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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Nov 04. 2022

프랑스에서 높임말 쓰면 무례한 사람?!

서양에서의 경어 평어 사용기준은 우리 상상 밖이다

눈을 부라린 채 높은 분을 쳐다보고, 그분의 이름을 건방지고 가열차게 불러드려야 하는 이유!


파리12대학에 다닐 때였다. 프랑스가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놀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강의실에서의 교수의 입지였다. 일단, 음식물은 반입 금지였다. 커피나 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진 당연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교수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날이면 아주 천지개벽할 듯 난리가 난다.


한 번은 한창 강의를 하던 교수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어느 학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천둥 같이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군! 당장 나가!!”


강의실에 있던 수많은 눈동자가 지적받은 그 학생에게로 쏠렸다. 그는 얼굴이 빨개지며 심하게 당황했다. 교수는 한 번 더 소리쳤고, 그 학생은 가방을 챙겨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를 왜 쫓아냈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수업은 계속 진행되었고, 조금 있다 교수는 또 다른 학생을 쥐 잡듯 호통치며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말했다.


“내 수업에서 볼펜 똑딱거리는 인간은 당장 추방이닷! 알았나?”


입학 첫날, 첫 수업이었고 강의실에는 프랑스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었다. 특히 프랑스의 교실 분위기를 모르는 외국 학생들의 얼굴에는 형언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드러났다. 어느 나라나 할 것 없이 교실 내 선생님의 위치는 지엄하여 대통령이 와도 그 교권에 도전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교수는 임금님 다섯을 합친 것보다 더 권위적이고 막강했다.


교수는 우리를 향해 한 가지 더 이상한 명령을 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존댓말 사용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 생각엔 당연히 존댓말을 철저하게 사용하라는 주문일 거라 싶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우리에게 으름장 놓듯 말했다.


누구라도 내게 높임말 쓰기만 해 봐!
당장 추방이닷!
제발, 높임말 좀 쓰지 마! 알았나?”


당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외국학생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높임말 및 존대어가 영어보다 더 발달해있다. 프랑스어를 예로 들자면, 높임말 어법을 Vouvoyer/vouvoiement(부부와예)라고 하고 평어는 Tutoyer/tutoiement(튀투와예)라고 한다. 상대방을 칭하는 2인칭 대명사부터 경어와 평어 두 가지로 나뉜다. 게다가 ‘조건법’이라고 하는, 자신을 낮추는 화법까지 있으니, 프랑스어의 존댓말은 영어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유럽에 처음 나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으레 그렇듯 존댓말을 제대로 사용하려고들 애쓴다. 하지만 놀랍게도 높임말을 들은 상대방의 표정이 이상해진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할아버지와 손자, 선생과 학생, 상사와 부하직원, 하나님과 신자(?) 사이에는 상.하 위계가 확실하다. 당연히 존댓말을 써야 하는 관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그들이 높임말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 반말을 한다. 어쩜 이런 불경스러운 일이 다 있나 싶어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높임말 사용 여부는 상하관계가 아닌
정서적 거리에 관한 문제


서양인들에게 있어 높임말은 우리처럼 아래사람이 높은 분께 사용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심리적 수평관계 속에서 상대가 친분이 없고 멀다고 느꼈을 때 높임말 사용이 발생한다. 상하관계에서 높임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동양적인 정서이다.


그러니 초면에만 경어를 사용하고 두 번째 만남부터는 반드시 평어를 사용할 것! 계속 경어를 썼다가는 ‘친해지기 싫은 건가?’라고 오해를 받거나 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서운함까지 주게 된다.


호랭이 교수가 우리에게 했던 강요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파워를 마구 휘둘러댔지만 학생들로부터 친근한 교수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게다.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다.


시선관리

야단치는 선생님 앞에서 겸손하게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간 “자네,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라며 눈이 뒤집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좀 힘들더라도 선생님을 잡아먹을 듯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자.


고개숙이고 하는 인사는 신에게나 하라!

고개 숙이는 동양식 인사를 하면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상당히 불쾌해하고 난처해한다. "내가 죽은 사람도 아닌데, 왜 고개를 숙이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급으로 호칭하면 큰일 나!

우리 식으로 “교수님!” 혹은 “부장님!”이라고 불렀다간 정말 희망 없는 건방진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반드시 높으신 분의 이름을 힘차고 되바라지게 불러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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