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와 무의식, 인간이 깨닫지 못한 감각에 대하여

by 이동훈

ESP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오감을 넘어선 제 육감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초감각’이라고도 한다. 이 ESP에는 다양한 능력이 있는데, 예를 들어 투시, 텔레파시, 사이코메트리 등 공상과학영화나 만화에서 볼법한 그런 능력들이 해당한다.


ESP를 계발해서 일정 수준 이상 기르게 되면, 일상생활에서도 적용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물론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유사과학이라 칭하며 믿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속속들이 이와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는 ESP를 통해 일어나는 많은 불가사의한 일들이 보고되고 있다.

ESP는 인간의 무의식과도 연관이 깊다. 해저 아래 잠들어 있는 무의식을 계발하고 훈련하면, 의식과 연결되는 기회를 갖는데 이를 통해 육감과의 교감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사람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거나 예지를 보는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려는 시도는 단순한 초능력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구조를 탐색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세상은 인간의 구조가 물질로 이뤄져 있다는 세계관과, 정신 또는 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세계관으로 주로 설명이 된다. 유물론과 관념론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마 물질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는 물질주의자의 토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ESP는 ‘얼토당토 않은 소리’로 들릴 것이다. 기존의 과학과 공학이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패러다임에서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인간의 육감과 관련된 이러한 세계관은 쉽게 이해받기 힘들다. 지나치게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눈을 더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발도르프 교육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인지학을 통해 영혼의 세계를 설명해내려 했다. '아스트랄계'와 같은 생소한 단어가 그의 인지학 저서에서 나오게 되는데, 이들을 자세히 공부해보면 다른 차원과 연결이 되는, 인간의 다른 감각으로 연결이 되는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새로운 시야를 던져준다.


ESP에 대한 반발을 떠올리면, 새로운 사상이 등장할 때마다 세상은 늘 같은 패턴을 보여왔다. 예를 들어, 세상은 세상을 발전시키려는 이들과 세상을 발전시키는 이들을 따라가지만 처음에는 그에 반발하는 이들로 양분되어왔다. 전자는 세상을 앞서 나간 진보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처음에는 비난받았다. 그들의 사상이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지나치게 앞서거나 방향이 아예 다르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보고 수군거리며 그들의 사상을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소했던 사상이나 정보가 가치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후대의 사람들은 그 진정성을 알아보고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될 것이다.


ESP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멀리 떨어진 원거리에서도 사물을 볼 수 있는 ‘리모트 뷰잉’과 같은 기술은 서구세계의 군대에서도 사용된다고 한다. 진실의 여부는 명확히 가릴 순 없겠으나, ESP에 대한 주장도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칼 융도 이에 대하여 연구했다고 하지 않은가. ESP는 단순한 초감각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무의식과 조응하는 능력이며 ‘보이는 세계를 넘어선 통찰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이 감각을 통해 인간은 미지의 세상을 깨닫고, 다시 새로운 발자취를 찍는다. 그리고 종국에는 ‘낯설지만 매혹적인’ 길 위에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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