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혜 Mar 27. 2024

01. 저 카페알바 취소 당한건가요?

30대 백수 두 번 울리는 알바 취소 통보

백수가 된지 어느덧 세 달이 되었다.

세 달 전만해도 퇴사 D-day만 기다리면서 하루 하루 지나갈 때 달력에 X표시를 했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모든게 행복할 줄 알았다. 퇴사하면 제일 먼저 뭐 하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하자면 ‘아무것도 안하기’였다. 직장인일 때는 카카오톡부터 각종 협업툴, 메일 그리고 전화까지 하루에도 수 많은 연락에 대답해야했었다. 전화 진동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아침부터 카톡 알림음이 울리지도 않고 전화로 나를 찾는 사람도 없어서 좋다. 아침에 알람없이 내가 자고 싶은만큼 자고 낮에 광합성을 하며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이제 내 통장을 볼 때마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계속되는 상황에 압박감을 느꼈다. 청년구직활동 지원금을 매달 50만원씩 받고 있지만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혹시나 내가 원하는 분야로 이직이 안되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장기 백수 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한동안 책상에 앉아 자기소개서,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 준비를 위해 컴퓨터와 씨름하다보니 머리가 아팠다.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써보니 도통 글이 써지지가 않았다. 가뜩이나 돈도 없어서 여행은 커녕 친구들이랑 밥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알바를 하면서 마음의 불안도 가라앉히고 혼자 여행도 해보자’라고 결심했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딱 3가지였다. 


첫 째, 총 급여가 80만원 이하일 것(정부 지원금 지급 조건이다)

둘 째, 근무요일이 최대한 붙어있을 것(Ex. 월수금이 아닌 월화수)

셋 째, 밤 늦게까지 하는 곳은 패스할 것


새벽 1시에 알바천국과 알바몬을 뒤지던 나는 2곳을 발견하고 문자로 지원했다. 10분도 안되서 어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시간되면 가게에 방문하라고 했다. 집 바로 옆에있는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였다. 긴장되서 잠도 안왔다. 31살이 왜 알바 지원하는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될 것 같았다.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알바 이력서를 급하게 작성하고 카페를 방문했다.


좁은 창고에서 사장님과 대면했을 때 이름, 나이, 경력유무 등에 대답했다. 내가 월화수를 선호한다고 말했을 때 ‘아마 월화수 마감타임 할 확률이 유력해요. 오늘 저녁에 연락줄게요’ 라는 사장님의 대답을 듣고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하나 해결된 느낌에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곧장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자가 왔다.


“교육 언제부터 하실 수 있어요?”

“저는 XX 가능합니다. 스케쥴 보시고 시간되시는 날 말씀주세요.”

“그럼 다음주 월요일 4시 30분에 오세요”


알바 합격했다. 

평소 카페를 자주 갔던 나였기에 한번쯤은 커피를 내려보고 싶었다. 카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를 채용해준 사장님이 고마웠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보내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봐 ‘그냥 월요일날 뵙겠습니다.’라고 보냈다.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도 말씀드렸다. 집 바로 옆이어서 너무 잘됬다고 좋아하셨다. 나도 오랜만에 수입이 되는 일을 하게되어서, 새로운 일을 배울 수 있어서 설렜다. 그렇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루가 지났다. 


안 오셔도 될 거 같아요.


처음 당해봤다. 학생 때 4곳에서 알바를 해본 경험으로 이런 적은 없었다.

카페에서 급하니까 일단 나를 묶어두고 이후에 더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교체해야지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 차라리 교육하러 오라고 하질 말던가. 부모님이 월요일날에 인테리어 상담 예약해뒀는데 내가 알바간다고 일정을 일부러 목요일날로 변경했는데 조금만 더 일찍 말해주지 휴… 딱 여기까지였다. 


예전같았으면 속상했을텐데 별로 타격감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안도했다. 이직에 더 집중하라는 하늘의 뜻인가보다(참고로 무교임) 라고 생각하고 알바는 안하는걸로 결심했다.  


사장님의 전략은 이해하나 앞으로 이런 행동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31살이 아닌 20대 취준생이었다면 매번 서류, 면접 불합격 할 때마다 속상한데 가뜩이나 알바까지 취소 통보 당하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