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인의 제주살이, 4개월간의 기록 3
만사가 지겨웠던 그해 3월.
불안, 무의미, 헛된 욕심, 권태. 그 모든 것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마음이 굴뚝같았다.
차부터 보내면, 내 몸도 따라가겠지. 그렇게 탁송부터 해버렸다. 말하자면, 도망이었다. 간절한 휴식도 아니고, 치밀한 계획도 아니었다. 그냥 어디든, 여기 말고 어디든. 아프지 않은 풍경 속이라면 어디든.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거리라면 더더욱.
다행히 아들과 여러 번 다녀온 제주는 내게 애틋하고 그리운 곳이었다.
돌담 너머로 바람이 달리고, 꽃들은 하늘을 향해 춤을 추고, 사방으로 초록이 넘실대는 섬 ㅡ 제주.
깨끗한 호텔 방에서 눈을 뜨면 믹스 커피를 들고 창가에 오래 서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바다가,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돌담과 벚꽃과 이름 모를 꽃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믹스 커피의 달착지근한 향과 함께,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고요를 깨웠다. '오늘은 어딜 가볼까' 느긋하게 지도를 들여다 보고, 사람 하나 만나지 않아도, 그 어느 날보다 공들여 화장을 했다.
하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잠깐 스쳐본 꽃으로 '누렸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구경은 했지만,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고 풍경은 있었지만, 이야기 하나 생기지 않았다.
나의 제주 여행은 그렇게 1주일 만에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으니, 슬슬 지갑에 신경이 쓰이고 어쩔 수 없이 끼니를 줄이며 숙소 제공 알바 자리를 구하는 순간, 내 자유와 낭만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가난한 자의 화무십일홍이여! 벚꽃보다 짧았던 내 낭만은, 카드 잔액처럼 덧없고, 명백했다. 그토록 바라던 '혼자의 낭만'은, 현실이라는 이름의 계산기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고, 결국 사라지지 않는 건 배고픔과, 언제 올지 모를 잔액 부족 문자뿐이었다.
제주 여행 첫 일주일은 김밥 두 줄, 컵라면 하나 그리고 캔맥 두어 개가 내 하루 식량이었다. 여행치곤 몹시도 초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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