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부재 아홉 번째 <고독 없음>
– 고독 없음, 그 위험한 착각
혼자 영화 보고,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카페에 앉고, 혼자 여행을 간다.
‘혼밥’, ‘혼술’, ‘혼영’은 어느덧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되었고, 고독은 유행처럼 한껏 포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고독의 미화지, 고독의 직면은 아닐지 모른다
‘혼자 있는 척’은 하지만 정작 ‘혼자 잘 있지 못하는'사람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배제하지 못한 채 인스타그램에 커피 사진을 올리고, 익명의 커뮤니티에 외로움을 품은 말장난을 던진다. 그러나 그 고독은 팔꿈치에 걸쳐둔 외투처럼 스쳐갈 뿐, 몸에 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고독을 겪는 대신, 고독을 소비한다.
이 사회가 아직 고독에 관대하지 않기 때문일까.
연애를 하지 않으면 ‘문제’로 취급되고, 모임에 자주 빠지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혼자라는 이유만으로 결핍, 불완전, 실패의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를 끊지 못한 채, ‘진짜가 아닌 연결'만이라도 가까스로 붙잡는다. 침묵으로 가득한 메신저 속 단체 대화방, 감정 없는 손가락이 눌러대는 '좋아요'. 공감보다 ‘접속’을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진짜가 아닌 관계의 네크워크에 겹겹이 둘러쌓여 살아간다.
‘잘 지내는 모습’처럼 연출된 그 무대 뒤에는, 상대의 농담에 억지 웃음을 맞추느라 자신의 감정을 숨긴 사람, 하루 종일 누구와도 진짜 대화 한 줄 나누지 못한 채 단체 채팅방에 ‘ㅋㅋ’만 흘린 사람, 단지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워 의미 없는 식사 약속을 반복하고, 솔직한 감정은 비워둔 채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진짜가 아닌 것 앞에선 온갖 병이 난다. 그리고
이건 단지 내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고독 없음’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병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정작 아무와도 닿아 있지 않다.
나는 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본다.
이따금 누군가와 밥도 먹고, 카페에서 수다도 떨지만 그런 일은 드물게 있다. 정말이지, 사람은 내게 피곤한 존재다.
한두 번쯤은 괜찮다. 대화를 하고, 웃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가 길어질수록, 그들의 말에 실린 감정의 결, 표정의 온도, 숨겨진 의도 같은 것들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그 순간부터 정나미가 떨어진다. 들고 있는 잔만큼의 무게조차 감당되지 않는 마음.
그걸 견뎌야 하는 순간, 나는 병이 난다. 머리가 무겁고, 속이 답답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워진다.
진짜가 아닐때 찾아오는 병. 까탈 병 혹은 지랄 병?사람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가짜 사람됨’, '얕은 관계'를 견디지 못할 뿐이다.
허용된 역할을 연기하듯 살아가는 얼굴, 익숙한 제스처로 ‘괜찮은 사람’의 외피를 뒤집어쓴 말들.
내 몸은 그것을 먼저 알아챈다. 어색한 표정의 미소, 관심 없는 대화에 넣는 ‘적당한 감탄’, 그리고 진심이 아닌 것들을 주고받으며 생기는 이상한 친밀감.
나는 그런 얇은 친밀감을 혐오한다. 무해한 듯 다가오지만, 실은 감정을 탈색시키고, 마음을 정형화시키는 위선과 가식.
진짜는 보기 드물다. 어쩌면 나 역시, 완전한 진짜로살지 못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타인을 탓하기 이전에 나는 먼저 나를 검열한다. 이건 자기 혐오가 아니라, 진짜를 향해 살아가고 싶다는, 몸의 신호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꾸만 거리를 두는 것이다.
오해받더라도, 혼자이더라도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없는 관계라면 ‘예의’보다는 ‘거리’가 편하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병이 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혼자가 된다. 이건 단절이 아니라, 병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거리두기다. 진짜가 아닌 관계 속에서 파열되기보단, 진짜인 나를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소맥으로 고독을 삼킨다. 왜냐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역사상 가장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역사상 가장 ‘고립된’ 상태를 통과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존 카시오포(John Cacioppo)는 이것을 “외로움의 역설(loneliness paradox)”이라 불렀다. 사람들이 SNS나 단체활동, 그룹 채팅방 안에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음에도, 정작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고 있지 않다”는 고립을 느낀다는 것이다.
카시오포는 말했다.
“외로움은 단지 사회적 고립의 결과가 아니라,
무의미한 관계 속에 있을 때 더 깊어진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Adam Grant) 역시
“사회적 피로감(social fatigue)”을 지적했다.
‘진짜 연결감(authentic connection)’을 갖지 못한 채 표면적 대화만 반복될 때, 오히려 감정 소모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뇌 과학으로도 뒷받침된다. 미국 UCLA의 리버만 교수는 ‘사회적 거절이나 무의미한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육체적 통증과 동일한 뇌 영역(전측 대상피질)을 자극한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즉, 가짜 친밀감은 그냥 피곤한 걸 넘어, 신체적 스트레스와도 동일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안의 뾰족한 감각들을 감추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혼자가 아니다. 단지, 진짜 연결을 위해 참고 기다릴 뿐.
고독을 피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고독에 지배당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혼자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야말로 '혼자'여서,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그래서 오늘도 진짜를 기다리며 고독과 ㅡ 아니, 소맥과 동행중이다.
염병할.
- 사. 피. 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