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인의 제주살이, 4개월 간의 기록 5
5화. 같이 죽고 싶었던
- 사의 찬미
1926년 여름, 윤심덕과 김우진은 스물아홉의 나이로 현해탄에 몸을 던졌다. 당대 최고의 성악가이자 신여성. 그리고 자유와 예술을 꿈꾸던 유부남 극작가.
금기와 시대의 벽 앞에서, 그들이 끝내 택한 건 사랑과 죽음을 한 줄에 묶는 일이었다. 그들의 마지막 기록은 윤심덕의 목소리로 남은 음반 한 장. 세상은 그것을 〈사의 찬미〉라 불렀고, 죽음을 동반한 사랑은 곧 신화가 되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들의 사랑을 잊을 수 없었다.
같이 죽을 수 있는 사랑이라니—그것만큼 뜨겁고, 그것만큼 완전한 것이 또 있을까.
그해, 언니는 집 앞에 새로 생긴 만두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며 말했다.
“너 오면 같이 가자.”
할머니가 주물럭과 갈치, 반찬을 한가득 해서 보내셨다고, 아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이건 혼자 다 못 먹어. 엄마 언제 와?”
20년지기 친구는 톡을 보냈다. 예쁘고 조용한 식당을 알아뒀으니, 나중에 같이 가자고.
밥은, 삶이다.
나를 알고, 이해하고, 때로는 연민하며 여전히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밥 먹자”고 말할 때,
나는 그 말 속에서 “빨리 와.” “보고 싶다.”는 뜻을 읽는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모든 부름을 외면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파동도 없는 무료한 일상. 밥조차 건너뛰며 태엽을 감아 살아가는 인형처럼 건조했지만, 묘하게 편안했던 제주에서—
나는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헛된 기대와, 현실을 저버린 환상을 조용히 죽여가고 있었다.
내가 떠났다는 사실도 모른 채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그. 그의 부재조차 나를 붙잡고 있었지만, 내가 정말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던 존재가 누구였는지는—
그 섬에서, 결국 하나의 사건을 통해 또렷해졌다.
코로나.
남들은 한두 번 앓고 지나갔을 무렵, 나는 처음으로 바이러스에 쓰러졌고, 혼자서 죽음을 앓듯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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