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은 표준일 뿐이다
비음 뒤의 [ㄹ]을 표준 발음으로 편입시키지 못할/않을 이유가 있을까? 이 유튜브 영상에서 기자는 '낙뢰'를 [낭뤠]로 발음한다(9번 중 7번). 표준 발음인 [낭눼]는 겨우 두 번 나온다.
국어 시험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누구나 알겠지만, 표준 발음법 안에서라면 /ㄹ/은 /ㅇ/ 뒤에서 항상 비음화되어 [ㄴ]으로만 발음된다. (유음의 비음화)
외람되지만 (규범 문법의 많은 내용이 그렇듯이) 지금의 언어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규정이라 할 수 있다. 비음화'만'을 표준으로 삼는 부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낙뢰'의 발음은 비음화 버전만([낭눼]와 [낭뇌]) 적혀 있다.
(와중에 [낭뇌] 옆 스피커 모양을 누르면 꽤 이국적으로 들리는 단모음 [ㅚ]의 발음을 들어볼 수 있다. 독일어 등에 있는 것과 유사한 원순 전설 중모음.)
[낭뤠]를 비롯하여 비음 뒤의 [ㄹ]이 표준 발음의 범위에 들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현상이라서일지도 모른다.
규범을 다루는 기관에서는 젊은 세대에서만 나타나는 언어 현상이라면 표준의 범위에 편입시키기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아마 규범이 기반으로 삼았을 옛 한국어에서는 [낭뤠] 유형은 아주 없거나 드문 발음이었고 [낭눼] 유형이 훨씬 많았을 테니 지금의 표준 발음법이 그런 모습인 거겠지.
(물론 낭눼가 더 많았을 거라는 생각도 미검증이고, 표준 발음법이 그렇게 된 것과의 인과 관계도 미검증이다)
그런 추측이 사실이라면, 비음 뒤의 /ㄹ/을 항상 무자비하게 비음화시켜 버리던 한국인들이 근래 들어 느닷없이 비음 뒤에서도 [ㄹ] 발음을 살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아마 이전 세대보다 문해율이 높아지면서 정서법에 대한 인식이 두드러져 그게 발음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즉 표기대로/표기에 가깝게 발음하려는 동기가 강해져서 [낙뤠]같은 발음이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 /ㅚ/에 대해서는 원순 전설 중모음의 단모음 발음이 ‘표기에 가깝다는’ 인식이 있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ㄹ]에 비해 [ㅚ]는 우리 세대가 일상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외할머니께서 한글을 처음 배우실 때 ‘운동화’를 ‘운두와’로 적으셨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정서법을 모르는 언어사용자에게 있어 어휘의 발음은 쉽게 변화하기 마련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낙뢰' 같은 단어는 '번개'나 '벼락'에 비해 입말보다는 압도적으로 글말에 많이 쓰일 것이라는 직관이 있다. 주로 글로만 쓰던 이런 단어를 입 밖으로 낼 때는 더더욱이나 표기를 의식하면서 발음을 할 것이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간에 나도 '낙뢰'를 소리내어 발음한다면 [낭눼]라 하기보단 [낭뤠]라고 훨씬 많이 말할 것 같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표준을 따라 [낭눼]라 말하는 게 [낭뤠]라 말하는 것보다 그 자체로 더 '좋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윤리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기능적으로는 언뜻 [낭눼]가 경제적이어서 [낭뤠]보다 나아 보이지만(비음-비음 연쇄 vs 비음-유음 연쇄 중 전자가 발음하기 편함),
반대로 생각하면
[낭눼]는 그 기저형 '낙뢰'에서 너무 많은 부분이 바뀌어 버린 형태이기 때문에
기저형의 /ㄹ/을 유지하고 있는 [낭뤠]에 비해 명확성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글로 적힌 <낙뢰>에 익숙한 화자가 [낭눼]를 들으면 머릿속 어휘 '낙뢰'를 활성화시키기에 충분한 단서를 주는 자극이 되지 못하는데,
화자는 가급적 청자의 이해를 도와 의사소통을 성공시키고자 하므로 [낭뤠] 발음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능적으로는 [낭눼]나 [낭뤠]나 어차피 각자 일장일단이 있다.
