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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런던의 봄

런던, 여행과 일상이 만나는 하루

Daunt Books — 여행과 책 사이

by Sarah Kim

여행과 일상이 만나는 하루
여행, 서점, 소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



런던의 5월은 다채로워서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어떤 날은 인생의 화양연화처럼 화사했고, 또 다른 날은 하루 온종일 흐리고 비가 내렸어요. 늦잠을 잤던 어느 날. 책 구경을 하러 Daunt Books Marylebone으로 향했습니다. 구글지도에 표시해 둔 장소가 아니라, 발이 먼저 끌어가는 방향이었죠.


그 날, 런던에서의 하루는 느리게 시작했다가 빠르게 끝났어요. 특별히 아침 공기는 여행자의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했어요. 평범한 하루 루틴이 낯선 도시에서도 빛나 보였습니다.


Marylebone에서 시작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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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식료품점, 작은 꽃집,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런던의 생활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순간, 이 도시가 마침내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Daunt Books — 여행자를 위한 서점


1900년대 초 영국 여행 서점으로 시작한 곳입니다. 지역별·대륙별로 책을 배열하는 방식이 특징이라 서점을 걷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을 줍니다.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 때문에 사진보다 실제가 훨씬 따뜻합니다. 여기서는 책을 고르는 행동이 곧 탐험이 됩니다.


서점 밖으로 나가 걷다보면 셜록 홈즈 동상이 보이는 거리.

문학 속 인물이 현실과 겹쳐 보이는 장소에요. 그곳에서 소설을 산다는 것은 단순한 구매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문장들을 발견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내 손에 들어온 책
Beasts of a Little Land — 작은 땅의 야수들


이 책은 한국의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를 인물의 삶으로 보여줍니다. 역사를 강의하지 않고, 사람을 보여줍니다. 그게 읽히는 힘입니다. 런던에서, 한국의 역사를 마주한 순간이라니요! 해외에서 만난 한국 책은 이상하게 국뽕같은 걸 일으켜, 정체성을 곧장 끌어올리죠~^^



인물 —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창


정희


기생으로 훈련되지만, 생존을 예술로 바꿉니다.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팁니다.


To be seen was sometimes the only power she had.

보여진다는 것, 그것이 그녀가 가진 거의 유일한 힘이었다.


인간에게 존엄은 남이 인정해주는 순간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보고 있는 순간에 존재합니다.



한수


가난에서 출발한 남자. 권력, 돈, 연줄—모든 것을 이용해 위로 올라갑니다.


Hansu learned early that loyalty was a luxury.

한수는 충성심이란 사치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그의 선택은 비판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진 시대의 환경은 이해해야 합니다. 이 소설은 악인을 만들지 않습니다.

상황이 사람을 어디까지 구부릴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명진


정의에 몸을 던진 사람. 독립운동을 택합니다.

Some lives are not lived for survival, but for meaning.

어떤 삶은 생존이 아니라 의미를 위해 살아진다.


이 문장은 소설 전체의 축입니다.

왜 싸웠는가, 왜 버텼는가, 왜 기록해야 하는가를 설명합니다.


한국 역사, 이민자의 시선


주혜 킴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작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가까워서 놓치는 고통과 너무 멀어서 오해하는 역사 사이에서 균형잡힌 시선을 보여줍니다.


Perhaps because the land was small,
the hearts of its people had to grow large.
땅이 작았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더 커져야만 했다.


이 문장을 덮으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작은 땅에서 배운 것은 투쟁이 아니라 확장이었다는 걸.


Beasts of a Little Land


Daunt 서점 — 공간이 주는 의미


Daunt Books는 여행 서점이지만, 어떤의미에서는 사유의 서점입니다. 여행자의 발걸음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대륙별로 묶어 놓은 서가입니다. 서점에서 나와, Marylebone의 작은 카페에 들렀어요. 현지인들 사이에 앉아 마신 플랫화이트는 이날 따라 유독 달콤했어요. 여행은 공간을 바꾸지만, 책은 방향을 바꿉니다. 그날 Daunt Books의 작은 땅의 야수들은 여행의 기념품이 아니라 이 여행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런던의 하루가 다채로운 하늘을 보이며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런던의 하늘, 런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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