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생각구조 따라가기
Every child is an artist. The problem is
how to remain an artist once we grow up.
Some painters transform the sun into a yellow spot ; other transform a yellow spot into
the sun." by Pablo Picasso
모든 아이는 예술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라면서 그 예술가를 어떻게 우리 안에
남겨두느냐 하는 것이죠. 어떤 화가는 태양을 하나의 노란 점으로 변형시킵니다. 또 다른 화가는
노란 점을 태양으로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피카소
피카소의 이 말은,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예술가로 살아남는 법을 알려 주는 것 같아 오래전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몇 년 전, 피카소의 ‘생각 구조’를 다룬 다큐를 아주 흥미롭게 본 기억이 있어요. 유치원의 대 여섯 살 아이들에게 피카소의 그림을 보여주며 제작자가 질문을 던집니다.
이 그림, 잘 그린 거 같아요,
못 그린 거 같아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잘 못 그린 거 같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덧붙이는 말이 '(이 그림은) 서너 살 자기 또래가 그린 그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답 속엔 아이들만의 솔직 단백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단순함이야말로, 어쩌면 피카소가 평생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예술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릴 수 있게 되기까지
평생이 걸렸다.
20세기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대 미술의 거장인 피카소가 쉰 살이 훌쩍 넘긴 후 그린 그림들을 보고 말이죠. 여러분들은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보고 무엇을 느끼시나요?
피카소는 날 때부터 천부적인 화가였음이 분명했지만 스페인 사람의 속성답게 아주 정열적이고, 거친 매력이 있었죠. 10대의 소년 피카소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그 정교함에 깜짝 놀라 그가 가히 미술 천재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투비 화가였던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전통주의에 따분함을 느끼고,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파리로 입성합니다.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근대화된 도시이자 신세계였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선망하는 말 그대로 '예술의 도시' 였으니까요.
물론, 피카소는 아름답고 보기 좋은 그림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었죠. 르네상스 미술의 질서 중에 하나였던 원근법을 타파하고 사물의 형태를 사정없이 이글어 뜨리며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큐비즘, 입체주의'의 창조가 바로 그의 손 끝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눈에 비친 세계는 단편적인 것이며 파편적인 형상이다'라고 어려운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에요. 그런 피카소의 눈에 띄는 독창성으로 20세기 미술계는 완전히 새로운 변화의 측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Unlearn(배운 것을 잊다). 십수 년간 공백을 깨고, 세상에 재기한 피카소의 이 말은 의미심장한 울림이 있습니다.
Unlearn ― 배운 것을 잊는 용기
‘배운 것을 잊어라(Unlearn)’ — 이 말은 예술가의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통찰이었습니다. 무언가를 더 배우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우니까요.
추석연휴때 보았던 트렌드 코리아 2026에서도 “Unlearn의 시대”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기존의 성공공식과 학습된 틀을 ‘비워내는 능력’이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핵심 역량이라는 분석이었죠. 지식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필요한 건 ‘잊어버릴 용기’, ‘다시 보는 감각’, ‘낯설게 보기의 힘’이니까요. 피카소는 이미 100년 전에 그것을 실천한 장본인 이었네요.
큐비즘 ― 세상을 해체하고 다시 붙이다
좌우지간 그는 당시 빛을 좇던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세상을 ‘조각’ 내어 다시 붙이는 방식으로 예술을 재정의했습니다. 그의 눈엔 세상이 한쪽 방향이 아니라 위, 아래, 위위 아래. 여러 시선이 동시에 존재하는 파편의 세계로 보였던 겁니다. 와우.
뉴욕 MoMA 한가운데에서 마주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한눈에 봐도 낯설었습니다. 화면 속 다섯 명의 여인은 각자의 시선과 형태로 제각각 서 있습니다. 어디선가 부서져 나온 듯한 얼굴들, 각도와 방향이 뒤섞인 몸의 조각들 —
익숙한 조화 대신, 불안한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 그림처럼 예쁘거나 ‘잘 그린 그림’이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다르게 본 그림’이라 하는게 맞겠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통해 “보이는 대로 그리지 말고, 보는 방식을 그려라”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미술의 질서 ― 원근법, 균형, 아름다움 ― 그 모든 것을 단 한 번의 붓질로 깨뜨리면서요!
