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 시대의 바캉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택시를 타고 15분쯤 달려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저층의 방갈로풍 빌라가 언덕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느낌의 리조트였다. 리셉션 데스크는 외부로 트여 있는 방갈로풍 지붕을 이고 있었고, 뒤로는 작은 연못과 정원을 숨기고 있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와 현지 시간으로 새벽 6시에 호텔에 도착한 우리 셋은 몹시 피곤했다. 빨리 호텔방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얼리 체크인이 가능한 방이 없었다. 이렇게 극심한 비에 호텔이 만실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예상치 못하게도 윤우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이 호텔이 싫고 집에 가고 싶다며 울었다.
“엄마, 나 여기 싫어. 무서워. 그냥 다시 집으로 돌아갈래. 으허헝~”
“윤우야, 다시 집에 가려고 해도 비행기 타고 또 한참을 날아가야 돼. 그리고 지금 탈 수 있는 비행기도 없어.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밖에 있다가 이따 호텔로 들어가서 쉬자.”
아이를 안고 부드러운 말로 달래 봤지만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윤우가 자꾸 우니까 비가 오는 축축한 마음에 더해 나까지 무서워지려고 했다. 윤우는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윤우에게 새로운 것은 신나고 설레기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리조트 직원에게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추천받았다.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쏟아지고 있었고 우리는 정처 없는 난민 같았다. 그곳에서 밥을 먹는다 해도 오후 2시까지 이 빗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다는 말인가. 다행히 아이의 울음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다.
택시가 내려준 식당은 허름하고 지저분했다. 시장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 골목에 위치한 식당이었는데, 길 쪽 빈터에는 식당의 아주머니와 딸들이 채소를 잔뜩 바닥에 부러 놓고 손질하고 있었고, 식당 문 옆으로는 육수를 끓이고 면을 삶는 조리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면 종류를 선택하고 문으로 들어가 식당 안 테이블에서 음식을 기다리는 식이었다.
현지 사람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전에, 또는 하던 중에 잠깐 와서 한 그릇 먹고 가는 식당 같았다. 관광객과는 어울리는 않는, 똥파리들이 나른하게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난 일단 근처에 우산 파는 데가 있나 보고 사 올게.”
“잠깐만. 구글 지도 좀 확인하고 가.”
다행히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마트가 있다고 검색되었다. 남편이 우산을 사러 간 사이 뜨끈한 국수가 나왔다. 한국에서 먹던 쌀국수 질감과는 전혀 다른 면발이었다. 불투명한 하얀 빛깔에 단면이 동그랗고 통통했다. 식감도 쫄깃함이 없이 툭툭 끊어지는 것이 쌀이 아니라 밀로 만든 국수인가 싶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그들은 영어를 몰랐고 우리는 베트남어를 몰랐다. 국물에는 쫑쫑 썬 쪽파와 투박하게 잘린 짙은 색의 덩어리 고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중 한두 덩이는 아마도 간 같았다.
“벌써 나왔네.”
남편이 우산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꽤 멀리까지 갔던 모양이다.
고추와 라임이 가득 담긴 바구니에 굵고 검은 파리가 자꾸만 앉았다 날아갔다 했다. 고추를 잘라 넣고 라임을 짜 넣어 보았지만 국수는 그다지 맛있어지지 않았다. 어느 부위인지 짐작되지 않는 큼직하고 투박한 고기들도 먹기가 꺼려졌다. 우린 너무 말끔한 도시에서 온 것이다. 국수는 절반쯤 남기고 말았다.
“리조트 직원은 왜 이런 곳을 추천해 준거야?”
“글세. 아마도 아침 일찍 문 여는 곳이 별로 없어서인가.”
대충의 허기만 때운 채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빗줄기는 좀 약해졌지만 여전히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윤우에게는 우비를 입히고 우리는 각각 한국에서 가져온 우산, 현지에서 산 우산을 쓰고 길을 나섰다. 식당 입구에 걸어놓고 판매하는 우비가 그제야 눈에 띄었다. 괜한 고생을 했다.
우리는 커피라도 근사한 곳에서 마셔보겠다며 구글 지도를 검색하면서 방향을 잡고 걸어갔다. 카페 따위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시장 초입의 길이었지만, 지도로는 한 두 블록만 걸어가면 카페가 나온다고 했다. 국숫집 옆으로는 채소과 과일, 그리고 개구리까지 함께 파는 노점이 있었다. 또 그 옆으로는 자전거나 농기계를 고칠 법한 수리점이 있었는데, 불룩한 배로 러닝 바람을 한 베트남 아저씨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우리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스마트폰을 등대 삼아 남편이 앞장을 서고 나와 윤우가 뒤를 따랐다. 이미 우리의 발은 길 가장자리를 따라 개울을 이루며 흐르는 누런 빗물에 흥건히 잠겨 버렸다. 발이야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었지만, 그 물이 시장과 도로의 지저분한 모든 것을 씻어내면서 흐른다는 점에서 몹시 불쾌했다. 이렇게 축축하고 낯설고 불쾌한 아침을 나중에 우리는 여행의 추억으로 떠올리게 될까. 끝도 없이 꿀렁꿀렁 이어지는 갓길의 황토색 물줄기를 보면서, 홍수에 가까운 이국의 재난 한복판을 헤매고 있는 우리 세 사람의 미래가 애처롭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