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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녀 Jan 26. 2022

(0125)사소하고도 무한한 집안일

집안일이란...... 얼마나 하찮고도 사소한가.

어느 날 아침 나는 보통날처럼 이런저런 나의 할 일들을 했다.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이것....  지치는 느낌이 들었다. 가짓수가 너무 많았다.  


사소한 아침 집안일의 목록

1.  일어나서 거실로 나와 환기를 위해 창을 열기

2. 밤사이 강아지가 싼 응가를 휴지에 싸 변기에 버리기

3. 강아지가 사용한 배변 패드 돌돌 말아서 쓰레기 통에 버리기

4. 강아지가 소변 실수한 자리 물티슈로 닦기

5. 새 강아지 배변 패드 꺼내서 탁탁 펼쳐서 깔아 놓기

6. 가습기에 물 채운 후 켜기

7. 만화 시청 중인 열 살 아들 콧구멍에 바셀린 바르기(건조하면 자꾸 코피가 나기 때문에)

8. 어제저녁 설거지해 놓은 그릇들 제자리에 정리하기

9. 열어 두었던 창문 닫기

10. 간단한 아침 만들기(주먹밥, 누룽지, 토스트 등등)

11. 아침밥 차리기

12. 수저 놓고 냉장고에서 물통 꺼내기

13. 강아지 사료 주기

14. 밥을 먹은 후 아들에게 과일 깎아 주기(변비 쟁이 아들이라 과일 필수)

15. 남은 반찬 냉장고에 다시 넣고 그릇 정리하고 행주로 닦아 식탁 치우기

16.  설거지 하기

17.  강아지가 남긴 사료 다시 사료통에 넣기


여기까지 완료해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물론 이것은 방학 버전의 아침 집안일이다. 학기 중에는 아들을 학교에 제시간에 보내기 위한, 여러 가지 일정이 추가된다. 어쨌든 방학 버전의 아침 집안일은 열일곱 가지인 셈이다.

(불쌍한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그를 위한 집안일이 없다. 가끔 남편이 아침을 먹고 갈 때에는 또 한두 가지가 추가된다. 그러니까 최소의 아침 집안일이 열일곱 가지라는 소리다.)

아침이 이러할진대 종일의 집안일이란 그 가짓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터. 매일의 집안일을 반복하다 보면, 기본적인 집안일만으로 이미 지쳐서 꿈을 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대한 꿈 말이다. 여분의 체력과 에너지가 있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언젠가는 하고 싶은 집안일 목록

1. 결혼 10년이 지나며 고장 나고 부분적으로 바스러진 가구 고치기(쉬운 일이 아니다. 고칠 곳을 알아봐야 하고, 맡겨야 한다. 신혼 때 홍대 앞 목공방에서 산 가구들인데 샀던 곳이 없어졌다.)

2. 거실에 있는 싸구려 장식장을 없애고 요즘 유행하는 모던한 usm 장식장 구입

3. 남편이 총각 때부터 보던 오래된 우리 집 TV를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최신 TV로 교체

4. 아들방의 잡다한 짐들을 버리고 정리

5. 남편이 베란다 한편에 쌓아둔 캠핑 짐들을 깔끔하게 수납

6. 주방에 묵은 기름때를 싹 닦아내고, 냉장고도 속 시원하게 청소

7. (역시 짐이 문제다)처지 곤란의 거대한 결혼 액자, 거금을 들여 산 이제는 듣지 않는 오디오 세트들을 서운하지 않고 아깝지 않은 방법으로 없애기

기타 등등, 기타 등등.


하지만 오늘도 나는 기본 집안일도  마무리하지 못한 (벗어놓은 옷가지와 마른 빨래로 어지러운 거실은 대로  )하루를 마감한다.

내가 본 유튜브 속 집들은 참 예쁘던데. 어떻게 그렇게 수납도 잘 되어 있고 깔끔할 수 있는 걸까. 도우미 아주머니들이 계시는 것인가. 내가 살림 똥 손인 것인가. 그 집들이 커서 수납이 쉬운 것인가. 수납용품과 수건까지 깔맞춤 하는 그들의 열정 앞에 오늘도 나는 작아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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