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들고 종이 위에 글을 쓴다는 것은 단지 활자를 기록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 실천적인 행위이다. 한 사람의 정신과 에너지가 글 위에 배여 나오고, 그것은 곧 존재론적인 의미에서 실존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준다. 글을 통해 사람은 흔적을 남길 수 있고, 성찰할 수 있으며, 미래를 조망할 수 있다.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활자와 활자 사이에 담긴 여백은 하나의 의미를 담을 수도 있고, 아무 뜻이 없을 수도 있으며, 저자의 의견과 견해에 따라 의도가 모두 달라질 수도 있다. 글쓴이가 무엇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결정한 것은 어떤 주장을 밝히기 위함이라고 가정한다면, 글을 통해 그는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작은 발자취가 모여 거대한 발자국을 이뤄내듯, 활자의 중첩이 우리를 세상 속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 얻는 이점이 무엇이냐고. 가장 본질적인 점은 우리의 정신을 극도로 발달시킨다는데 존재한다. 쓴 영역과 아직 쓰이지 않은 영역 사이에는 무한한 간극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 틈을 글을 통해 추적하다 보면 정신은 어느덧 진보한다. 마치 광부들이 갱도에서 금맥을 찾고 깊숙이 들어가듯, 한 단계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글을 통해 사유할 수 있다. 몰랐던 점과 알고 있지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항들을 글을 통해 적고 기록함으로써, 분명한 진실과 만날 수 있다. 기록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어느 것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가려내게 된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 자서전이 될 수도, 일기장이 될 수도, 그저 자신의 의견을 담아놓은 잡문집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만약 사람들이 한 가지 길을 통해서만 꿈을 성취한다면 세상은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기록과 사유를 통해 최대한 많은 길들을 살피고, 탐구하여 자신의 방향을 찾으면 사회와 글쓴이 본인에게 모두 이롭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내 안에 거주하는 다양한 모습들과 만나게 되고 이를 품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을 점차 빚어 나간다. 글쓰기를 통해 점진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며, 이는 칼 융이 표현한 자기(Self)라 불리는 거대한 나를 일깨운다.
아직까지도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쉽게 펜을 들기 힘들고, 좀처럼 첫발이 떼지지 않는다. 그럴 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처음은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형식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쓰다 보면 ‘일종의 흐름’ 같은 것을 만난다. 우리를 인도하고,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글의 길을 터주는 방법을 말이다.
분명 글쓰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는 지평이 되어줄 것이다. 생각만 했던 바가 실천이라는 행위로 이루어지는데 도움을 주며, 사실과 정보를 후대로 옮겨 학문이라는 것을 태동하게 만든다. 종국에는 우리의 성장을 이뤄내 정신적인, 영적인 진보에 이르는데 도움을 준다. 글쓰기에 ‘섣불리’라는 말은 없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끝내가서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글쓰기는 삶의 자양분이자 바람직한 이정표인 ‘능동적인 삶의 행진’으로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