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는다. 슬플 때도 있고, 분노할 때도 있으며, 그저 목놓아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다.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감정들이 우리의 삶을 생동감있고 입체감있게 만든다.
만약 삶에 기쁨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해도 되고, 눈물 흘릴 일이 없으니 계속 즐거워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양과 음이 존재하며 서로의 존재 이유를 밝혀 주듯,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것 역시 필요하다. 기쁨을 느끼면 그 뒤에는 고통이 따르고, 고통을 느끼면 그 뒤에 기쁨이 따른다. 일종의 삶의 법칙인 것이다.
사람들이 한가지 오해하고 있는 사실 중에 하나가 부정적인 감정이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반화의 오류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행동의 지표를 나타내준다. 분노를 통해 불의를 바로잡고, 슬픔을 통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며, 두려움을 통해 새로운 행동을 촉구하도록 만들어준다. 감각으로 받아들인 우리의 정보를 뇌에서 처리해내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준다.
감정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멀리하려 노력한다. 감정을 순화시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억제하거나, 억압하여 묵은 숙변처럼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행동할수록 기쁨은 멀어지고, 가둬뒀던 감정들은 자신을 돌봐달라며 소리치기 시작한다.
기쁜 감정은 분명 좋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러닝을 하거나, 락페스티벌에 가서 몸을 흔들고, 친구들과 만나 술한잔 곁들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런 감정들은 지속 시간이 대체적으로 짧고, 끝이 나면 묘한 허무감이 몰려온다. 또한 일종의 연료처럼 지속가능한 원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사건이 필요하게 되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의도치 않게 빈번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의 조화가 적절히 이루어질 때, 삶은 비로소 빛나고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오로지 평탄하기만 한 삶은 실현 불가능하며, 시련과 고난,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삶이야말로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강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의 몸무게를 뛰어넘는 양을 거뜬히 짊어지는 개미처럼, 행복과 고난을 경험한 사람만이 비로소 우뚝 설 수 있게된다.
모든 사람이 같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떤 사람은 무던한 성향에 의해 한결같이 쭉 나아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박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정말 부침이 많은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상황도 인생을 살다보면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가? 내가 어디쯤 와있는 것인가?
괘종시계의 진자운동처럼 긍정과 부정을 왔다갔다하며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적절하게 조화될 때 우리의 인생은 비로소 빛나는 법이다. 부침이 많다고 너무 좌절할 필요도 없고, 너무 행복하다고 자만해서도 안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개인의 삶에 색깔을 입히고, 개성 있는 삶을 살게 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은총을 내려준 것이리라. 결국, 삶이란 고통이 있기에 빛나고, 행복이 있기에 온전한 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