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배움들

과잉의 진료, 혹은 관심이라는 이름의 피로

by 사피엔





호텔에서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너무 적은 관심’만큼이나 ‘너무 많은 관심’도 문제라는 걸 배운다.

의외로 둘 다, 타인의 피로를 낳는다.



얼마 전, 서귀포 이마트 근처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단순한 비염이었다.

그런데 진료는 비염보다 훨씬 복잡했다.



“육지에서 왔어요?”

“제주도엔 얼마나 있을 예정이에요?”



의사의 첫 질문이 코가 아니라 거주지였다.

나는 잠깐, 비염 환자가 아니라 이민 심사를 받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답변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거, 저거, 그거’ 검사를 줄줄이 나열했다.



순식간에 내 몸은 실험실이 되었고,

비염은 어느새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 있었다.

내 안의 세균들이 항복 선언을 준비하는 동안,

의사의 처방전은 한 장, 두 장 늘어났다.



항생제, 스테로이드, 비염약, 진통제, 기타 등등.

내 가방보다 큰 약봉지를 들고 귀가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내 코에 군단이라도 주둔 중인가?”



비염은 죄가 없었다.

과잉이 문제였다.

의사의 ‘열심’은 환자의 피로가 되어 돌아온다.



나는 제주에 와서 자연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지만,

결국 가장 많이 삼킨 건 약이었다.

숨 좀 고르러 온 섬에서

숨을 막히게 한 건 비염이 아니라,

과잉의 진료였다.



호텔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어떤 이는 필요 이상으로 닦고,

필요 이상으로 점검하고,

필요 이상으로 간섭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그들은 타인의 리듬을 지워버린다.



과잉은 언제나 선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그러나 그 선의가 쌓이면 결국 피로가 된다.

나는 이곳의 이비인후과에서 다시 배웠다.



과잉은 돌봄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타인의 리듬을 침범하는 폭력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사의 얼굴엔 묘한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처방이 옳다는 확신,

그리고 환자가 묻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 두 확신이 합쳐진 얼굴은,

어쩐지 돌팔이보다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