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기반 문화 VS 죄책감 기반 문화
한 나라나 민족의 특별한 생존 방식을 사회학적으로는 ‘문화’라 칭하고, 정치적으로는 ‘제도’라고 부른다.
한국을 떠나 23년 동안 세계 이곳저곳 많이도 다녔다. 나라별, 지역별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형태는 무척이나 많이 달랐다. 그것을 담아 표현할 그릇으로 나는 ‘문화’를 선택했다. 내가 보고 체험했던, 주관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제도가 포함된 문화라는 컨셉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도대체 수치심형이 무엇이고, 죄책감형은 무엇인가.
‘수치심 기반 문화(Shame based culture)’란, 잘못된 행동을 했음에도 양심에 거리낌이 별로 없다가, 그 장면을 누군가에게 들켰을 때 극심한 수치심을 느끼는 문화양상이다. ‘성전(성스러운 전쟁-聖戰)’과 ‘명예살인¹’이 존재하는 이슬람 나라들이 대표적인 ‘수치심형’ 문화권이다.
‘죄책감 기반 문화(Guilt based culture)’는, 양심이라는 내면의 감독관이 과도히 작동하는 문화양상이다. 원죄설의 기독교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미국과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죄책감형’ 문화권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정말 독특하게도 ‘수치심형’ 문화와 ‘죄책감형’ 문화가 반반 공존한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유교로 인해 ‘수치심형’ 문화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거기다 130여 년 전에 전해진 기독교 영향으로 ‘죄책감형’ 문화가 첨가되었다.
종교나 가훈에 따라 ‘수치심형’이 조금 더 강한 가정도 있고, ‘죄책감형’이 더 강한 가정도 있다. 그러나 대개 한국의 일반적인 가정은 두 가지가 섞여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체면을 중시하는 것은 ‘수치심형’ 문화 유형이다. 그에 비해, 수년 전 가톨릭에서 유래했던 “내 탓이오!”라는 사회운동은 전형적인 ‘죄책감형’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프랑스는 어떨까. 특히 프랑스의 직장 내 분위기는 과연 어떨까. 신기하게도, 프랑스가 서구권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직장인들은 '수치심형'에 더 가깝다.
공무원들의 업무나, 모든 행정 절차에 보여주기식 시스템이 존재한다. 한 가지 민원 서류를 떼기 위해 준비해야 할 부차적인 서류 양은 어마어마하다. 오죽했으면 프랑스가 "페이퍼의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데에는, 출생의 뿌리가 이슬람권인 이민자가 사회 전반에 스며든 것도 무시하지 못할 이유 중 하나이리라.
‘문화’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들을 말한다. 건축이나 패션 등은 형태가 있는 문화이다. 희로애락의 표현방식이나 종교, 도덕처럼 형태가 없는 것도 있다.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환경과 기후, 언어습관, 생존 방식 -농경사회인지 유목사회인지 등- 으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형성되어 왔다.
국가와 민족 같은 거대 공동체의 ‘문화’가 그러하다면 그 속의 개개인은 어떤가?
한 사람의 행동양식을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가치관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하는지도 가치관으로 결정된다. 그 가치관의 형성은 바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배를 받는다.
만약, 익숙하게 길들여져 살던 사회와 전혀 다른 문화 환경이나 상황에 갑자기 뚝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자신도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심하면 충격을 받기도 할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충격>이다.
‘문화충격(Culture shock)’이라는 용어는 1954년에 캐나다 출신 인류학자 칼레르보 오베르그(Kalervo Oberg)가 처음 사용하였다.
충격 상태를 극복하여 자신의 생각과 입장이 명확히 정리되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를테면, 충격이 내적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라든가, 혼동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급기야 무엇이 올바른지 무엇이 그른지 판단이 어려워지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그것은 비단 나라 간의 이동뿐만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공동체마다 다르게 형성된 문화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십 수년 전, 아랍권에 살았을 때였다. 미국인 친구가 아랍인들의 겉치레와 허례허식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예”, “아니오”가 분명한 미국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치심 문화권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마저 이해 불가였던 거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내게 놀랐다. 왜냐하면 미국인이 도마에 올려서 말하고 있는 아랍인들의 행동이 나로서는 십분 이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치심형과 죄책감형이 적절히 어우러진 사회 속에서 성장한 덕분이다. 내가 느낀 것을 그에게 설명해주었으나, 그는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명예살인이나 여성 할례 등의 문제는 그 친구에게나 내게나 둘 다 끔찍했다. 간만에 본 의견 일치였다.
어쨌든, 아랍의 ‘수치심 기반’ 문화가 미국 친구에게는 잊을 수 없는 문화충격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바야흐로 종교전쟁의 시대이다. 우리는 공산주의/사회주의의 대척점으로서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서로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며 이데올로기의 칼날을 겨누던 냉전(Cold war) 시대를 거쳐왔다. 현대는 기독교로 대표되는 미국&서유럽이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아랍권과 날 선 대립을 하고 있다. 물론 최근 러시아의 도발로 냉전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TMI : 참 재미있게도, TV에선 연일, 러시아 정교의 주교가 젊은이들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연설을 한다. “이 전쟁은 성스러운 전쟁이다. 혹여라도 전사하면 생전의 모든 죄가 사함 받고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다.”라고 '프로파간다'하고 있다. 그들은 왜 이슬람의 ‘성전’ 개념을 따라 하고 있을까. 하긴, 러시아에는 ‘성전(The Sacred War)’이라는 군가도 있으니, 그 개념이 애초에 없었던 것은 아닐 터. 그러나 내 눈엔 왜 터무니없는 기만으로 보이는 걸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다툼은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다. 십자군 전쟁을 비롯하여, 신의 이름으로 정말 지난하게도 싸워왔다. 그 대립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정치, 종교, 문화적으로 양측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화합할 수가 없다.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 어찌 양심의 가책 없이 수치심만 느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으랴.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화’란 세대를 거쳐 내려오면서 습관과 가치관, 종교와 사회적 관습이 어우러진 복잡하고도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부가 불가능한 <그들만의 문화>가 따로 있다. 그러기에 사고 체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당신은 수치심과 죄책감 중 어떤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두 가지 다인가?
각주1. 명예살인 : "우리 동네의 아이샤라고 하는 아리따운 처자가 동네 총각과 비밀연애를 하다가 들켰어요. 그 아가씨 집안에선, <가문의 망신이네, 아버지 얼굴에 먹칠을 하네> 그러며 아주 난리가 났지 뭐예요.
겁에 질린 아이샤는 어디론가 숨어버렸어요. 그녀의 오빠는 동네 사람들 앞에서 엄청나게 화가 난 척 한바탕 쇼를 하고는 여동생을 찾기 시작하는데...
결국 아이샤를 찾아낸 오빠는 유일신 '알라'의 이름으로 그녀를 죽여버렸어요. 가문의 명에를 회복하기 위한 살인이었던 거죠.
보통 이런 경우, 부친이 움직이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주로 오빠나 남동생 혹은 사촌 형제가 움직여요. 아무리 종교적 신념이 강해도 자신의 손으로 자녀를 죽이는 일만큼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니까요.
여동생을 죽인 오빠는 살인죄로 1년 정도 감옥에 있다가 나왔어요. '명예살인'이었기 때문에 형량이 무겁지 않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아이샤의 남자 친구는 어떻게 됐을까요? 연애를 여자 혼자서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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