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윤정 Apr 11. 2021

인종차별 체험기

2017년 4월 9일에 유나이티드 (United) 항공사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자리에 앉은 승객을 무력으로 끌어내렸다. 저항하는 그 승객의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바닥에 드러누운 그를 목 뒤에 옷을 잡고 질질 끌어 그의 배를 다 들어내며 내가는 모습은 도살장에 끌고 가는 동물을 대하는 듯했다.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그 뉴스로 중국에선 ‘중국의 인권탄압에 왈가불가하더니, 그것이 미국의 인권이냐'며 비아냥거렸다. 그 승객이 베트남계 이민자여서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고, 그 승객은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소송전에 들어갔다. 13일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이 AA 항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좌석까지 배정받은 자신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저지시키고 뒤에 서 있던 백인 승객을 탑승시켜 탑승을 못 하게 된 경위다. 

항공사의 횡포에 대한 뉴스를 보며 내가 겪었던 불쾌한 경험을 떠올렸다. 2016년 여름 트리니다드에 출장 갔다가 AA 항공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세계은행에서 출장을 갈 때 비행거리가 5시간 이상이 되는 경우, 비즈니스 좌석을 제공해주어 비즈니스석 맨 앞줄 첫 번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미계 여승무원은 나를 한번 슬쩍 보더니 내 옆에 앉은 백인 남자 승객에게 닭요리와 샐러드 중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 그 승무원은 비즈니스석을 다 돈 후, 내게 와서는 ‘남은 게 샐러드밖에 없는데 먹겠느냐’고 물었다.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그 분노를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모른 채 식사를 거절하는 것으로 부당함에 대한 무언의 시위를 전하고자 했다. 

분노를 삭이고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남아공과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예상치 않게 보았던 간디의 동상이 떠올랐다. 아프리카에 가서야 비폭력 시위로 인도의 독립을 이끈 간디의 그 비폭력 시위의 시초가 남아공에서였다는 걸 알게 됐었다. 영국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간디는 1년간 변호사로 근무하러 남아공에 머물렀는데, 1893년 초 인종차별로 기차에서 쫓겨난 후 인도인이 겪는 불평등과 부당함에 저항해 싸우기 시작했다. 선거권이 없는 인도인들에게 선거권을 주도록, 인도인 정당을 만들어 비폭력 시위를 하고 7여 년의 시위 끝에 남아공 정부와 협정을 맺고 그는 1914년 고국인 인도로 돌아갔다. 그의 저항정신은 아프리카에서 핍박받으며 살던 인도인들에게 뿌리를 내려, 그들이 불평등에 대항해 싸울 힘이 되었고, 그를 기리는 인도인들이 기금을 모아 그의 동상이 아프리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같은 달에 2주 앞서 나는 자메이카로 출장을 갔었는데 그때 돌아오는 길에도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마이애미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아 환승하는 곳으로 가려할 때였다. 백인 경찰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여권심사대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은 옆으로 짐을 밀고 지나가는데 유독 나를 막아 세우고는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라고 물었다. 답을 하자 “거기엔 뭐하러 갔냐?”며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투로 특정 단어를 내뱉지는 않았지만 혼자 다니는 동양 여성에 대한 편견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세계은행 출장으로 그곳 중앙은행에서 공적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 답했더니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과 언행이 달라졌다.

2021년 3월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스물한 살의 백인 남성이 아시아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총을 난사하여 여덟 명이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 그중 네 명은 나와 같은 한국 이민자들이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네일 살롱을 하는 스파 (Spa) 업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매춘부라고 매도하는 이들도 있다. 동양 여자 혼자 휴양지로 이름난 자메이카에 다녀온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매춘부처럼 쳐다보던 백인 경관의 얼굴이 떠올랐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을 주었단 말인가. 그리고 설사 그들이 매춘부라 할지라도 누가 총살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관습에 따라 돌로 쳐 죽이려던 이들에게 '죄 없는 자부터 먼저 돌로 치라'하자 모두가 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던, 우리는 모두 인간들이지 않은가?


‘인생은 10%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로 그리고 90%는 당신이 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채워진다'라고 했다. 간디가 1893년 남아공에서 기차 밖으로 쫓겨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인도와 인류의 역사는 달랐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 수많은 이들이 그런 치욕적인 대우를 당하고도 삭이며 살았을 것이다. 내가 AA 항공사 안에서 불평등을 당하고 한마디도 못 하고 분을 삭이고자 한 끼를 굶는 것으로 끝난 것처럼. 백인 경관의 부당한 눈초리를 받고도 아무런 항의 없이 지나친 것처럼. 그 같은 일이 간디에게 일어났을 땐 지혜와 용기, 인내를 가지고 그 일어난 일에 반응했기에 역사가 달라진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간디는 ‘미래는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는데,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작가의 이전글 애도(哀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