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부재 네 번째 - 돈 없음
옛날, 원숭이를 잡기 위해 사냥꾼은 작은 항아리 속에 땅콩을 넣었다.
배고픈 원숭이는 손을 넣어 땅콩을 움켜쥔다. 하지만 땅콩을 쥔 채로는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 없고, 결국 그 손을 놓지 못한 대가로, 원숭이는 잡힌다. 쥐고 있는 그것이 덫이 된다.
이 우화는 과한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적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정반대로 읽게 된다. 원숭이는 '욕심'때문에 잡힌 게 아니다. 배고팠기 때문이었다. 쥔 손을 놓지 못한 건, 그 한 줌이 살기 위한 전부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뭔가를 쥐고 산다. 돈, 명예, 권력, 인간관계, 때론 좋아요와 조회수 같은 것들.
계산은 생존이고 효율은 품격으로 통하는 시대에, 무언가를 쥐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곧 이 사회의 낙오자, 실패자로 불린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지나친 경쟁과 인간성 상실, 환경 파괴 등의 결과를 야기하자, 최근엔 친환경, 윤리적 소비, 가치 중심 구매...이른바 착한 소비가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꿈꾼다.
기업들이 홍보에 써먹는 착한 이미지와 보여주기 위한 선의에 장단 맞추고 싶지도 않고, 그 모든 슬로건이 진심일지라도, 나는 윤리와 가치, 공동선 같은 말을 꺼낼 처지가 아니다. 나는 그저, 손해 보지 않고 살아남는 인간이 되고 싶다. 이득을 따지고, 타이밍을 계산하고, 지갑을 열기 전, 내 표정을 먼저 정리하는 인간 말이다.
착한 소비는, 쥘 수 있는 땅콩이 있는 자들의 언어다. 나는 아직, 항아리 앞에도 서보지 못했다.
이 사회가 나를 여기저기서 골라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나는 늘 무언가를 선택하려 애쓰지만, 결국 선택당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 가난이란 단지 물질의 부족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관계와 존재가 '선택당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게 더 정확한 정의다. 국어사전은 가난을 너무 단순하게 정리해 놔서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돈 없음' 상태야말로 만사를 비루하게 만드는 근본이라는 점엔 동의한다.
며칠 전 학부모 상담. 나는 호기롭게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책을 읽고, 말에 감정이 묻어나고, 문법보다 마음이 먼저인 아이들 자랑을 했다. 그러나 이내 돌아온 말은 짧았다.
“그래서, 수강료는 얼마인가요?”
젠장... 그런 날 나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얼마짜리 사람’으로 분류되는 기분이 든다. 돈 없음에서 비롯된 열등감, 피해의식, 그 모든 게 얹혀서 의미 없는 한 마디가 수치처럼 쿡 박힌다.
퇴근 후, 마트 냉동식품 코너. 할인 딱지가 붙은 만두와 각종 즉석식품들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커다란 손으로 두 팩씩 거침없이 담아 가는 아이 엄마 옆에서, 나는 유통기한과 가격만 번갈아 보는 ‘멈춰 있는 사람’이 된다.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는....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없는 걸 들킬까 봐 움츠러드는 그 순간이 언제나 문제다.
얼마 전엔,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모처럼 내가 계산하려고 서둘러 나가 카드를 내밀었는데, 직원이 말한다. “한도 초과인데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얼른 다른 카드를 꺼냈지만, 속으로는 온몸이 굳었다. 혹시 엄마 아버지가 봤으면 어쩌나.... 그 장면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기를, 무엇보다 나조차 오래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다.
수업에 쓸 교재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몇 년째 매 수업마다 내 처지와 책값도 함께 복습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역시.
거지의 언어는 침묵이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설명할 수 없다.
한마디 꺼내는 순간, 궁색하다는 인상이 붙고, 말이 길어질수록 빈한한 처지가 다 드러날 것만 같다.
침묵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배운 제2의 언어다.
침묵으로 살아남아도 몸 어딘가엔 욕망이 도사린다. 말로 꺼내지 않았을 뿐, 나는 늘 뭔가를 갈망한다. 이득을 따질 처지가 아님에도, 속으론 계산기를 두드리고 항아리 앞에 서보는 상상을 한다. 없는 걸 쥐는 시늉이라도 해야 나도 이 경기장에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니까.
그 손짓 하나가, 바람 하나가 내가 가진 전부다.
세상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나를 거지 품평회에 출전시킨다. 출전번호는 없다. 심사 기준도 없다. 그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비교당하고, 점수 매겨지고,
탈락된다. 탈락만이 확실하지만 나는 또 집을 나선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되긴 글렀지만, 나는 내일도 마트에 가고, 앱을 열고, 지갑을 닫고, 또 무언가를 바라볼 것이다.
내가 꿈꾸는 건 대단한 성공이 아니다. 부모님께 편안한 한 끼를 사드리고, 임플란트 해드릴 만큼 저축하며 사는 것, 그리고 7년 전 학원 폐업하면서 날린, 아버지의 투자금을 일부라도 갚는 것. 그런 날들이 내게도 허락되기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손을 뻗는다.나만의 항아리를 찾아.
아, 그리고 학생들 생일엔 잊지 않고 책 한 권씩 건넬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고 싶다. 학생보다 빈티 나는 선생님일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오래 기억되길 바라며.
나는 아직, 항아리 앞에도 서보지 못했다.
그래도 매일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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