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부재 다섯 번째 - 존재 없음
오래전에 외면했던 슬픔과 죽음, 이제 말해지며 비로소 인정된다.
나는 너를 외면했고, 버렸고, 잊었다. 끝낸 줄 알았던 너.
그러나 이상하게도, ‘존재 없음’으로 밀어낸 네가 오히려 내 안에 더 깊게 남아 있다.
1. 존재는,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더 자주, 묻힌다.
‘존재 없음’은 반드시 죽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존재는 타인의 인식에서 지워지고, 또 어떤 존재는 스스로의 의지로 외면되며 묻힌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없었던 것도 아니다. 살아 있었고, 존재했다.
다만, 살아가기 위해 애써 지워냈을 뿐이다.
묻어버린 꽃 –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존재들
2. 나는 여러 번, 누군가를 묻었다.
어린 시절. 한 친구가 있었다.
학기 초, 그 예쁜 아이와 친해진 나는 아무런 맥락도 없이 물었다.
“넌 왜 한 달이 넘도록 절뚝거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친구가 소아마비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하교 후, 교문까지 함께 걷던 그 친구와 나는 다른 방향으로 헤어져 집으로 가곤 했다.
갑자기 비가 내린 어느 날 오후.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나를 마중 오셨다. 나는 교문 앞에서 아버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며, 아무 말 못 한 채 친구를 등졌다. 우리는 방향도 달랐지만 당시 난 아버지가 어려웠다.
아버지 자전거에 올라, 우산 속에서 나는, 절뚝이며 혼자 걸어가는 친구의 젖은 어깨를 봤다.
그 친구와 가까워질 수 없게 된 것은 그날 이후였다. 아버지의 우산은 내게 안락함이 아니라, 죄의식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 친구의 이름도, 얼굴도 잊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평생 나를 따라다닌다.
3. 내가 묻은 아이 두 번째, 사랑을 주었던 내 영원한 단짝.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예쁜 엽서에 시를 필사해 주고, 날마다 손 편지를 건네던 아이.
연필과 지우개를 꼭 두 개씩 사서 반은 내게 주고,
매 해 첫눈 오는 날엔 팥죽을 사주던 아이.
그 아이는, 자신의 슬픈 삶을 단 한 번 이야기했었다.
“난 태어나자마자 외갓집에 버려진 아기였어.
엄마는 아들을 낳아주기로 한 씨받이였대.”
친구의 방에서 나는 그 고백을 듣다 잠들었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그 아이에게 받은 것만 기억하고, 돌려준 것은 없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는 일본 유학을 다녀와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년 후, 암에 걸려 퉁퉁 부은 얼굴과 절룩이는 다리로 나를 찾아왔다.
혼자 아이를 키우던 내게, 봉투 하나를 내밀던 친구.
“애기 맛있는 거 좀 사줘.”
몇 달 후, 친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꼭 한 번만 와달라고 말했다.
나는 가지 않았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이유를 만들었지만 실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느 날, 혼자 병원에 갔을 때도, 병실 앞에서 다시 돌아섰다. 나는 사랑을 잃는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장례식엔 인파가 가득했다고 들었다.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던 아이,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던 아이. 그런데 나만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런 친구를 둔 적 없는 사람처럼,
내 아이를 더욱 꼭 끌어안은 채, 친구의 이름을 기억에서 지웠다.
4. 부재한 존재에게는 닿지 못해도, 스스로에게는 반드시 닿는다.
지워진 존재가 아니라, 내가 묻어버린 존재들.
말을 꺼내는 순간, 이제 나는 부재를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하려는 사람이 된다.
묻어버렸던 존재를 다시 불러내는 이 글쓰기는 사라진 꽃을 꺼내 물 주는 일이기도 하고, 그 곁에 쓰러져 있던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친구에게 가지 않았지만, 여전히 그 병실 앞에 서 있다.
우산 아래로 숨던 날, 자전거 뒤로 멀어지던 그 친구의 자리에도 나는 여전히 머물러 있다.
나는 어쩌면, 단짝 곁에 내 영혼도 묻힌 채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 이후, 오랫동안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내지 못했으니까. 사실 한 사람이 더 있다. 내가 묻은 존재. 하지만 그 이야기는 끝내 꺼내지 못할 것이다.
5. 존재 없음은 가장 오래 남는 감각이다.
누군가에게 전해져야 할 말이, 대상의 부재로 닿을 수가 없다. 그러니 결국, 이 글은 살아남은 내가, 사라진 존재들을 통해 다시 나를 회복하는 기록이다.
‘존재 없음’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묻혔을 뿐,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
없지만, 가장 뜨겁게 존재했고, 아직도 남아 있는 너에게.
이 글은 사과이고, 기도이며, 회복이고, 고백이다.
말해지지 못했던 그 시간의 끝에서 ㅡ 나는 마침내, 너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