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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의 파랑휴가를 떠난다

파리에서 니스, 마티스 뮤지엄까지

by Sarah Kim
For most people, loving art doesn't mean
pictures in museums, it means thinking
deeply and intelligently about cars
and clothes. Alain de botton

대부분의 사람에게, 예술에 대한 사랑은
뮤지엄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차와 옷에
대해 깊이 그리고 지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By 알랭 드 보통



앙리 마티스의 컷 아웃 작품입니다. 파리에 머물 때마다 들르는파리지엥 친구의 욕실에는 앙리 마티스의 <푸른 누드 IV, 1952>가 걸려 있습니다. 이른 아침, 창가로 비치는 파리의 푸른빛이 그 그림의 파랑과 겹쳐질 때면, 그 공간 전체가 하나의 캔버스처럼 느껴집니다. 때로는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 예술에 대한 사랑은 뮤지엄에서만 아니라 우리의 친숙한 일상 그 생활 속에서 찾아야 제 맛이니까요.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IV, 1952, 마티스 뮤지엄, 니스
앙리 마티스


마티스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화가입니다. 피카소처럼 장수하면서 다작을 내놓았던 이 예술가는 나이가 들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수술을 받습니다. 그 이후로는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야 했죠. 그래도 이 열정 많은 화가는 예술 인생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만의 새로운 기법을 창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 @MoMA


화가에게 익숙했던 붓과 물감을 던져 버리고는 가위를 이용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작품을 담기기 시작한 거죠. '가위는 연필보다 훨씬 감각적이다'라는 말을 내뱉으면서요. 그의 유쾌한 작품들을 보면 텁텁한 마음이 뻥 뚫리듯 시원해집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낮의 열기에 지쳐 찬물로 기분 좋은 샤워를 막 한 것처럼요.

컷 아웃 콜라주, 푸른 누드 Ⅳ와 앙리 마티스


자, 이제 조르주 퐁피두 센터 5층 파리 현대미술관으로 다시 올라가 볼까요? 개인적으로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 외관과 주변의 자유로운 그래비티(벽면 등 거리 벽화) 그리고 그 배후를 둘러싼 사람들의 여유로운 표정들이 맘에 쏙 듭니다.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의 상시 전뿐 아니라 시즌마다 기획전시도 같이 볼 수 있는데 이번에 방문할 때는 파울 클레 전시 배너가 벽에 붙었네요.


특별히 5층 옥외 테라스에서 내다보는 파리 시내 전경은 참 사랑스럽고 달콤합니다. 여기에선 늘 누텔라 크레페를 먹어서 일까요. 악마처럼 스위트한 감성이 되살아 납니다. 저 멀리 에펠탑과 몽마르트르 언덕을 보면서요. 갈 때마다 전시관 그림 배열이 조금씩 변화되어 있기도 합니다. 파리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은 세계 곳곳에서 러브 콜을 받아 원정을 떠나기 일쑤지요. 퐁피두센터의 수많은 현대 작품들을 도쿄 현대 미술관에서 볼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남다른 짜릿함을 느끼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 샤갈의 <하얀 깃의 벨라, c.1917>는 햇빛이 직접 반사되는 미술관 복도에서 마티스 방으로 자리가 옮겨졌더군요. 지난번에 샤갈 작품이 생뚱맞은 곳에 전시되어 속상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웃어봤습니다.


앙리 마티스 방에서
새로운 색을 탐貪 하다!



마티스의 배 속에는 태양이 들어있다.라는 이 뜬구름 잡는 듯한 말은 피카소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참으로 피카소다운 말이지요? 20세기 최고의 화가는 바로 앙리 마티스라고 피카소는 일찌감치 그를 칭송하곤 했었죠. 사실 마티스라는 존재는 스페인의 천재화가 피카소에게 있어서 극심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질투의 대상이기도 했고요. 좌우지간 '색채에 대해 생각하고, 꿈꾸고, 상상' 하던 마티스의 그림을 보면 강렬한 심플함 속에서 어떤 원시적인 섹시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가 늘 탐구했던 것은 인물과 대상의 위치,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여백, 무엇보다도 색 그 자체였지요. 토마토가 파랗게 보여서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던 이 화가를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화가 자신만의 오롯한 그 느낌과 경험에서 출발한 거침없는 붓놀림에서 새로운 미학을 느낍니다.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 또 그 유행이란 것도 늘 시대에 따라 변해가지만요. 이 모든 것들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체감한 그런 날은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내 마음도 몽글몽글 충만하게 피어오릅니다. 예술가가 창조한 세상의 숫자만큼이나 우리는 다양한 미적 세계를 경험합니다. 뮤지엄과 생활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아름다운 특권을요!


겨울 또 다시, 앙리 마티스 그림을 보며


퐁피두의 마티스를 뒤로하고, 니스로 향했습니다. 마티스는 프랑스 남부를 여행한 후에 원색과 형태에 더 빠져들었습니다. 남쪽 지방의 강렬한 햇빛과 지중해의 해안선은 화가가 아닌 누구라도 매료될 만큼 멋졌어요.



지중해의 햇살이 모든 색을 새로 칠합니다. 니스 언덕 위, 붉은 벽돌 건물 사이로 들어서면 마티스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푸른 하늘 아래, 붉은 벽돌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그 자체로 하나의 색채 조화처럼 보입니다.


마티스는 20세기 최고의 아티스트이며, 친구이자 라이벌인 피카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색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색채의 대가답게 그는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완벽한 색과 디자인을 창조했습니다.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찾아서 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건 우리에게 매우 영감을 주죠.


니스, 마티스 뮤지엄 가는 길


미술관에서는 니스 예술학교 학생들의 전시회가 한창이었습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미술관의 고요를 깨우고, 그 소리마저 하나의 색채처럼 느껴졌습니다.


마티스 뮤지엄, 미술 전공학생들의 작품 전시회


마티스 미술관은 니스, 구도심의 우거진 공원을 끼고 고고학 미술관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지중해 풍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 껏 더 살려줍니다. 샤갈 미술관과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어 하루 여정으로 딱이에요. 지중해의 풍광이 아름다운 니스에 정착한 두 거장. 마르크 샤갈과 앙리 마티스. 이 둘을 만난 하루를 내 맘속에 저장해 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날이었습니다.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은 오늘. 관람을 마치고 마티스 엽서를 한 장 샀어요. 소중한 사람에게 이 행복을 선물로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앙리 마티스는 그의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표현적이라고 했어요. 사물과 그것을 둘러싼 공간과 비율 같은 요소가 모두 자기 목소리를 냅니다. 색채가 드러나는 방식은 매우 직감적입니다. 모든 선입관을 내려놓고 색을

칠했다는 앙리 마티스.



마티스가 꿈꾸는 미술은 균형과 순수함, 평온함의 예술이었습니다. 그는 혼란스럽고 절망적인 주제는 제거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좋은 안락의자처럼 보는 이에게 휴식을 주는 미술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정말 그런 의자 같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을 잠시 쉬게 해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휴식의 자리 말입니다.


파리 친구의 욕실에서 시작된 한 점의 푸른 그림은 결국 나를 퐁피두의 마티스 방으로 이끌었고,
그 길은 다시 니스의 햇살 아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의 색채는 단순한 시각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임을 깨닫습니다. 예술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깊이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티스 블루 ― 그것은 결국, 삶을 다시 사랑하게 만드는 색이었습니다. by Sarah


앙리 마티스의 푸른 누드와 조각이 있는 방 @ 마티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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