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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 Feb 16. 2022

왜 애쓰면서 살아야 할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쓰는 삶에 대해.

"왜 애쓰면서 살아야 할까."


스타트업 회사의 대표가 된 친구가 1인분에 6만 원이나 하는 소갈비를 사주어 배부르게 먹고 한강에 바람 쐬러 가려고 차에 탔다. 분명 앞전에 나누던 대화와는 상관없는 뚱딴지같은 소리였다. 우연히 떠오른 생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어 튀어나온 말이었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하다 그런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응? 그게 뭔 말이야."

"그냥, 왜 사람은 자꾸 더 나아지려고 애쓰나 해서.. 그냥 여기서 만족하면 덜 힘들 텐데."

"음... 그러네. 그렇게 생각 안 해봤네."


친구는 늘 내가 하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생각해주었다. 어떤 결론도 어떤 답변을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었지만 친구는 내 말에 대답을 해주려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괜찮은 답변을 해주기 위해 조금은 심각하게 변한 친구의 표정을 보며 아차 싶었다. 친구가 입을 떼기 전에 내가 왜 그런 뜬 구름 잡는 소리를 꺼냈는지에 대해 해명했다. 


"나는 지금 내 삶이 그냥 객관적으로 남들이 봤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 같거든. 근데 매일 불안해. 내 주변 사람들이랑 끝없이 나를 비교하고 자꾸 내가 못나 보인다는 말이지. 근데 우리 가족들 다 건강하지 따신 집 있지.. 그냥 내가 여기서 만족하면 행복할 텐데 그게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해 본 말이야. 자꾸 더 나아지려고 애쓰느라 불행한 것 같아서."


내 말에 친구는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친구를 볼 때면 사업을 이끌어가는 대표된 친구의 입장에 대해 이입해서 생각해본다. 잠깐만 생각해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너도 엄청난 사업가가 되려고 그 머리 아픈 길을 선택했잖아. 나라면 못 했을 거야.' 늘 내가 하는 소리를 끝으로 우리는 한강에 주차를 했다. 


*

어렸을 때부터 나는 무언가 뛰어나게 잘하는 게 없었다. 미술을 오래 했지만 색칠에 젬병이라는 것을 18살 여름에 깨달았다. 공부 역시 백번 쓰고 외우기는 잘했어도 응용력이 좋지 않아 조금만 문제가 꼬아서 나와도 틀렸다. 우연히 영화를 좋아하게 되면서 혼자 시나리오를 썼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 끼치는 걸 싫어했던 나는 늘 차선책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 최선의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내 딴엔 열심히 했어도 결국 제풀에 지쳐 영화도 포기했다. 별다른 성과 없이 어른이 된 나는,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면 결국 똑같은 결말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겁쟁이가 돼버렸다. 

정작 나는 아무것도 주체적으로 시도하지 않으면서 끝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꿈틀댔다. '나도 혼자였다면, 자유로웠다면..' 전제를 구질구질하게 달며 뾰족하게 남을 바라보고 더 뾰족하게 거울을 바라본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If를 생각해보아도 그냥 비겁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내 현실과는 무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가 아니고 자유롭지 않다. 


*

지금 내가 더 나아지는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많이 모아서 집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배달앱부터 지워야 하지 않을까. 아 근데 바닐라 라테가 먹고 싶어. 진한 에스프레소 2샷에 시럽 말고 파우더 들어간 바닐라 라테. 그래 커피 하나 안 먹는다고 집을 살 수는 없어. 아니면 매번 사 먹는 커피 돈 아까우니까 대신 커피 머신을 살까. 커피머신 안 산다고 집 살 돈이 모이지는 않잖아. 이렇게 모아서 언제 그 비싼 집을 산대? 애들이 크기 전에 내 집 마련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잖아? 우리 윗집 언니도 그런 생각하면서 살까? 도대체 나는 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 100번에 글 한 줄 쓰기도 어려울까. 뭐라도 써야 뭐라도 될 거 아닌가? (결국 타닥타닥 몇 줄 쓴 후..) 아, 이런 허접한 글은 어디 땅바닥에 떨어진 영수증 뒤에 써도 될 텐데. 이번 공모전에도 못 내겠네.. (내가 불안할 때 하는 생각들은 대충 이런 식이다.)

오늘 먹고 싶은 것을 참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째는 보통 먹고 싶은 음식은 고칼로리라서 살이 찔까 봐. 두 번째는 먹고 싶을 때마다 돈을 썼다가는 정해둔 한 달 생활비가 마이너스가 될 거라는 걱정 때문이다. 사고 싶은 것이 있을 때 수많은 경우의 수와 가성비에 대해 분석하고 고민해 결정한다. 보통 나는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나서 안 사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오래 하면 순간적 소비욕구가 둔해지기 때문이다. 사소하지만 나름 안정적인 삶을 위해 매일 애쓰는 지점이다. (뭔가를 사지 않는다고 저축이 늘지는 않더라.)

또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음에도 나는 글을 쓰지 않는 것에 압박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물론 일에 대해선 예외다. 돈 받고 쓰는 대본은 잘 써진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요즘 글 써요?'라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나는 내가 뭐 등단한 작가도 아닌데 쓰고 있는 글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뭔가 시나리오나 책이라도 얼른 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끝 방에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게 높은 곳에 놓인(방치된) 노트북을 보면 늘 죄책감을 느낀다. 

근데 웃긴 건, 나는 늘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는커녕 나에게 미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애쓰지 말자.'

그래 애쓰지 말자. 그게 좋겠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리고 나는 최대한 행복하게 살다 죽고 싶다. 지금의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미래라는 녀석 때문에 지금 불행과 불안을 싹 틔워 물을 주고 싶지 않다. 사실 남편이랑 결혼한 이유도 남편은 나와는 달리 걱정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서였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때껏 준비되지 않은 미래가 정작 다가와도 어마 무시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 상황에 맞게 어떻게든 문제는 해결되었고 시간은 계속 흘러갈 뿐이라는 것이다. (약간 욜로족이었던 듯 하다.) '지금은 가정을 꾸리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또 대비할 건 대비해야 하는 책임이 생겼으니까 무턱대고 마음대로 사는 건 안 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행복하지 않냐.' 이따금 내가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면 남편이 다가와해주는 말이다. 꽤 무뚝뚝한 어투로 건네는 말인데 그 말을 듣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인다. 더 행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 아니 남들만큼 잘 살기 위해 둘러보며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내 마음을 다잡아주는 듯하다. 

그래 바닐라 라테는 살찌니까 건강을 위해서 5번 참고 한 번은 먹자. 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처럼 저축하는 것 정도만 애쓰자. 글도 그냥 쓰고 싶을 때 쓰고 쓰지 못할 때는 쓰지 말자. 공모전은 매년 돌아오고 이렇게 쓰다 보면 뭐라도 낼 수 있겠지. 

너무 애쓰며 살지 말자. 월요일마다 새로 시작하는 다이어트처럼. 월요일은 다시 돌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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