학과에 열린 구문문법 수업을 청강하면서 'a lot of NP'류의 구문을 가지고 핵어성(headhood)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는 내용의 텀페이퍼를 제출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청강생의 페이퍼를 검토해 주신 교수님께서는 저널에 투고를 해서 리뷰를 받아 보라고 하셨지만, 리뷰를 받기 이전에 나 스스로 (특히 '선행연구와의 차별성' 측면에서) 별로 자신이 없었다. 말을 만들자면 뭐라도 다르게 만들 수 있을 건 같았지만, 그렇게 할 만큼 스스로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 그때 다뤘던 현상과 관련하여 위에 인용한 '... 사람들의 대다수'라는 표현이 눈에 띄었는데, 나한테는 영어 직역투처럼 느껴지고 '... 대다수(의) 사람들'이 좀 더 전형적인 국어 구문처럼 느껴진다. 요컨대 국어에서는 수량이나 종류의 표현이 의존어인데 영어에서는 핵어 자리에 놓인다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다수의 X vs. a large number of X / ?X의 다수
일종의 X vs a kind of X / X의 일종...은 괜찮은 것 같다.)
포퍼가 반증주의를 개창할 때 아인슈타인이 자기 이론을 엄격한 반증의 무대에 두려움 없이 올려 놓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마 비슷한 감상인 것 같다.
그런데 반증주의가 뒤앵-콰인 논제 때문에 문제가 되듯이 선행연구를 검토하는 연구자는 어느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논문을 낼 당시에 선행연구가 자기 논문을 반박할 수 있는 듯 보이더라도, 아직 알지 못하는 데이터를 나중에 언젠가 새로이 알게 된다면, 기존의 데이터와 새로운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래는 근거가 빈약해 보였던 부분이 충분히 합리적인 주장으로 재확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게 장하석 교수가 <물은 H2O인가?>에서 "과학의 다원주의"를 역설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그치만 그렇다면 '마술' 류와는 어떻게 선을 그을까?
+ 다원주의를 추구하되 상대주의를 방지하는 해결책을 <물은 H2O인가?>의 뒷부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한번 잘 읽어 봐야겠다.
전에 썼던 글에 위의 이야기와 깊은 관련이 있는 내용이 있어서 가져와 본다:
“... 뉴턴 역학에 대한 이러한 유사반례는 천왕성 궤도 문제 말고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달의 공전 주기'와 '음파의 속도' 모두 처음에는 뉴턴 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였다.
심지어 뉴턴 자신 또한 그러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프린키피아를 발표했다.
(장대익 교수님의 책에 좀더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좀더 과거로 돌아가 보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천문학 패러다임이 바뀌던 시점에도 유사한 문제가 있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제안했던 시점에는 지동설로 설명할 수 없는 특이 현상이 오히려 천동설에 대한 반례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물론 그러한 특이 현상이 결국은 지동설에 대한 반례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지금의 과학 지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코페르니쿠스보다 나중 세대의 인류가 전에는 몰랐던 여러 정보에 접근하는 능력을 얻으면서 해결된 문제였을 뿐,
코페르니쿠스 자신에게는 그러한 특이 현상이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례가 아니라고 확인할 만한 경험적 근거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즉 코페르니쿠스도, 그의 지동설을 따랐던 자들도 일단은 지구가 돈다고 '믿고 본' 셈이다.
어쨌든 흥미롭게도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이 '지적 솔직함'을 위해 저러한 '반례'를 두고 자신의 이론을 곧바로 폐기하였다면
과학의 발전은 이보다 훨씬 늦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선행연구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매서운 검증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는 자양분이 될 때가 많을 것이다. <물은 H2O인가?>의 제1장도 어쩌면 화학혁명의 합리성을 결론적으로 옹호하기는 하되 라부아지에의 한계를 각자 하나씩 인정하는 여러 선행연구들을 확인하고 모으는 데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에 기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내 상상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