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 팝의 여운
예술의 새로운 레시피
일상의 예측가능한 진부함을
예술과 생활이 곧 다르지 않다.
현실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현실이다.
캠벨 수프를 먹으면 현실이고,
캠벨 수프를 그려서 벽에 걸어두면
예술이다. by 앤디 워홀
퐁피두 센터 앤디워홀의 그림을 보며 생각합니다. ‘캠벨 수프를 먹으면 현실이고, 캠벨 수프를 그려서 벽에 걸어두면 예술이다!’ 이보다 더 간단하고 명쾌한 정의가 있을까요? 앤디 워홀의 세계에서는 예술과 생활, 고급과 대중, 진지함과 가벼움의 경계가 모두 무너집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I do the same thing every day.
I go to work and paint.
나는 매일 같은 일을 한다.
일하러 가서 그림을 그린다.
인간사의 모든 역사가 말해주듯, 한 시대가 저물고 전환기를 맞이할 때면 그 배후에는 언제나 ‘혁명의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제가 늘 흥미를 느끼는 대목은 바로 ‘발상의 전환’을 일으키며 시대의 전면에 서는 그 한 사람입니다.
Andy Warhol, 앤디 워홀.
상업예술의 선구자이자 팝아트의 대가.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자리에는 언제나 논쟁이 따라붙고, 사람들은 그를 두고 예술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되죠. 공장에서 막 찍어낸 듯한 이미지, 소비사회의 상징이 된 일상의 오브제, 그 모든 반복 속에서 그는 “예술은 어디까지가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그런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예술은 더 이상 고상한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예술은 하나의 ‘생산 시스템’, 그리고 예술가란 세상을 조립하는 공장의 노동자였습니다.
팝의 시대, 뉴욕이 새로운 파리를 대체하다.
1940년대 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람들은 이제 유럽의 시대가 끝났음을 직감합니다. 저마다 아메리카 드림을 이루기 위해 뉴욕, 뉴욕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무렵이지요. 예술은 분명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기 때문에 많은 예술가들도 파리에서 뉴욕으로 그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어느새 뉴욕 소호는 말 그대로 제2의 몽마르트르라는 별명을 얻고 현대 미술의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합니다.
팝아트(Pop Art)는 1950년대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에서 주로 나타난 예술 양식입니다. 팝아트는 '통속적, 일시적, 소비적이며 값싸고. 대량 생산적이며, 재치 있고, 관능적이고, 선동적이고, 활기차고, 대기업적인 미술 양식'이라는 영국 팝아티스트 해밀턴은 말했죠.
냉전시대 미국의 자유주의와 힘을 대변한 잭슨 폴락의 추상미술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예술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고 재밌는 작품들이었죠.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요... 상업광고와 대량 소비물품, 만화 등을 작품에 인용해서 동시대 사람들의 스펙터클한 시선을 끌었습니다. 60년대 집집마다 TV가 들어오게 되면서 누구나 대중문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었고, 젊은이들의 경제적 독립은 미국을 소비사회로 이끌어 팝아트가 급부상한 배경이 되었던 거죠. 젊은 세대는 이전처럼 철학이나 사상보다는 ‘스타’와 ‘이미지’를 열광적으로 소비했습니다.
앤디 워홀은 이 흐름을 정확히 포착했지요. 그는 “고상한 예술”이라는 단어에 웃음을 터뜨리고,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예술은 현실보다 덜 현실적이어야 하는가?”
그의 답은 팝아트(Pop Art)였습니다.
앤디 워홀 ― 상업예술의 반란
워홀은 예술계의 이단아이자 혁명가였습니다. 그의 작업실 이름이 “팩토리(The Factory)”였다는 사실은 그의 철학을 아주 명확히 보여줍니다.
그곳에서는 작품이 아닌 ‘제품’이 만들어졌습니다. 실크스크린 판화로 찍어낸 마릴린 먼로, 코카콜라, 달러, 캠벨 수프 캔, 브릴로 비누상자. 그는 “반복”을 통해 예술의 권위를 해체했습니다.
