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무시하면 큰코 다친다. 감정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감정의 반대로 불린다는 이성 역시 중요하다. 이성은 우리에게 채찍질을 해주고, 제시된 길을 보다 세밀하게 다듬어 준다.
감정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호해야 하고, 무엇을 불호해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려준다. 어떤 것을 보고 ‘좋다’라는 판단이 들면, 그것은 나에게 득이 되는 에너지일 수 있다. 반면에 피하고 싶고, 어딘가 싫다는 판단이 들게 되면, 그것과 가까워지는 상황을 잠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찌 보면 감정은 여태껏 인류가 살아온 감각들의 총체이자,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체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감정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보다 원초적이고 직접적인 상황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감정을 통해 드러난다. 이는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감정 중 하나다. 지켜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고, 연결되고 싶은 그 감정은 우리를 보다 생동감 있게 만들어준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론 위험하지만, 때론 어떤 것들보다 좋다. 강한 감정이기 때문에 균형을 잃어버리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고, 균형점을 찾게 되면 큐피트의 화살로 되돌아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줄 수도 있다.
반면에 공포와 두려움이란 감정은 회피 반응을 일으킨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피하게 될 때, 그것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공포와 두려움이란 감정은 인간에 내재한 특정한 센서에 의해 경고등이 울리는 상황일 수 있다. 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큰일이 일어나고 생명까지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공포와 두려움은 작동한다.
모든 감정들을 고려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감정이 제시하는 적절한 ‘길’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일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게 된다. 느낌이나 감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감정은 직관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단, 너무 감정에 매몰되서 행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때로는 감정에 지나치게 이끌려서 행동 하게 되면 단기적인 상황만 파악할 수 있을 뿐,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이때, 감정의 보완점인 이성이 필요하다. 이성은 감정이 극단적으로 흐를 때 이를 제지하고, 활활 타오르려는 감정의 숲을 소화하고 평온을 유지하도록 돕는데 바람직한 역할을 수행한다. 올바른 판단을 가능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이성은 감정이 제공하는 직관을 분석하고, 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갖는데 도움을 준다. 분석과 추리, 판단 등을 통해 감정이 내린 직관이 정확했는지 분석해 볼 근거를 마련한다. 즉, 이성이란 것이 단순히 사실과 거짓을 추적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내린 판단들에 날개를 달아주거나 또는 그 날개를 떼어줌으로써 감정이 촉발한 우리의 길을 보다 명확하게 다듬어 준다는 것이다. 조각가의 칼과 비슷하다.
감정과 이성은 서로 보완된다. 한쪽이 더 좋고, 한쪽이 더 나쁘다는 어떠한 호오의 기준으로 작용하기보다는, 마치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머니는 온화하고 감성적이라면 아버지는 계획하고 조절해주는 존재이듯, 감정과 이성도 이와 유사하다.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시소와 같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감정과 이성은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두 개의 나침반과도 같다. 이 둘을 이해하고 균형을 맞춰 나갈 때, 우리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보다 내면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는 감정이란 것과 우리가 보다 규칙적으로 살 수 있도록 계획과 통제, 질서를 맡고 있는 이성이란 것이 서로 조화로이 작용할 때 인간은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