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프트의 푸른숨, 델프트의 풍경앞에서
퀘런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본래 투우장에서 지친 황소가 숨을 고르기 위해
찾아가는 ‘안식처’나 ‘피난처’를 의미한다.
여기서 확장되어 마음의 안식처, 나의 힘이 되는
공간 혹은 순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당신만의 퀘런시아는 무엇인가요?
델프트의 푸른 숨, 나의 퀘런시아를 걷다
우리는 결국, 가장 나다운
숨을 쉴 수 있는 풍경으로 돌아온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고향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의 작은 구석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고요한 미술관 한 켠에 걸린 작은 그림 한 점일지도 모른다. 늘 무언가를 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답을 주어야 했던 날들 속에서 그림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거기 ‘있었다’. 때로는 그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나에게, 그날의 퀘런시아는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 앞이었다.
마우리츠하위스에서의 정지된 시간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거기엔 흔들림 없는 고요가 있다. 황금 시대 네덜란드 회화의 보물들이 조용히 걸려 있고, 그 가운데 가장 숨죽이게 만든 한 작품, 페르메이르의 〈델프트의 풍경 View of Delft〉은 정지된 채 숨 쉬는 도시 같았다.
물 위에 반사된 하늘, 햇빛이 머무른 붉은 지붕, 구름 뒤로 물든 회색빛 시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속삭였다. “바쁜 발걸음을 뒤로 하고, 지금 여기서 쉬어도 돼.”
페르메이르, 고요를 그리는 사람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빛의 화가’로 불리지만 나는 그를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의 예술가라고 부르고 싶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름답다!
그의 그림은 말이 없고, 움직임도 적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풍경 속에서 내면의 리듬과 감정을 천천히 되살릴 수 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내가 페르메이르를 애정하는 이유다. 그의 고향 네덜란드 델프트를 봄, 겨울 두 번 방문했다. 갈 때마다 그 곳에서 다른 도시는 줄 수 없는 마음의 평화 같은 걸 느꼈다. 진주 귀걸이 소녀가 탄생한 곳이어서 그런가^^
〈델프트의 풍경〉은 그가 남긴 유일한 야외 풍경화다.
그리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자신이 태어나고,
죽은 델프트 Delft를 바라보는 사랑의 눈길이었다.
프루스트는 이 그림 앞에서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빛이 내려앉는 그 한 점의 노란 벽면에 세상의 모든 감정이 농축돼 있다
고 감탄했다. 진정한 예술은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낯설게 만들어준다.
델프트의 벽돌, 하늘, 그늘, 반사… 모두 다 그저 도시의 풍경일 뿐이지만, 페르메이르의 시선을 통해 그것은 보호받는 마음의 은신처, 곧 퀘런시아가 된다.
나에게 델프트란…
나의 퀘런시아는 꼭 고요하고 아름다운 장소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시선과 감정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그림 앞에서 멈춰 서고, 그 안에 녹아 있는 시간과 대화를 나누는 그 순간, 나는 나를 가장 잘 돌보는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델프트는 내게 그런 공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숨 쉬는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익숙한 외로움조차 조용히 안아주는 무언가를 느꼈다. 퀘런시아는 풍경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우리가 찾는 건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시선이다.
〈델프트의 풍경〉 앞에서
나는 지금껏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바라봤고,
그 안에서 나만의 퀘런시아를 찾았다.
그것은 평화였고, 사유였고, 작고 단단한 위로였다.
당신의 퀘런시아는 어디에 있나요?
그림 앞인가요? 창가의 햇살 속인가요?
혹은 조용히 당신을 감싸 안는
문장 하나 안에 있나요?
마우리츠하위스에서 만난 작은 풍경 한 점처럼, 당신의 마음에도 조용히 기대 쉴 수 있는 푸른 델프트가 언제나 머무르길바랍니다. Sar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