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자각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by 이동훈

정의롭게 사는 것이 과연 이득이 되는 세상일까. 주변을 둘러보면 불의는 곳곳에서 목격된다. 당장 뉴스만 보아도 직장 내 괴롭힘, 군대와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가정에서 일어나는 패륜 등 사건 사고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예시로든 부정적인 상황들을 목도 할 때마다, 정의를 구현하라는 말은 철 지난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정의에 대해 논해왔다. 시간이 지나도 불의는 여전했고, 그 아비규환 속에서 소수의 현자만이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라고 피력했다. 이상적인 삶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생기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훈계와 목소리에는 분명 본질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듯 보인다.


플라톤은 정의를 ’영혼의 조화로움과 사회의 질서 구현’으로 설명했다. 이성, 기개, 욕망과 같은 영혼의 부분들이 적절히 운용되고, 계급에 따라 사회에서 맡은 바를 개인이 적절하게 수행할 때 정의로움이 구현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견해는 2000년도 더 된 오래된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어떻게 살아야 정의롭게 사는지를 제시한 그의 의견이나, 논박의 과정을 통해 근본적인 것을 강조한 가르침은 현시대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특히 정의로움이 영혼과 직결된다는 의미는 꽤나 솔깃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개념을 설파한다는 것은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에 뜰법한 오락거리‘로 비춰지기 십상이다. 실재하는 개념도 아닌 것 같고,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며, 영성으로 치부되는 이 요소는 굉장히 ‘마이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 영혼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는 유독 인간의 순수함, 정의로움과 관련해 설명되어온 요소였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물질적 욕망과 개인의 안위를 떠나, 보다 본질적이고 영원불변한 요소로 영혼을 받아들였다.


영혼은 내면의 거울이자, 양심의 불씨에 해당한다. 그리고 각 개인이 영적인 요소를 자각할 때, 정의로움은 보다 구체적인 요소로 변모하지 않을까 싶다. 칸트의 ‘선의지’처럼,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처럼, 보에티우스가 악에 굴복하지 않고 감옥에서 최고선을 주장하며 ’철학의 위안‘을 저술한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불의와 정의로움을 구분할 수 있는 나침반으로 작동할 때 정의로움은 살아나는 법이다. 이 나침반을 쥐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분명 우리의 자유이지만, 종국에는 선이 악을 이기리라 생각한다.

세계 각지에는 여전히 많은 사건 사고와 불의, 그리고 결핍과 박탈이 존재한다. 이럴 때일수록 영혼을 기둥 삼아 정의로움을 향한 발자국들이 하나둘 쌓여 나갈 때, 분명 행복한 결말이 ’선의의 길‘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Win-Win‘은 정의로움과 영혼에 대한 자각으로 말미암을 때 시작된다. 정의로움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작은 선택 속에 이미 존재한다. 세상이 올바름의 자세로 존속되기를 기원하며, 모두에게 영혼의 격려를 건네는 것을 끝으로 글을 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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