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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삿포로맨 Sep 09. 2024

일본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

(일본에서) 대학강의를 하다 보면 수업 중에 종종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하는 질문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지식의 상태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사회적 사실이나 현상에 대해 학생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물음이다. 두 번째는 본인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다. 대게 학생들은 나의 질문 유형과는 상관없이 난처하거나 당황스러울 때 종종 "잘 모르겠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이러한 대답은 지식의 상태를 묻는 질문, 즉 알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의 답으로는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이와 같은 답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이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 가정하고 있다. "I think therefore I a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데카르트의 존재론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것이고 이것이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이다.


질문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생각이 있어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주변 학생들과 달라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우도 많다. 괜히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가 창피나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두려움에 대해 곰곰이 따져볼 부분이 있다. 개인의 생각을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개인의 생각은 그 생각이 얼마나 새로운가 '참신성', 수용 가능한가 '타당성과 논리성'과 같은 판단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애초부터 생각에는 '틀린 생각', '잘못된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실제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좋고 싫음" "옳고 그름"과 같은 개인의 호불호와 선과 악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은 이야기의 타당성이나 논리성을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는 대답이다. 왜냐하면 좋고 싫음은 개인취향의 문제로 귀결되고 옳고 그름은 절대선과 악으로 귀결되어 생각의 타당성과 논리성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 요" "나쁘잖아요"가 대표적인 생각회피성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을 개인의 호불호와 절대선과 악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특히 선과 악의 기준으로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 라는 심도 깊은 사고와 철학이 요구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러한 인간의 생각은 당연 불완전할 수뿐이 없다. 그러니 너무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매달리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국적은 달라도 강의실 풍경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대동소이할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을 묻는 질문에 자신의 관점과 논리로 이야기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야기가 개인적 취향인 좋고 싫음이나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의 대립적인 관점으로 치우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거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쩌랴 난 선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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