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보들한 볼살, 마스크 자국대로 봄볕에 타고 또 하얗게 남아 있는 희한한 얼굴, 수박처럼 둥글 볼록한 배, 탱탱하게 착 올라붙어 실룩대는 궁둥이,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까르르 웃음이 터지곤 하는 이 사람은 아홉 살배기 내 아들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문득 돌아보니 9살 아들이었다. 남편보다 더 함께 있는 시간이 많고, 내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고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 남편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 그것을 말하다가 울컥 울음이 올라왔을 때도, 울지 말라고 다가와 나를 안아준 것은 아들이었다. 요즘 가르치는 학생이 수업시간에 버릇없는 행동으로 나를 속상하게 했을 때 그 이야기를 제일 먼저 털어놓은 것도 9살 아들에게였고, 그 형아를 혼내주겠다고 흥분해 복수의 쪽지를 전해달라며 써서 준 것도 아들이었다.
집에서 빈둥대는 시간에는 나와 함께 <한국은 처음이지?> 같은 예능이나 <빈센조> 같은 드라마를 보며 수다를 떤다. 어젯밤에는 학교 가기 전날이라 아들은 드라마를 보다 말고 일찍 자야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게 묻는다. "엄마, 어제 빈센조 어떻게 끝났어?"
<헬로 카봇>이나 <뽀로로의 대모험> 같은 만화 영화를 꾸역꾸역 참고 봐줘야 했던 시절이 오래지 않았는데, 신기한 일이다. 이 아이는 당연하게도 몇 년 전까지는 아기였는데,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함께 잠들 때면 우리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조금 읽다가(아빠는 보통 야근 중이다) 가위바위보로 불 끌 사람을 정한다. 불을 끈 뒤에도 이불 뺏기 놀이라든가, 오늘 하루의 일에 대한 수다가 이어지곤 한다. 나이 사십이 훌쩍 넘었는데도 아이랑 이불 뺏기 놀이를 하며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즐겁다. 시작할 때는 '아, 이런 유치한 거 해야 돼?' 하는 마음이었다가 어느새 나도 진심으로 까르르까르르 웃고 있다. 이런 순간은 아마도 많은 부모들이 경험했을 행복일 것이다.
이런 나의 절친이 몇 년만 지나면 나를 떠나가리란 것을 안다. 나를 고리타분해하고 답답해할 날들이 올 것이다. 성장이란 이름으로.
그때는 웃는 얼굴로 쿨하게 물러날 수 있기를.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절친의 학교가 끝나면 함께 포켓몬 카드를 사러 갈 예정이고, 맛있는 간식을 나눠먹을 것이다.
그렇게 추억은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