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묘한 카페 이름
*미리 드리는 말씀 - 저는 특정 종교나 민족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이 없습니다. 편하고 가볍게 읽어주세요.
"나는 지금 아랍인들과 함께 살면서 인내심의 극한을 체험하는 중!"
파리 11구에 산지 5년째이다. 그 전에는 파리 10구에서 약 3년,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에서 약 3년 정도 살았다. 훨씬 전엔 아프리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라바트, 부룬디 수도 부줌부라, 챠드 수도 은자메나,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프랑스 알베르빌(Albertville), 파리 위성도시 크레테이(Créteil), 프랑스 중남부의 운치 있는 도시 리용(Lyon) 등에 살았었다.
휴~~ 시간 역순으로 회상해보니, 타국 생활 23년 동안 정말 많이도 옮겨 다녔구나. 그중 지금 살고 있는 파리 11구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곳이다.
파리는 20개의 구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에 있는 1구부터 시작하여 외곽의 20구까지 시계방향으로 빙글 돌듯이 위치해있어, 모양새가 흡사 달팽이를 닮았다.
전 세계의 소매치기들이 해마다 여름이면 장기출장(?) 오는 파리 중심의 관광지역은 물론이고, 차이나 타운으로 불리는 13구,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15구 등, 구마다 특징이 있다. 마레지구라 불리는 4구는 개성 있는 가게들과 독특한 카페(게이 바, 레즈 바)들로 가득하다. 그래선지 LGBT집회는 주로 4구에서 열린다. 라틴지구라 불리는 5구와 6구는 유서 깊은 대학교와 에꼴이 있어,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를 누비는 젊은이들의 매치가 묘한 역동감을 주는 곳이다. 특히 6구의 '생제르망 데프레'에 있는 카페들은,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르 등과 같은 문인, 학자, 예술가들이 주로 찾았던 곳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학구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프랑스를 움직이는 상류층이 주로 거주하는 16구, 각종 행사 및 데모가 열리는 10구의 리퍼블릭 광장, 파리 북역을 중심으로 펼쳐진 흑인 타운, 불법 대마초 거래가 빈번한 19구, 20구의 어스름한 뒷골목 등등...... 서울의 1/6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파리는 흑과 백, 명과 암 등 온갖 다양성이 임팩트하게 밀집해있는 도시이다.
11구는 일찍이 아랍인들이 터전을 잡았다. 이곳은 케밥집, 아랍 전통 의상을 판매하는 옷가게, 코란 및 이슬람 서적 전문 서점, 시샤바(Shisha bar)들이 즐비하다, 길을 걷다 보면 그들의 전통향을 피운 집이 많아 온 동네에 아랍 향내가 진동한다.
더구나 내가 사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반경 한 블록 내에 이슬람 사원이 2개나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침실 바로 옆 건물이다. 분명 다른 건물인데, 사이에 골목이나 통로가 없는 유럽식 도시구조인지라, 그리 두껍지 않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 건물이 붙어 있다. 이런 상태이다 보니, 하루 5회 기도하는 그들의 아잔(Adhan) 소리가 마치 확성기를 내 귀에 직접 대고 소리치는 것처럼, 소음이 대단하다. 낮에는 비교적 참을 만 하나 새벽 4시나 5시에 울리는 그들의 기도 소리는 나의 단잠을 깨우고, 나로 하여금 헐크로 변하여 울부짖게 만든다.
주민들이 단체로 서명하여 모스크에 건의도 하고, 구청에 신고도 몇 번 해보았지만 그때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또다시 줄기차고 성실하게 소리를 만들어낸다. 몰래 가서 건물을 폭파하고 싶을 지경이다. 벽을 맞댄 건물이라, 모스크가 폭파되면 내가 사는 아파트도 무너질 것이므로, 사람 좋은 내가 참고 있을 뿐, 언제 돌변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새벽 수면을 심하게 방해받은 어느 날, 견디다 못해 모스크에 찾아갔다.
"(똑똑)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맘(Imam) 뵈러 왔어요."
"잠시 기다리십시오."