1907년, 이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충격에 가까운 혼란을 느꼈다고 합니다. ‘이게 정말 그림이야?’
‘이건 부서진 조각의 나열일 뿐이잖아.’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예술은 한 단계 진화했습니다. 피카소는 눈에 보이는 ‘하나의 시점’을 거부하고, 사람이 대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과 단면을 동시에 담으려 한 것이죠. 그것이 바로 입체주의 Cubism 의 시작이었습니다. 피카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네요. 〈아비뇽의 처녀들〉은 새로운 미의 개념을 만든 그림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의 언어’를 만든 그림이니까요. 그의 붓 아래에서 인간의 시선은 더 이상 평면에 머물지 않고 다차원으로 움직이며, 충돌하며, 변주됩니다. 화면 앞에 서 있으면 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질서가 무너지고, 형태가 낯설어지며, 눈이 아니라 감각으로 세상을 다시 읽게 되는 순간. 그게 바로 피카소가 말한 “Unlearn”, — 이미 배운 것을 잊고, 다시 보는 힘 — 그 자체였습니다.
내가 사랑한 마레지구
피카소의 흔적을 따라 파리 마레지구 골목 골목을 걷습니다. 고풍스러운 저택과 트렌디한 부티크, 그리고 예술의 숨결이 공존하는 동네. 이제는 ‘히스토릭 마레 Historic Marais’라 불리지만, 그 안의 공기엔 여전히 예술가의 자유로운 기운이 떠다닙니다.
피카소 미술관의 햇살
미술관 앞 작은 광장에는 오후의 햇살이 가득합니다. 벤치에 앉아 바게트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면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려옵니다. 그 평화로운 소리가 이 도시의 리듬처럼 느껴집니다. 피카소 미술관에는 그의 모든 시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푸른 시절, 입체주의, 그리고 사랑과 전쟁의 초상들까지. 그의 삶은 곧 20세기의 예술사였고, 그의 그림은 인간 내면의 거울이었습니다.
도라 마르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화풍으로!
그날따라 제 눈에 들어온 건 도라 마르의 초상이었습니다. 피카소의 연인이자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였던 그녀의 얼굴은 기이할 만큼 찢어지고 뒤틀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불균형이 오히려 인간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듯했습니다.
피카소에게 사랑은 언제나 예술의 촉매였죠. 사랑에 빠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스타일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래서 그의 연인들은 모두 그의 화풍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빛이 흔들릴 때, 우리는 다시 배운다
피카소 미술관의 창가로 오후의 빛이 스며듭니다. 그 빛이 캔버스 위에서 흔들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술이란 결국,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배우는 일이다. 그림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잠시 멈춰 서서, ‘아, 이런 빛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예술가의 수 만큼 우리는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는 거니까요.
로지에 공원, 그리고 예술의 일상화
마레지구의 돌바닥 골목을 따라 걷습니다. 갤러리, 서점, 카페, 구제 옷가게가 엇갈려 있고 창문마다 파리의 현재와 과거가 겹쳐 보입니다. 로지에 공원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면, 교회 종소리가 들립니다. 그 순간, 예술은 미술관의 벽을 넘어 내 일상으로 들어옵니다. 파리의 오후 햇살, 커피잔의 반짝임, 그 모든 것이 작은 예술의 장면이 됩니다.
Unlearn Again ― 다시, 낯설게 보기
십수 년간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 올린 피카소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술의 순간을 만들어갑니다. 예술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방식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요. 그날, 마레지구의 골목을 걸으며 깨달았습니다. ‘배운 것을 잊는 법’을 아는 사람은 다시 세상을 새롭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요!
by Sarah
예술은 박물관의 벽에만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걸음 속에, 평범한 일상속에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