워홀은 스스로를 “비즈니스 아티스트”라 불렀습니다. 그 말엔 풍자와 도발이 동시에 담겨 있죠. 예술이란 더 이상 성스러운 상상력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의 리얼리티라는 것.
그는 이렇게 선언한 셈입니다.
Business art is the step that comes after art.
상업 예술은 예술 다음 단계다.
워홀은 예술을 대중의 손에 돌려주었습니다. 그가 그린 ‘캠벨 수프’는, 예술을 ‘먹고 마시는 일상’으로 끌어내렸습니다. 그 이전의 예술이 감상자의 ‘존경’을 요구했다면, 워홀의 예술은 관객에게 함께 웃자고 손 내밉니다.
그렇습니다. 팝아트는 예술의 고고한 언어 대신
광고의 언어, 소비의 언어를 택했습니다.
피카소가 인간의 내면을 해체했다면,
워홀은 현대 자본주의의 표정을 해부했습니다.
반복과 복제 ― 이미지의 유머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마오쩌둥, 그리고 캠벨 수프. 그의 실크스크린 이미지는 모두 ‘복제’입니다.
유명인사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해 기계처럼 똑같이 찍어낸 실크스크린 작품에서 어떤 독창성이나 아름다움이 느껴지시나요? 어느 고매한 정신을 가진 예술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인의 초상을 만납니다. 그렇지만 앤디 워홀은 애초부터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한참 멀지요. 예술이 갖고 있는 고리타분한 철학을 완전히 깨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가히 성공을 이루었지요. 모마에서 만난 마를린 몬로 작품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워홀의 예술은 감정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대중이 사랑하는 이미지를 거울처럼 비추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라고 말하죠. 그는 ‘예술의 종말’을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확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일상 속에도 충분히 예술의 감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했어요.
어제처럼 평범한 오늘 이언정, 앤디의 눈에는 섬광처럼 띄었을 그 흔하디 흔한 수프 깡통...
워홀은 어린 시절부터 매일 마셨던 캠벨 수프를 그렸습니다. 그건 거창한 철학의 산물이 아니라 그의 기억과 현실의 풍경이었어요. 예술이란 결국, 우리가 매일 반복하며 살아가는 삶의 일부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자신의 작품 공간을 팩토리, 공장이라고 칭하며 똑같은 판화를 찍어내는 데 직원까지 고용해서 예술을 생산해 낸 장본인이니까요. 공장에서 막 찍어낸 코카콜라나 캠벨 수프처럼 예술을 대량 생산하면서 일상적인 사물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던 겁니다. 당시 어느 누가 상품의 이미지나 스타 이미지를 복제해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겠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작품에 드러내고자 했던 그에게 있어 어린 시절부터 줄곧 먹어왔던 캠벨 수프 캔은 분명 어렵지 않은 작품 소재였을 거예요. 프랑스의 샤르댕이 진부한 일상의 정물을 빛나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켰던 것처럼, 현대의 일상에 색과 이야기를 입힌 거죠.
생활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생활이다
그의 작품을 보며 생각합니다. 예술이란 결국, “평범함을 다르게 보는 힘”이라고. 그가 본 세계는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아이 같은 유머가 숨어 있었습니다.
Isn’t life a series of images that change
as they repeat themselves?
인생은 반복되는 이미지들의 변화가 아닌가?
그의 질문은 단순한 미학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삶 자체가 매일 반복되는 행위들의 연속이라면, 그 안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예술인가? 워홀은 그 답을 미술관 벽이 아닌, 마트 진열대 위에서 찾았다는 것을!
퐁피두의 오후 ― 팝의 여운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 앞에 서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술이 이렇게 웃길 수도 있구나.” 그 가벼움 속에 담긴 날카로움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남깁니다.
밖으로 나오면 광장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스케치북을 펼치고 있습니다. 거리의 음악, 커피 향, 분홍 노을,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팝아트’가 됩니다. 앤디 워홀이 말한 “반복되는 삶의 이미지들” 속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법 — 그게 예술가의, 그리고 여행자의 삶 아닐까. 생각해 본 하루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