전에 블로그에 올렸던 이 글이 그와 관련한 내용을 다룬다.
각각의 경제성이 얼만큼이고 명확성이 얼만큼인지 수치로 계량화해 볼 수는 있겠으나 그건 내 역량 밖이고,
어쨌든 [낭뤠]가 등장하여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낭뤠]의 기능적 효용은 충분히 드러난다.
(이렇게 언어현상에 어떤 쓸모, 즉 기능적 동기가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보는 것은 형식주의와 대비되는 기능주의 언어학 사조와 유관하다.)
따라서 [낭눼]도 [낭뤠]도 모두 가치중립적인 언어현상일 뿐이고, 한국어와 그 공동체의 변화 과정에서 사회적인 우연에 의하여 (언어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한쪽이 규범의 선택을 받았을 따름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어문규범에 대해 말할 때 '바르다' '맞다' '옳다' '적절하다' 같은 표현을 쓰는 데에 거부감이 있다.
'표준이다'는 상대적으로 가치중립적인 서술로 느껴져서, 나는 '표준이다' '비표준이다'라고만 주로 말하는 편이다.
학교에서 국어 문법 수업 시간에 표준 발음법에 대해 가르칠 때,
[낭뤠] 같은 비표준 발음을 두고
마치 그것이 애초에 사람이 발음할 수 없는 소리인 것처럼 말할 때가 왕왕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표준 발음이 다른 발음보다 우선하는 데에 어떤 논리적인 필연이 있다는 잘못된 인식과
음성학에 대한 지식의 부족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내가 고등학교 때 들었던 국어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이런 말도 했었다.
(비표준 발음이 적힌 것을 가리키며) 여러분 중에 이거 이렇게 발음할 수 있는 사람 있어? 있으면 병원 가봐야 돼. 구강구조에 문제 있는 거야.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들은 다들 빵 터졌는데, 나는 웃음이 나오기는커녕 아주 기분이 나빴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꽤 잘 기억나는 걸 보면 정말 기분이 나빴나 보다)
사실 저 말이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윤리적으로 잘못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얼토당토않은 잘못된 지식을 전달한다는 게 싫었다.
물론 강의에서의 유머라는 건 원래 의도적으로 다소간 정확성을 희생하는 법이지만,
저 상황에서는 선생님이 정확한 내용을 따로 알고 있되 수업 중의 유머로서 가볍게 넘긴 게 아니라
정말로 비표준 발음은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라고 믿고 있는 거 같았다.
사실 한국인이 한국어 표준 발음만 구사하는 동시에 외국어 발음을 제대로 연습해 본 적이 없다면
정말로 비표준 발음이라는 게 논리적으로 배제된다고 믿을 법도 하다.
이를테면 [ㅇㄹ] 같은 자음 연쇄가 애초에 조음 불가능하다고 믿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선생님에게 악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모른다는 게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고 그걸 유머로 소비할 핑계가 되지는 않는다.
거칠게 말하면 그건 일종의 지적 태만이라고 본다.
선생님이 저런 말을 한 게 ㄹ의 비음화에 대해서는 아니었지만,
예를 들어 어떤 국어 선생님이 [낭뤠]를 두고 발음할 수 없는 소리라고 말하는 상황도 상상해 볼 만한데,
당장 영어 발음만 보더라도 비음 뒤에 유음이 비음화되지 않고 등장하는 예들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인간에게 발음 불가능한 음성 패턴일 리가 없다.
저런 말을 수업에서 듣는 학생들도 최소한 한두 명은 불편을 느끼거나 아니면 뭐가 맞는지 몰라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학생들에게 수업과 별도로 어느 정도 합리적인 해설을 덧붙일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외부자의 시선이 늘 그렇듯이 실제로 강단에 서는 사람의 어려움을 모르고 하는 말이지만...
한숨을 돌려 진정하고 보면,
사실 국어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낭뤠]가 인간이 할 수 없는 발음이라고 하든
아니면 내가 바라고 요구하는 대로 '[낭뤠]는 할 순 있는 발음이지만 비표준 발음이니까 시험에 나오면 틀렸다고 하렴'이라고 하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무슨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