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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Aug 08. 2021

고흐 덕후의 별이 ‘총총’ 빛나는 밤

다가 올 삶을 위하여!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어쩌면 내 그림의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중에서
Still Life: Vase with Twelve Sunflowers, vincent van Gogh, The Philadelphia Museum of Art


어떤 글에는 작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다. 또 어떤 그림에는 화가의 영혼이 절실히 맞닿아 있다. 그래서 볼 때마다 새롭고 놀랍다. 먹고 살기 바빠, 글 한 꼭지 쓸 수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날은 내 마음의 틈새로 고흐의 노란 빛깔이 들어오게 하자! 일요일 루틴으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교보에 들르는 것이었다. 책 더미 사잇길로 조용히 걸으며 나만의 케렌시아를 누렸다. 노트북과 일기장, 그리고 요즘 손에 잡히는 몇 권의 책을 들고 동네 스타벅스로 왔다. 우연히 지인도 만나고, 친구들에게 안부 톡도 보냈다. 아 소박한 행복이 일렁일 때, 그 때야 비로소 내 마음은 쉼을 얻는다. 창가에 앉아 보니 8월의 태양열을 받아 하늘로 잎을 뻗은 도시의 나무들은 찐 초록빛을 발산했다. 이 때, 세상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색들을 꿈꾸고 탐구했던 빈센트의 책을 들었다. 요즘 내 텅 빈 감성을 잘 다독여줄 게 분명했다. 그의 글을 필사도 하고, 그를  따라 무작정 떠났던 나의 지나간 여정들을 옛 추억 앨범을 보듯 돌아본다.


암스테르담-헤이그-동경-오테를로-파리-아를-오베르 쉬르 우아즈-뉴욕
@ 오테를로, 오베르쉬르 우아즈, 뉴욕에서

그 길 위에서 난 항상 자유했고, 행복했다. 시간의 간격을 두고 한 장소를 여러 번 가보기도 했다. 내가 정말 애정한 시간들…. 바삭바삭한 햇살에 환하게 웃고, 때로는 소박하고, 때로는 웅장한 대자연이 가져다주는 다채로운 색들에게 쉼을 얻었다.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 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지나가다 마주치던 이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 여정에서 나는 삶의 포만감을 느꼈다. 충만했다.


혈기왕성한 30대, 불확실한 미래에 고민이 많던 시절, 빈센트는 늘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시선을 갖기를 간절히 바랐다. 사실 그는 낡은 생각을 뒤집은 일에 능숙한 인물이었다. 관계에 대해 서툴고, 또 서툴렀지만 빈센트는 늘 타인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재능 있는 이 화가의 외롭고 불운했던 인생을 찬찬이 되짚어 보면 왠지 애잔한 맘이 든다.

내가 사랑한 반 고흐, 그의 삶을 추적하다

늘 해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맘때면 습관처럼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손에 잡는다. 어느 문장 앞에서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깐 멈출 때도 있다. 1세기 전 한 화가의 ‘지식과 세상에 대한 명확한 시선’이 너무나도 힘 있게 내 마음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비록 당시에 정신착란까지 일으키며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힘들게 했던 장본인인 '그'였지만  말이다. 빈센트는 뼛속까지 ‘찐 ‘예술가였다. 그의 그림 한점, 한점, 문장 하나하나가 론강의 반짝이는 별처럼 내 마음의 동공에 콕! 박힌다.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8세기, 예술인의 성지 파리에서 희망에 부풀었던 빈센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당대의 화가들과 그 현실에 구역질이 났다. 어느 시대나 그렇듯, 다른 생각, 다른 포부를 가진 사람들은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모른다. 빈센트는 일찌감치 일본 우키요에 속에서 맞본 이상향을 꿈꾸며 남프랑스 어딘가에서 새로운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찬찬히 보면 그는 늘 자기 분야에서는 분명한 소명과 열망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열렬하게 꿈꾸고, 자기만의 방식대로 추구해갔다! 빈센트를 알아 갈수록 더더욱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파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의 5월, @아를, 남프랑스
아를스러운 나의 방

마침내 1888년 2월 20일 고흐는 하얗게 눈 내린 아를에 도착했다. 지금이야 파리에서 TGV를 타면 서 너 시간 만에 아를에 도착 하지만, 그 당시 기차는 시속 50킬로미터를 달리지 못해 하루가 꼬박 걸려 도달했을 터이다.


나는 남부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는 푸른 5월에 아를로 향했다. 아를로 가는 기차 안에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를 보며 반 고흐를 생각했다. 불타오르는 초록 빛깔의 소망, 소망이 뭉글뭉글 피어났다.


기차 여행 중에 나를 스쳐 지나가는
새로운 모습들만큼 너를 생각했단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
아를 병원이 있던 자리, @아를 도서관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그릴 수 있을지, 빈센트는 궁금해했다. 나는 오르세와 모마에서 그가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을 오랫동안 봐왔다. 언젠가 그 론 강가를 이른 아침에, 그리고 해 질 무렵에도 동네 마실처럼 가볍게 걷고 싶었다.


 , 천신만고 끝에 나는 남프랑스 아를에 도착했다. 아비뇽에서 여권을 털렸다가 인간 천사의 도움으로 되찾았다. 국제 미아가 되는 건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집을 떠나면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들이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이 빨리 끝나 모험을 다시 떠나고 싶어진다. 이억만리 떨어진 남프랑스에서 한국을   방문했다던,  합창단원이라는 네덜란드 태생의 친구를 만났다. 내가  고흐의  팬임에 그는 자신의 고국이 낳은  화가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 고흐라는 불멸의  화가로 인해 새로운 우정이 피어났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그날 하늘은  하나 없이 파랗고, 고흐의 노란 해바라기처럼 햇살은 진했다. 가끔씩 부는 바람에 라벤더 꽃향기가 나고, 예술과 낭만의 향기가 흠뻑 베어났다.

론강의 이른 아침
론강이 보이는 아를의 방에서

작은 창을 열면 론강이 바로 보이는 19세기 그리스 양식의 3층 집에서 Starry Starry Night을 틀어왔다. 내 마음은 어느새 별의 정서로 가득해졌다. ‘앞으로 다가올 삶에 관하여’ 기대감을 가져보자고 마음먹은 날이다. 이 날을 늘 기억해야지.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 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

@ 아를, 론강이 보이는 창가에서

코시국이 계속 되고 있지만, 언젠가 바로 떠날 ‘그 날’을 소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to be continued....by 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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