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버는 아닙니다

12개의 부재 여섯 번째 - 말 없음

by 사피엔




영화배우급 이상의 준수한 외모를 지닌 나의 아버지는 평생 한량, 바람둥이로 사셨다. 엄마에겐 큰 한을 남긴 아버지가 아줌마들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모습을, 나는 밥그릇의 밥알 수만큼이나 질리도록 보고 자랐다.



그런 아버지가 유독, 말은 느리게 하셨다. "으응..... 그 때....그러니까....."라고 운을 떼면, 다음 문장은 해가 넘어가도록 오지 않았다. 엄마는 그 사이 무를 썰었고, 숨죽인 나는 속으로 열댓 개쯤의 문장을 상상했고, 외삼촌은 아버지 말을 못 들은 사람처럼, 자기 할 말만 했다.



남들이 자기 얘기를 다 하고 돌아서면, 그제야 아버지 입에선 다음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운을 띄운 첫마디와 이어질 다음 마디 사이에는 시장에 다녀와 장바구니를 풀어놔도 넉넉할 만큼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은 종종, 바람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무시당한 문장들, 끝나지 않은 말들, 공중을 떠돌다 사라진 생각들. 나는 아주 오랜 시간, 그 모든 장면들 속에, 조용히 있었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가 무슨 말을 꺼내면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 사람들의 얼굴부터 살핀다. 누가 아버지 말을 제대로 듣고 있는지, 감시라도 하듯.



그런데 웃긴 건, 그 긴장을 타고 눈치를 보며 자랐던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았는지 말을 느리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굴리다 반려되는 말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퇴장하는 말들.



이런 내가 '할 말 없는 사람'으로 보일 확률에 대해선 굳이 짐작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지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도 책을 읽긴 하냐?"

우리는 나이 들어 만난 직장 동료이자 술 친구였고, 수다스러운 그녀에 비해 나는 늘 "응, 아니" 정도의 짧은 말만 겨우 구사했으니, 그런 말을 들을 만도 했다.



나는 사람들의 말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며 듣는 편이다. 말로 빠르게 반응하지 않을 뿐.



직업상 상담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으로 학부형과 통화라도 하면, 나는 늘 듣는 사람이 된다. 엄마들이 아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선생님" 마무리까지 지은 뒤에야 나는 조용히 전화를 끊는다.



내게도 할 말은 많지만, 타이밍은 빠르게 지나가고 말은 그 사이에서 놓친다.



말을 아낀다는 건 신중해서일 수도 있고, 한 번 꺼낸 말을 책임지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말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중심이 되고, 반응 빠른 사람이 유능해 보인다. 생각이 없어도 말을 잘하면 인정받고, 생각이 많아도 말을 못하면 잊힌다.



말이 느리고, 말이 적은 사람은 주변인으로 머무르거나, 가끔은 생각 없는 사람,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말하지 않는 이들의 고요 속에 말 많은 이들이 듣지 못한 것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생각 없음"의 전형이라 본다.



나는 늘 말 대신 문장을 들고 늦게 돌아오는 사람이다.



솔직히 아버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부녀가 어버버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