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수법의 해외 소매치기
오래전 나는 한국에서 온 지인들과 함께 가이드 격으로 마르세유를 여행했었다.
마르세유는 온갖 것들이 드나드는 항구도시이다. 정상적인 교역품도 있지만, 무기와 마약, 밀수품을 비롯한 각종 불법적인 물건들도 오간다. 거친 뱃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므로 항구 주변에는 유흥가와 홍등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로컬 역시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므로, 마르세유를 비롯한 거의 모든 항구도시는 상당히 험하다.
어릴 적 부산에 살았던 나는, 부두와 역 근처에 있던 이상한 동네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어른들은 ‘텍사스 촌’이라고들 불렀다. 간혹 심부름으로 그곳을 지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미국 남자들, 노출이 아주 심한 스팽글 원피스를 입은 젊은 한국 여성들을 비롯해, 무대복을 입은 난쟁이와 기형적 신체를 가진 사람들 -아마 Freak Show¹ 를 하는 사람들일 터-……. 평소에 보지 못했던 온갖 독특한 사람들과 물건들이 즐비했다.
예닐곱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내 눈에 그것들은 분명 신기하고 요란했다. 자칫 눈길을 뺏길 법도 했지만, 난 전혀 주변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불안과 이질감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 그곳을 -자주는 아니었지만- 지날 수밖에 없는 이모네 집이 못내 야속했다.
마르세유에 도착했을 때, 한동안 잊고 있었던 모종의 떨림이 되살아났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은 뭐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어렸을 때 텍사스 촌을 지나면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 혼자 여행 왔거나 가족, 친구와 함께 여행 왔다면 이런 불안은 없었을 것이다. 전문 가이드도 아닌 내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 그룹을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하는 것 자체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곳은 서유럽의 해상 관문으로, 무기상과 마약상이 암암리에 오고 가는 무서운 동네, 마르세유가 아닌가!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전면으로 나서야 할 상황이었기에, 책임감과 아울러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까지 되살아나 초긴장 상태가 되었다.
승합차를 타고 마르세유 시내 드라이브를 하고,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인 <Notre Dame de la garde-우리를 지키시는 성모 마리아>라는 시타델(citadel)도 방문했다. 그곳에서 내려와 부둣가에 도착한 일행은 배를 타기 위해 따뜻한 햇살을 만끽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근처에 있던 집시 여자가 우리 일행 중 한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 여자는 “한 푼 만 줍쇼! 배고파요”라는 문구가 적힌 골판지로 그의 가슴팍을 툭 치며, 들이밀었다. 자연히 그 남성은 자신의 몸에 닿은 골판지의 글자를 읽느라 주의를 뺏겼다. 집시 여자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중얼중얼 함과 동시에 골판지 아래쪽에서 번개 같은 속도로 남성의 가방을 뒤지는 작업을 진행했다.
멀리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본 나는,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질렀다.
“밑으로!!! 밑으로!!!”
너무 갑작스러운 나머지,
“밑을 보세요” 라든지,
“밑을 조심하세요”라든지,
“저 여자가 지금 가방을 뒤져요”등의 구체적인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당시 너무 급박하여 “밑으로”라는 말만 열다섯 번도 넘게 소리쳤던 것 같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그렇게 말하면 상대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 수 있으랴! 하나 은밀하게 작업하던 집시 여자는 단박에 알아먹었다. 그녀는 실실 썩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가방을 뒤졌던 손을 들어 내게 보여주며 넉살 좋게 말했다.
“마담, <미트로?>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응?”
그 여자는 내가 했던 한국말을 그대로 따라 하며 약을 올렸다.
어쨌거나,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소매치기는 가까스로 면했다. 아마 내게 되살아난 그 '불안증'으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 일 후, 집에서 소리치는 연습을 했더랬다. “밑으로!” 보다 더 효과적인 말이 뭐가 있을지 생각하면서…
누군가가 다가와 이상한 글자가 적힌 종이나 골판지를 들이민다면 일단 경계하는 게 좋다. 그것으로 주의를 끈 다음, 아래쪽에서는 가공할 속도로 소지품을 털어가는 스펙터클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을 테니까.
집시의 전형적인 소매치기 수법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종이나 골판지를 들이밀고 구걸하며 그 아래쪽에서 소매치기를 한다.
2. 반짝거리는 반지 같은 것을 보여주며, “혹시 당신이 잃어버린 건가요?”라고 한다.
아니라고 하면, "이거 금반지 같은데, 당신에게 줄게요"라고 환심을 산 다음 소매치기를 한다.
물론 그 반짝거리는 물건은 절대 '금'이 아니다.
3. 설문지나 서명지를 들이밀고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서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 후엔 당신이 서명했으니 기부를 해야 한다며 ‘삥’을 뜯는다. - 이건 나도 당했다. 삥 뜯들 땐 주변의 험악한 여자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4. 왼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하고 있으면, 뒤에서 오른쪽 어깨를 살짝 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게 한 다음 왼쪽 편의 핸드폰을 뒤로 빼간다.
거무스름한 피부, 한 두 갈래로 땋아 내린 부스스한 갈색 머리카락, 꽃무늬나 무지 롱스커트가 Tzigane(찌간) 혹은 Rom(롬)이라 불리는 집시 여성들의 주된 인상착의이다. 때론 가벼운 유모차나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도 하는데, 그것은 절도 물품 보관용이다. 인도 북부 출신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서유럽까지 건너갔다. 불법체류를 하며 치졸한 범죄를 일삼는 집시들은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쳐 경찰들도 골머리를 앓는다.
그야말로 막가파인 집시 여자들은 사람들이 보든 말든, 지하철 안에서 바지를 훌러덩 벗고 옷을 다 갈아입을 정도이다. 그들과 자칫 언쟁이라도 벌어지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여러분! 여행할 땐 조심하세요.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가방이나 소지품을 손으로 잡고 있거나,
인식하고만 있어도
소매치기당하는 비율이 현저히 줄어든답니다!
각주1. Freak Show : 기형의 인간이나 동물들이 등장하는 서커스 쇼. 또는, 괴기하고 비인간적인 행사나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