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외치다

모로미술관에서 이제는 K-컬처시대

by Sarah Kim
파리 시청 앞— K-POP의 등장


올 여름, 파리 시청 앞 백화점 벽면에 대형 옥외광고가 걸려 있었습니다. “K-POP POP-UP STORE OPEN!” 모로의 살로메가 신의 빛을 탐하던 그곳 파리에, K-POP의 아이돌의 등장이 재미있었습니다.


BHV Marais 백화점과 파리 시청


그건 단순한 팬 문화를 넘어, 노래로 이뤄지는 현대의 어떤 의식 같았습니다. 케데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영향이었을까요! 그 풍경이 낯설면서도 아주 감동적이었습니다. 루브르와 노트르담 사이, 서울의 리듬이 파리의 공기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블랙핑크, 뉴진스, 세븐틴… 그들의 네온빛 포스터는 현대의 신화처럼 빛나고 있었지요.



파리, 모로 미술관에서
서울 K-POP까지, 케데헌으로 국뽕이 차오른 날

모로 미술관 — 신의 빛을 그리던 남자


파리 9구, 언덕 위에 고요히 자리한 모로 미술관은 한 화가의 집이자, 신화의 사원이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는 상징주의 화가입니다. 모로는 19세기 후반, 인상주의가 대세였던 시절에도 빛과 풍경 대신, 신화와 환상, 인간의 내면을 끝까지 그려낸 고집스러운 예술가였어요. 그의 캔버스에는 오이디푸스, 살로메, 헤라클레스, 성서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단지 전설 속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고뇌, 욕망, 침묵, 애정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는 신을 믿지 않던 시대에 ‘신성한 빛’을 그리려 했던 마지막 낭만주의자였죠. 그의 화폭 속 인물들은 현실보다 느리게 움직이고, 눈빛에는 세속이 아닌 ‘계시’가 깃들어 있습니다.


모로 미술관 내부


그림 앞에 서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모로의 금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닿을 수 있는 마지막 빛의 결. 그는 신화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구원을 동시에 그렸고, 그 신화의 잔광은 지금도 벽 속에 아득히 남아 있습니다.


〈살로메〉의 칼끝은 빛을 가르고,〈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의 시선은 인간의 두려움을 응시합니다. 모로는 신화의 형상을 빌려 영혼의 심연을 해부한 재능있는 화가였지요. 칼, 거울, 장막, 뱀 — 그의 화면을 지배하는 이 기호들은 모두 ‘퇴마의 상징’이며 ‘의식의 도구’처럼 보여집니다. 그의 화폭은 신을 그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안의 악마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그린 기록이었습니다.


귀스타브 모로 뮤지엄의 상징, 나선형 계단


모로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 성경 속 헤롯의 딸,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요구하는 이야기입니다. 모로의 살로메는 단순한 팜므파탈이 아니지요. 그녀는 아름다움과 죽음, 유혹과 두려움이 얽힌 복합적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금빛 장신구, 정지된 듯한 장면 속에서 살로메는 마치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감정”처럼 서 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섬뜩했고, 정교하면서도 혼란스러워요. 마치 ‘무의식이 그린 성서화’ 같았아요.

귀스티브 모로, 살로메 Salomé
귀스티브 모로, 살로메 Salomé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이 작품은 모로의 출세작이자, 그의 예술 세계를 단단히 드러낸 상징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내는 스핑크스를 마주하는 장면. 하지만 모로는 단순한 전투의 순간이 아닌, 지혜와 본능의 팽팽한 대치, 인간 내면의 갈등을 화폭에 담았습다. 이 그림은 어떤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아는 ‘나’는 정말 ‘나’인가?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


금빛 신화를 지나,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마리의 호랑이입니다. 한국과 케이팝이 열풍을 다시 몰고온 케이팝 테몬 헌터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더피 말이에요! 까치와 호랑이, 웃음의 퇴마! 예로부터 ‘작호도(捉虎圖)’는 악귀를 물리치고 정의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그려졌죠. 모로의 신들이 하늘의 신화라면, 작호도의 호랑이는 인간의 신화입니다.그것은 외부의 신을 향한 숭배가 아니라, 내면의 야성을 깨우는 상징처럼 보여집니다.


작호도 —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간 신화


작호도(좌) 케데헌 최애 캐릭터 더피(우)


까치와 호랑이가 그려진 이 민화에는 한국적 퇴마의 미학이 숨 쉬고 있지요. 호랑이는 무섭지 않습니다.

눈이 둥글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습니다. ‘권위와 악’을 풍자하며 웃음으로 정화하는 존재입니다.

까치는 복을 전하고, 호랑이는 잡귀를 몰아냅니다.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그 웃음이 곧 퇴마의 주문이 됩니다. 모로가 신화의 상징으로 어둠을 견뎠다면, 한국의 화가는 해학과 따뜻함으로 세상을 구했습니다.

서양의 금빛 성전과 동양의 민화 한 폭이 “예술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구하는 일”이라는 진리를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이 두 예술의 궤적은 닮았습니다. 모로가 신의 세계에서 빛을 구했다면, 우리의 민화에서는 인간의 내면에서 힘을 찾았습니다.


파리 시청 앞 — K-POP의 등장



이제 파리의 거리에서 들리는 건 성가가 아니라, 리듬과 비트로 재구성된 21세기형 신화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남녀가 한국 아이돌의 소녀시대 Gee를 큰소리로 흥얼거리는 것을 봤어요. 새삼 케이팝의 위상을 잔잔한 일상에서 느껴볼 수 있었답니다. K-POP은 단순한 음악 장르가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무대 위에서 창조해내는 현대의 예술언어이지요. 모로가 붓으로 신의 형상을 새겼다면, 오늘의 아티스트들은 빛과 리듬으로 인간의 에너지를 그려냅니다.



금빛 신화에서 리듬의 신화로


예술은 늘 변하지만, 인간의 표현 욕망은 같은 자리에 머무릅니다. 모로의 그림 속 여신이 금빛으로 세상을 비추던 시대에서, 이제 아이돌이 네온의 리듬으로 세상을 흔드는 시대까지 — 그 둘 사이엔 한 줄기 빛이 흐르고 있습니다.


신의 빛이 인간의 리듬으로 옮겨올 때, 예술은 다시 ‘삶’이 됩니다. 그것이 파리의 미술관을 걷는 이유이자,

우리 모두가 여전히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마레지구의 황혼, 빛과 리듬 사이를 걷다


모로 미술관을 나와 마레지구로 향했습니다. 젊은 파리지앵들이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모로의 신화, 작호도의 해학, 케이팝의 노래 — 모두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음을.


내가 사랑한 마레지구

예술은 시대를 넘어 인간 안의 어둠을 견디게 하는 의식(ritual)입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넷플릭스 케데헌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안의 약점과 모순을 받아들으면서도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 어쩌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요. 어떤 이는 붓으로, 어떤 이는 음악으로, 어떤 이는 웃음으로 그 여정을 따라갑니다. 그리고 우리의 서울이 너무 아름답구나! 새삼 놀랐습니다. 파리를 벗어나는 하늘 위에서요.


keyword
목, 일 연재
이전 10화피카소 미술관에서 배움을 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