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의 부재 세 번째 - 사랑 없음
사랑이 어렵거나 고장 났다고 느껴질 땐, 호르몬 탓일지도 모른다. 도파민은 바닥났고, 옥시토신은 접속불가, 세로토닌마저 불량스러운 날들.
사랑을 구걸했던 20대를 지나 헛헛한 30대를 조용히 버리고, 40대엔 병원을 찾았다. "도파민, 옥시토신, 세로토닌 주세요!" 사랑을 잃은 내 뇌는, 기필코 처방을 원했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니."
사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줄 알았다. 기대되는 사랑이든 무모한 사랑이든, 배경과 자격을 따지는 사랑이든ㅡ 결국 '선택 가능한 감정'인 줄로 믿었다.
그 믿음은 오랜 신화 위에 세워져 있었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도달 가능한 감정이며, 운명처럼 다가오고, 진심이면 통할 거라는 이야기들.
"진정한 사랑은 시련을 이긴다."
"사랑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사랑엔 조건이 없다."
수많은 노래와 영화, 드라마, 동화들이 그렇게 말하니 우리는 사랑을 꿈꾸고, 기다리고, 심지어 기도한다. 그러다 문득, 상처받는다. 그 상처는, 사랑에도 몹쓸 조건이 따라붙고, 황당한 서열이 세워지며, 암묵적 자격이 부여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개인의 미숙이나 관계를 지켜낼 역량의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ㅡ 그보다 심각한 건, 그 어떤 모양의 사랑도 '원할 때' 찾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사랑 자체가 불가능한 DNA 구조를 타고난 존재도 있다.
그리고, 퇴화된 사랑 DNA의 잔해나 붙들고 드라마 앞에 앉아 있다가 ㅡ 문득, 사랑에도 자격을 요구하는 사회의 '멱살을 더듬는' 나같은 사람도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스 신화 속, 시빌레는 사랑을 원했고, 신은 그녀에게 영원永遠을 주었다. 하지만 젊음을 주지 않아, 그녀는 늙은 몸으로 수천 년을 살아야 했다. 티토노스도 마찬가지. 사랑은 주어졌지만, 그 조건은 결핍이었다.
사랑은 선물이자 동시에 형벌이라는 이 인간조건의 아이러니. 신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내려준 감정은 기쁨이었을까, 고통이었을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ㅡ 사랑을 받은 자는 무언가를 잃었다. 티토노스는 젊음을, 시빌레는 인간성을. 남은 건 결핍 속에서 오래 버티는, 형벌 같은 생애뿐이었다.
사랑의 대명사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건, 그들의 결말이 죽음으로 봉인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을 현실로 소환한다면 어떨까. 삶 속에서 지속되는 사랑은 언제나 삐걱대고, 자주 실망하고, 금새 권태와 냉소로 시들해진다. 결국 살아있는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에 기반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사랑의 결핍은, 사랑 그 자체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신화적 기대에 길들여진 감각의 오류 때문인지도 모른다. 즉, '사랑 없음'이 아니라, 신화화된 사랑의 오버사이징, 과잉된 기대가 만든 허상 속에서 우리는 결핍을 자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속 멋진 남자 주인공을 꿈꾸다가 평생 사랑 한 번 못해볼 이 척박한 운수는 어쩌면, 사랑에 부여된 왜곡된 서사의 결과 때문 아닐까. 사랑 결핍 호르몬으로, 형벌 같은 하루하루를 통과 중인 나. 결핍은, 한 잔 술과 취기섞인 문장에 내맡기고 오늘도 꾸역꾸역 살아낸다. 물론, 밥은 잘 먹는다.
신은 사랑을 모두에게 줬다고 했지만 ㅡ 그 '모두'에 당신과 내가 포함되어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사랑 없음은 결핍이 아니라, 기만당한 기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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