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런던의 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h Kim Jun 08. 2024

런던, 노팅힐

휴 그랜트의 '파란 대문 집' 앞에서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으로 낸다면.... 진실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by 마르크 샤갈
노팅힐 게이트 지하철 역에서

전설적인 로코 영화, 노팅힐(Notting Hill)을 좋아한다. 세계적인 여배우 안나(줄리아 로버츠 분)와 노팅힐에서 여행전문서점을 운영하는 윌리엄(휴 그랜트 분)이 우연히 만나,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흔하디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의 <남자 버전>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영화, 노팅힐 포스터(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더 노팅힐 북샵
포토벨로 마켓 가는길

손바닥을 뒤집 듯 오락가락한 런던 날씨. 특별히 해가 반짝 이는 날을 정해 노팅힐로 향했다. 때마침 포토벨로 마켓이 열리고 있어 이 거리는 아침 댓바람부터 봄날의 활기로 가득했다.

런던의 심볼같은 빨간 이층버스

휴 그랜트가 영화 <노팅힐> 오프닝 씬에서 독백을 하며 북적이는 시장을 유유히 빠져나온 것처럼, 우리도 다른데 한눈팔지 않고 곧장 <파란 대문 집>을 향해 걸었다. 나는 휴그랜트 특유의 브리티쉬 억양과 그 독백이 그냥 좋았다.

영화 노팅힐 오프닝 독백 장면

마침내 파란 대문 앞에 다 달았고,

영화 속 한 장면을 생각했다.

영화, 노팅힐 휴그랜트 집<파란대문> 앞에서

내가 오래전부터 이 영화를 아끼는 진짜 이유는 두 남녀에게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해준 그림, 샤갈의 <신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노팅힐의 시장 골목 파란 대문 윌리엄 집 거실에는 샤갈의 복제그림이 걸려있다. 화가가 그림으로 전하는 이미지와 감정을 느끼는데는 그게 진품이든 가품이든 상관없어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서 <신부>의 진품을 안나가 뉴욕 자신의 아파트에 개인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노팅힐 컷, 휴그랜트 집에 걸려있는 샤갈 그림 장면

헤어졌던 두 주인공이 노팅힐 서점에서 재회할 때 안나가 자신의 진품을 윌리엄에게 선물로 건네주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윌리엄을 향한 찐 사랑을 뒤늦게 깨닫고 그 마음을 전달하는 안나의 진심이 느껴져서였을까?

마르크 샤갈,<신부 The Bride>, 개인소장, c.1950

좌우지간 벽에 걸린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가 난 참 좋았다. 그 장면만 여러 번 돌려보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이 어쩌면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뻔한 암시가 왜 그렇게 흥미로웠던지!  


'뜻밖의 발견이나 행운'을 뜻하는 세렌디피티 Serendipity를 맘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또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누군가가 공감해 줄 때 참 행복해진다. 어떤 행복은 일렁이기도 한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무채색 같은 인생에 다채로운 색을 입혀주는 것이다.


샤갈의 그림에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의 힘이 있다. 내가 샤갈을 사랑하는 진짜 이유다.

영화, 노팅힐 컷, 샤갈에 대한 그들의 대화 장면


"당신이 이 그림을 가지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아요.

당신도 샤갈을 좋아하나요?

네. 무척이나.

사랑은 그런 거죠.
짙은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와 함께...

네. 그래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염소가 없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죠.
영화, 노팅힐 스틸 컷중에서<Pinterest>

이 영화를 쓴 작가 리처드 커디스가 샤갈의 <신부>를 특별히 애정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아마도 작가는 사걀과 벨라의 만남과 예술,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가난한 유태인의 아들이었던 샤갈이 러시아 부유한 보석상인의 딸 벨라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 대목에서 윌리 엄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을지도...


영화에서 두 남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이 그림 <신부>는 아내 벨라에 대한 샤갈의 사랑이 오롯이 담겨있는 듯하다. 샤갈이 아내 벨라에게서 시적인 영감을 얻고, 그 사랑을 주제로 한 그림들은 여전히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다.


노팅힐 영화제작사는 진품처럼 보이는 한 컷을 위해 그림을 직접 제작하고 영화 촬영이 끝나자 곧바로 폐기했다고 한다. 실제로 샤갈의 <신부>는 한 일본인이 개인 소장 중이다.


도쿄에서 샤갈 특별전이 열린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란적이 있다. 또 하코네에서도 그렇게 많은 샤갈의 그림을 직접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일본의 전시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력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샤갈의 소박한 묘가 있는 남프랑스, 생폴 드 방스에서


시인의 감성을 가진 색채의 마술사, 샤갈이 영면한 그곳, 남프랑스의 생폴 드 방스에 간 건 내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전 세계 곳곳에 샤갈의 그림을 찾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니까! 그 이야기를 푸는 데 서론이 너무 길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림 이야기가 강렬해 생폴 드 방스 여행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해야 할 듯하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의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라는 샤갈의 말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One of my favorites. Chagall's painting in the movie'Notting Hill' starring Julia Roverts and Hugh Grant :) Grippig. It feels like how love should be -- floating through a dark blue sky. And it reminds me of what Chagall once said : if you create from the heart, nearly everything works; if from the head almost nothing. One fine day, by sara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