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오래된 카디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
그 남자의 비극은 친구로부터 하나의 선물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친구는 그가 항상 낡은 카디건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최신 유행의 아름다운 빨간색 가운을 선물했다. 가운을 입어본 후 옷걸이에 걸어 두었는데 웬걸, 집안에 있는 낡은 물건들이 선물 받은 가운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고급스러운 가운과 어울릴 법한 소품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옷걸이, 의자, 책상, 그림 등을 차례로 하나씩 갈아치웠다. 그렇게 집안의 모든 인테리어는 빨간색 가운과 어울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붉은 가운의 노예가 된 것 같아 우울해졌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의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Regrets sur ma vieille robe de chambre)”라는 에세이에 나온 자전적 이야기이다.
두어 달 전 나는, 간편하게 사용할 특정 사이즈의 컴팩트형 백이 필요했다. 그 정도 사이즈의 가방이 어디 있나 보았더니, C라는 브랜드 한 곳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그 브랜드의 가방을 보자마자 나는 마음을 뺏겨 버렸다. 그리고 그다음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오매불망 그 가방이 눈에 밟혀 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용돈을 긁어 모아 생애 최초로 명품 가방을 지르고 말았다. 이제 노트북을 넣은 배낭을 등에 매고 핸드폰이나 지갑 등 작은 물건들을 그 미니백에 넣어 크로스로 매고 다닐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척 흡족했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그 백을 어깨에 메고 거울을 보는 순간, 나의 옷차림이 어쩜 그렇게 촌스럽고 질이 떨어져 보이던지, 정말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만 입고 다니던 옷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왜 달라 보이는 걸까?
여동생이 항상 내게, 제발 별나라에서 온 것처럼 해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갑자기 깨달아지는 순간이었다. 가방에 맞춰 옷까지 명품으로 갖춰야 하는 건가?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느낀 이 감정은, 앞서 소개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디드로의 이름을 딴 “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 또는 “디드로 통일성(Diderot Conformity)’이라고 하는 심리 현상이다.
치마를 구입하러 온 손님에게 그 치마와 잘 어울린다며 구두까지 함께 판매하는 백화점 점원의 상술도 이 심리를 이용한 작전이다.
이것은 꼭 상업적으로만 이용되는 전술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늘 느끼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아이폰을 쓰는 사람은 노트북도 맥북을 쓸 확률이 높다. 샤넬 목걸이를 구입한 사람은 귀걸이 역시 샤넬 제품으로 갖추기를 원한다. 목걸이는 샤넬인데 귀걸이만 저가의 제품을 사용할 사람은 거의 없다. 고가의 넥타이를 구입한 남성은 그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급의 벨트를 함께 장만하곤 한다
이는 통일성을 갖추고 싶어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이다. 이 통일성은 가격이 높을수록, 제품이 명품일수록 더욱 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제품의 기능적 통일이 아니라, 심미적이고 정서적인 통일을 원하는 현상이다.
나는 명품에 집착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고급 제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나는 항상 검소하고 실용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런 내가 하나의 명품 핸드백에 꽂혔고, 그것과 함께 옷차림까지 스스로 비판했다는 것은 평소의 나로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성형 수술을 열 차례 스무 차례 계속하는 여성들도 바로 이런 경로의 심리현상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도 문제없이 잘 살았었다. 그러나 쌍수를 했더니, 갑자기 코가 낮아 보인다. 그래서 코를 높였더니 광대뼈가 너무 돌출해 보인다. 또 광대뼈 축소수술을 했더니 턱이 사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얼굴의 이목구비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하나를 손대면 나머지 부분과의 조화는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부조화를 바로잡기 위해 연거푸 성형수술을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중용과 절제의 미덕이 있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애초에 그것이 꼭 필요한지, 더 소유하고 싶은 집착은 왜 생기는지, 그리고 그 집착이 때론 부질없는 것이라는 '마음 알아차리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외양이 인격을 못 따라가면 초라하고
인격이 외양을 못 따라가면 저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