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아도 배부를 때가 있었다

by 사피엔




허기와 감각 사이에서, 인간은 무엇을 삼키는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때가 있다. 경험상, 딱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사랑을 하고 있을 때.

정확히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감각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그럴 땐 이상하게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았다.

그 사람의 말 한마디, 그의 문자 한 줄이면 포만감이 차올랐다. 까짓, 탄수화물쯤이야.



두 번째는 무언가를 이루고 있을 때.

도달 가능한 목표가 눈앞에 있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의 내가 괜찮다 느껴질 때. 그건 거의 사랑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사랑의 대상이 ‘나 자신’으로 바뀐 것뿐.



욕망이 충족되고 있는 순간엔, 욕망이 사라진다. 사랑과 성취가 주는 포만의 본질 때문이리라.



그러나 인간은 늘 그렇게 충만하게 살 수만은 없다.

살다 보면, 충만이 아니라 결핍이 일상처럼 깔려 있는 시절이 있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긴요하게 필요한 시기. 마음이라 불리는 것이 충만치 못하면 먹어도 먹어도 허해서

맛있는 것에 집착하고, 음식 앞에서 절제가 무너진다.



헛헛함을 손쉽게 해결하려는 본능적 욕구.

밥 앞에서 우리는 때때로, 사랑의 부재를 탄수화물로 대체하며 살아간다.



니체는 말했다.



“인간은 의미를 잃을 때, 쾌락을 탐한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 사실은 결핍의 본질을 부정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면, 우리가 음식에 기대는 방식은 그저 생존의 문제가 아니다.



포만은 위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깊은 허기는 “살아 있다는 감각”의 결여이고, 가장 잔인한 기만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입을 바쁘게 움직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어떤 것을 구별하려 애썼다면 그건 단순한 미적 판단이 아니라 내 허기를 직면하는 훈련이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는 감각. 혹은 배가 불러도 비어 있을 수 있다는 자각.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는 오늘을 그저 흘려보내는 대신, 조금은 더 정확하게 감각하고 싶었다.



비 오는 수요일.

읽어야 할 책은 쌓였고, 해야 할 공부는 미뤄졌다. 종일 먹고, 뒹굴거리고, 또 먹고, 빈둥거렸다. 그토록 그리던 하루건만, 결핍과 자책만 남는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감각 하나쯤은 분명히 남았다고 변명한다.




제주도, 올 해는 패스




빈둥거리던 중, AI한테 사진을 주고 이미지로 만들어 달랬더니, 이렇게 해놨다. 우리 집 AI는 어딘가 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