안내원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그들의 종교지도자인 이맘을 부르러 간 사이에 난 그 자리에 서서 이곳저곳을 보았다. 규모가 작은 '개척(?)모스크' 같은 느낌이다.
"헬로우~ 예쁜 아가씨?"
이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다가와 내게 건네는 말이 왠지 요상하게 기분이 나쁘다. 예쁜 아가씨라고?! 그래, 내 외모가 좀 아름답긴 하지. 근데 이건 너무 희롱성이 강하잖아. 게다가 건들거리며 말하는 품새라니...
"안녕하세요. 저는 바로 옆 건물에 살고 있어요."
"아~ 그래, 어쩐 일이신가?"
"이곳에서 새벽마다 하는 집회의 소음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요. 특히 오늘은 새벽 4시 반에 잠을 깼다구요. 기도시간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이크 사용이라도 자제해 주시면 어떨까요?"
"그건 곤란한데?!"
"방음장치를 조금 더 강화해주시든지요."
그러자 이맘이 씨익 웃으며 하는 말이,
"그럼, 문을 닫고 하면 어떨까?"
"......"
화가 나서 평정심을 잃은 나에 비해 이맘은 느긋하다 못해 능청스럽게 내게 약을 올렸다. 그 와중에, 안내하던 젊은 남성이 일어나서 바늘 끝 보다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슬슬 다가오는 바람에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서 마이크와 대용량 앰프까지 사용하면 이웃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그것도 꼭두새벽에. 아무리 문을 닫아도 벽을 통해서 소음이 이웃에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그걸 정녕 모른단 말인가. 이맘이 말하는 태도는 또 왜 저래? 이웃주민이 가서 불편함을 호소하면 적어도 귀담아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타고나지 않고서야 능글거림이 저리도 자연스러울 수는 없다! 대단한 재능이야!
새벽마다 울리는 소음보다 이젠 이맘의 태도가 더 불편한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응대해줘야 할까.
'그들이 경건하게 기도하는 시간에 맞춰 음악을 크게 틀어볼까?'
'아니지, 음악보다 포르노 비디오 음향이 더 효과적일 거야'
'그래! 기도소리와 포르노 소리가 어울리면 정말 볼만하겠다'
'어쩌면 자객을 시켜 그들의 종교 지도자를 납치해버리는 게 더 빠를 지도?'
'박살을 내도 시원찮을 허세 덩어리들......'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이 들끓고 있을 무렵, 집 밖으로 나갔더니 바로 아래층에 있는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L'Assassin" - "아니, 이게 뭐야? <어쌔씬>...
자객이라고? 아이 깜짝이야!”
방금 자객 생각을 하던 터라 심장이 쫄깃해졌다. 늘 보던 카페이지만 간판에 적힌 이름을 이토록 유심히 보고 가슴 깊이 공감하기는 처음이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내가 주로 가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의 간판도 눈에 확 들어온다.
"Cannibale Café" - "어라, <식인종 카페>..."
이 동네에 한 맺힌 인간들이 많은가 보군.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자 이런 카페도 있다.
"Les P'tites Indécises"
"<우유부단한 하찮은 기집애들>"
이거... 지금 나 보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이 카페 주인들은 어떤 문학적 상상력과 사연을 가졌기에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혹시 그들도 나와 같은 소음 피해자일까? 참, 여기는 아랍 구역이니 어쩌면 아랍인 일지도.
모든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신께 하듯 조심스럽게 하자. 왜냐면, 평소에 능글거리다가 언제 폭력적으로 돌변할지 모르니 항상 조심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들을 법정에 세우는 날까지만이라도.
허허......
주민 여러분!
<자객>을 시켜서 새벽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잡아다
<식인종>처럼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아봅시다!
주민의회에 안건을 제의,
구청이 아닌 검찰에 정식으로 고발하고
소음 발생인을 법정에 세워
우리도 잠 좀 제대로 자보자고요!
<우유부단한 사람들>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꼴 나지 말고...
그러게!
근데 그게 정말 가능하기나 할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