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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03. 2022

프랑스에서 '수필가'가 불쌍한 사람인 이유

프랑스에 수필은 없다

오늘 아침에도 <식인종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워낙 자주 가는 바람에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꼭 가족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바텐더 격으로는 주로 남자 직원이 일을 한다. 주중 오전에는 Hugo(휴고), 주중 오후에는 Edmond(에드먼드), 그리고 주말에는 Lucas(루카스)가 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안다.


“안녕 사라! 커피 한 잔, 맞지? 뜨거운 물 조금 타서… 응?”

정말 다정하다. 카페 이름만 제외하면...


도대체 카페 이름은 왜 이럴까. 볼 때마다 늘 깜찍하게 놀랍다.


Cannibale Café (카니발 : 명사. 식인종, 사람 잡아먹는 귀신 / 영어에 없는 e가 불어단어 끝엔 붙음) 다정한 Hugo의 모습


“아니, 오늘은 커피 말고 따뜻한 우유 한 잔 줘”

간혹 나는 그들이 뽐내고 싶어 하는 기억력을 뒤집는 장난을 치고 싶다.


노트북을 앞에 둔 나를 보고 Hugo 휴고가 물었다. “원격 재택근무 중인 거야?”


사실, 우리는 아침마다 인사를 하고 날씨 이야기를 하고 시답잖은 주변 이야기를 한다. 그도, 나도, 사적인 부분은 서로 묻지 않는다. 마치 먼저 이야기 꺼내는 사람이 큰 손해라도 보는 것처럼.


그런데 오늘은 휴고가 우리 사이의 불문율을 깨고 먼저 물었다. 우연히 묻는 척, 시크한 품새를 보아하니, 설마, 커피가 아닌 우유를 시켜서 당황했나?


그냥 아무 대답이나 해버릴까, 아니면 부정도 긍정도 아닌 대답으로 얼버무릴까 하고 잠시 생각하는 사이 내 입에서는 벌써 대답이 나오고 있었다.


“아니, 나, 글 써”

“무슨 글?”

“에세이”
“응? 뭐라고???”


그렇다. 저 멀뚱멀뚱한 표정. Hugo 역시 ‘에세이’가 뭔지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12년 전에 첫 책을 출간했다. 그때 사람들이 물었다. 책의 내용과 장르가 뭐냐고… 그 당시 나는  내 책이 에세이집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열심히 설명했더랬다. 아무리 설명해도 프랑스인들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질문이 날아왔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무슨 종류의 책이냐고??"

"???"




에세이의 원조라 불리지만
실은 에세이가 아닌 책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쓴 <수상록(Les Essais)-1580년>을 수필의 원조로 꼽는다. 우리말로 수상록이라 번역된 이 책의 프랑스어 제목은 Essais(에세)이다. 이는, ‘시도하다’ ‘시험하다’ ‘검사하다’라는 뜻의 동사, essayer의 명사형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어의 essay(에세이)가 여기서 유래했다.


몽테뉴 이전에 동서양의 많은 위인들이 수필을 집필했으나, 몽테뉴의 수상록을 서양 수필의 원조로 치는 이유는 그가 제목으로 사용한 essais (에세)라는 단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책은 수필집이라기 보단 오히려 철학책에 더 가깝다.


나는 ‘수필’이란 형식이 참 좋다.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고 예전 국어시간에 배웠었다. 부담 없이, 형식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쓰는 불확실성이 얼마나 멋진가. 사실 글이란, 손이나 붓끝이 아닌, 머리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수필은 손(붓) 끝에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날마다 손가는대로 글을 쓰고 있는데, 오늘 아침 휴고의 질문으로 다시금 ‘수필’에 대한 상념에 빠져버렸다.


수필의 개념과 ‘에세이’라는 용어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essai¹(에세)라는 단어를 ‘시도’ ‘습작’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수필’이란 뜻으로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글을 썼다”, “잡지에 기고했다.” 혹은 “짧은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했다.” 정도로만 말할 뿐이다. 그들에게 소설, 시, 평론과 같이 장르가 확실한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그냥 '글'인 것이다.


'수필'이라는 우리나라 말이
얼마나 고차원적 용어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 설명을 하다가 급기야 나는 ‘프랑스에 ‘수필’이라는 장르는 없는 것이야!’라고 짜증스럽게 결론짓고 싶어졌다. 이제는 설명하지 않을 테다. 그리고 나를 에세이스트라고 소개하지 않을 테다.


왜냐면 그들은 나를 ‘수필가’가 아닌, ‘시도(essai)또는 습작’만 하는 가엽고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각주1. 동아 프라임 불한사전에 나온 essai라는 단어에는, 일곱 번째 뜻으로 ‘수필’이라고 적혀 있긴 하다. 하나 그 단어를 ‘수필’의 뜻으로 사용하는 프랑스인은 단언컨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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