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다

by 이동훈

대혼돈과 노아의 방주, 악마 루시퍼의 속삭임, 천동을 뒤흔드는 타오의 움직임. 모든 것은 나를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하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의 편린들이 나를 괴롭혔다. 움직일 수 없었고,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부서지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괴롭혔을까. 남들보다 잘났다는 착각? 아무래도 지난 날의 후회와 반성이 나를 깊은 죄책감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곱씹고, 또 곱씹어 마음의 생채기를 냈고 그게 또 흉터처럼 번져나가 나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장난, 신의 놀음, 주사위 굴리기. 어떤 말이 적합할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절망하고 또 신음을 내뱉었다. 죽음과 삶 속에서 중간지대를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였다. 빛은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었다. 모든 것이 나를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었다.

착각 속에서 살았다. 언젠가 성공하리라는 기약 없는 믿음이 나를 지탱했지만 이마저도 무의미해졌다. 개미지옥이 서서히 먹이를 질식시키듯, 세상의 맹목적인 요구들이 나를 질식시켰다. 의무와 쳇바퀴 굴러가듯 돌아가는 일상이 왜이리 혐오스러웠을까. 영화 한 편의 주인공이 되어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지만, 현실은 심해 밑바닥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의 싸움, 외로움과의 처절한 전투. 진리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들의 마음속에서 내 모습을 조금은 읽어낼 수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허울만 좋은,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그저 그런 가르침들, 갈망하고 갈망해도 채워지지 않는 지혜의 샘, 정답은 오로지 내 안에 존재했다.


그저 그런 길을 갈 것인지, 역사 속의 위인이 될 것인지 충돌했지만 이 고민 역시 쓸데없는 유희에 불과했다. 나르시시즘, 자기애성 인격 장애의 발로로 나타난 충동적인 고민들은 해결책이 존재하질 않았다. 내가 어째서 위인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거늘, 하물며 능력도 없거늘 왜 내 내부에서는 위인이 되고 싶다는 말도 안되는 꿈이 똬리를 튼 채로 밖을 나가질 않는 것인가? 트라우마. 분명 어떤 트라우마가 있겠지만, 안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나는 더 이상 바뀔 수 없었다. 환자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사랑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와 사랑하면 내 고민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할 수 없었다. 나는 애시당초 사랑을 할 수 있는 유전자가 없다. 극히 예외적인 부산물이다. 정상 범주 내에서 툭하고 떨어져 나와 저 먼 극단을 달리는 그런 인간이다.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오직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비극적인 인간이다. 내면 속에서 꿈틀대는 리비도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나를 어느 방향으로 인도할지 모르는 이 가증스럽고 저주 같은 에너지. 그것에 몸을 맡기고 싶지만, 그러는 즉시 나는 추방이다. 평화로부터의 추방.


한때 나를 지나갔던 연인들을 추억해봤다. 잘살고 있을까, 모두? 향기처럼 스르르 사라지고 말았던 그녀들의 흔적. 이제는 누군가의 남편이 된, 누군가의 엄마가 된, 어엿한 성인으로서의 그녀들. 나도 사랑할 권리가 있을까. 이 절망을, 이 한탄을, 이 기약 없이 내뱉는 신음을 들어줄 성모 마리아가 과연 존재할까. 따스한 품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듬직한 어깨에 누군가를 기대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었다. 마음 한켠에서, 거부가 되어 벌었던 돈을 죄다 파산해버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모든 것을 날려 버리는 한탕. 올인이다, 말 그대로. 주식과 비트코인에 탕진하고, 부동산에 전재산을 몽땅 헌납하는 옹졸한 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가난을 택하는 최후의 전사들.


인간관계는 파멸로 치달았다. 파도의 거품이 모래사장에 닿아 끝내 부서져 버리듯, 그렇게 내 인간관계도 홀연히 사라져갔다. 처음에는 여기가 끝이겠지, 더는 나빠질 순 없을 것이라 자위했다. 10년마다 찾아온다는 명리학의 대운이 바뀐 것이었을까. 그들의 의중과 나의 의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했고, 오해는 커져만 갔다. 이 벌어진 틈을, 이 간극을 더는 메울 수가 없었다. 이미 유리병은 깨진 상태였다. 선택지는 순응밖에 없었다. 세상과 운명과 신에 대한 철저한 순응과 나 자신에 대한 후퇴뿐이 없었다. 그렇게 내 인생은 제1막이 끝나고, 종잡을 수 없는 2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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