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식사
시대의 속살을 읽다. 에드와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c.1863,
파리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영화, 내부자들
2015년 연말로 기억합니다. 배우 조승우의 빅팬인 저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넘치는 이병헌과의 컬래버레이션 영화, 내부자들 Inside Men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죠.
그런데 개봉 당시에 봤을 때, 생각보다 훨씬 추잡하고 탐욕스러운 정계인사들의 문어발식 인물 구조에 가닥을 못 잡아 헤맸습니다. 결국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데 실패했지요.
그 와중에 하나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씬이 있었으니, 바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분)가 선거자금 후원을 비밀스레 받던 밀회 장면이었습니다. 그때 정계인사들이 모이던 시크릿 장소에 전시된 마네의 그림 <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제 눈에 쏙! 들어왔지요. 이번에 영화를 집중해서 못 봤으니 나중에 볼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한번 보자. 하고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그러다가 얼마 전 에어 프랑스 안에서 영화 <내부자들>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비행시간이 넘치고도 남은 까닭에 노트 5S펜으로 등장인물들 조직도를 그려가며 몰입해서 볼 수 있었죠.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얘기는 영화가 아니라 그림인데, 서론이 길었습니다. 우민호 감독이 왜 영화 행간에 <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을 소품으로 넣었는지 알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했었거든요...
에드와르 마네, 파리 인상주의의 개척자, 근대 미술의 아버지 혹은 모더니즘의 창시자 등의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닙니다. 여기서 잠깐! 마네와 모네는 동시대를 살았고, 둘 다 인상주의 화파에 속해 혼동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죠? 저도 중학교 때 마네 모네가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되게 헷갈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둘은 비슷한 시대에 파리에서 활동을 했지만 마네(1832.1.23 ~ 1883.4.30)가 모네(1840.11.14 ~ 1926.12.5) 보다 8년 정도 연장자입니다. 가나다라 순으로 기억하세요. '마'네가 '모'네 보다 먼저입니다. ^^ 하하.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
마네는 종종 인상파 화가 군에서 빠지기도 하지만 근대미술, 인상주의의 출발이 된 시초의 화가라는 점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늘 흥미롭게 바라보는 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모든 역사의 전환점에는 기존의 관습과 질서에 과감히 맞서고 전혀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혁명 같은 인물들이 있죠. 미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아비뇽의 처녀들>의 피카소가 그랬다면 그 이전에 19세기 후반엔 마네의 <풀밭에서의 점심식사>가 그렇지요. 이에 비해 우리 대부분이 사랑해 마지않는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사에서 보자면 그리 독특한 이력을 내 세운 건 없다는 평론가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 피카소와 아비뇽의 처녀들
19세기 파리는 혁명 후 파리 개발 사업이 한창이었고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답게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파리로 불나방처럼 모여들었죠. 당시에 나폴레옹 3세 집권기였는데 살롱문화와 아카데미풍의 문화적 과시 양상이 부르주아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있었고요. 또, 소위 말해 매춘이 성행하던 때였는데 '물랑 루주'영화에서의 샤틴(니콜 키드먼 분)과 같은 신분상승을 꿈꾸는 고급 창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쾌락의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나 그렇듯 기득권을 가진 지배층 세력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식으로 위선적일 때가 많았죠. '본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마네의 힘은 여기 있습니다. 기존에 이상적이고 미화된 아름다움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근거해 그림의 주제를 또렷이 드러냈으니까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 마네 관
마네의 이 그림은 당시 미술가의 등용문과 같았던 살롱전에서 신랄한 비난을 받으며 낙선을 합니다. 그래도 쉽게 포기할 수 없죠. 지금 그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쟁쟁한 화가들이 낙선작만을 위한 낙선전을 엽니다. 근데 이 전시회에서도 역시 파리를 발칵 뒤집을 만큼, 아니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을 만한 하나의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마네라는 이름의 이 재능 있고 도발적인 화가로부터 요.
당시 부르주아의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고, 이전까지 지켜왔던 질서인 원근법이 무시돼서 평면적인 그림이며, 무엇보다도 시대의 인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는 외설적이고 도발적인 이유에서 말입니다.
대낮에 신사다운 정장을 입은 두 남자 사이에 나체의 여인이 정면을 응시한 채 앉아 있습니다. (그림 속 모델은 마네의 그 유명한 올랭피아의 빅토린 뫼랑입니다. 그림에서는 창녀로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여류화가이기도 했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 '생 라자르 역에서'의 모델 역시 그녀입니다.) 실제 부르주아 사이에 흔히 있는 풍경이었겠지만 1863년 당시엔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대단히 불편하고 절대로 '잘 그린 그림'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죠.
예술이 이 부패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영화에서는 정의가 승리하는 쾌감을 부르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힘들죠. 다만 예술은 그것을 마주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영감을 줍니다. 피를 부르는 정치적 혁명은 아닐지언정 우리의 감성과 지성을 일깨워 주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건 분명하지요. 자신이 보는 대로 생생하게 세상을 풀어내고, 시대의 속살을 보이며 빛과 어둠의 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에두아르 마네. 그는 모네를 위시한 많은 인상주의 후배 화가들의 우상이자 근대미술의 창시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나저나 마네의 올랭피아가 있어야 할 오르세 미술관 자리에는 또 푯말만 덩그러니 남아 있네요. 다른 나라 전시회에 파견 나갔습니다. 누구나 알만한 인기 있는 작품들은 제자리를 지킬 일이 드뭅니다. 갈 때마다 없어요. 없어. 챗! By Sara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