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함은 아름답다. 그것이 예술을 만들어낸다.” - 조스 휘던
3월 초에, 봄맞이 겸 새 모이를 달아놓을 스탠드를 하나 설치했다. 뒷마당에 키 큰 자작나무 앞에 내 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기다란 막대에 각기 다른 새 모이 네 통과 접시 두 개를 놓았다. 한 접시에는 물과 한 접시에는 새 모이를 담았다. 새 이름을 찾다 보니 모이와 새 모이 집 종류에 따라 다른 새들이 모인 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평한 접시와 같은 곳에 놓인 모이(platform feeder)는 뒷마당에 종종 나타나는 모닝 도브(mourning dove)가 좋아하고 나무나 높은 막대 위에 달아 놓은 모이(house feeder)는 내가 좋아하는 카디널과 블루제이가 좋아한단다. 또한, 긴 통의 모이(tube feeder)엔 참새, 제비, 박새(titmice), 그로스빜 등이, 수엣 모이(Suet feeder)엔 딱따구리, 치카디, 제이 등이 몰려든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주문해 배달돼 온 새 모이통 세트엔 종류별로 있었다. 그중 수엣 모이통은 두터운 철망에 구멍이 커서 사다 놓은 새 모이를 담을 수가 없어 수엣 모이가 무언가 다시 찾아봐야 했다. 수엣은 마치 아이들이 먹는 에너지바처럼 생겼는데 예전에는 동물의 지방에 다른 새 모이를 섞어주었다고 한다. 수엣은 나무를 쪼아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 좋아해서, 그것을 좋아하는 새들이 와서 정원에 있는 벌레들을 잡아먹어 농작물 경작에도 좋다고 한다.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데, 피넛버터와 쇼트닝을 함께 가열해 녹인 후 새 모이와 오트밀, 콘밀을 석어 반죽한 후 얼렸다가 모이통에 넣어 주면 된다. 집에 있는 재료를 꺼내, 쇼트닝 대신 올리브 오일, 콘밀 대신 아몬드밀로 수엣을 만들었다.
새 모이를 설치하고 들어와 흐뭇한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기대와 달 리, 곧 다람쥐가 타고 올라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니 다람쥐가 막대 위에서 긴 모이통과 하우스 모이통을 오가며 먹고 있었다. 카디널은 자작나무 가지 위에 앉아 다람쥐를 바라보고 있고, 다른 작은 새 들은 다람쥐가 떨구는 모이를 땅에서 쪼아 먹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새 모이 반대편 뒷마당에 작은 막대를 세워 다람쥐 먹이통을 달아주었다. 다람쥐가 먹기 쉽도록 땅에서 뻗으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다람쥐가 자신의 먹이를 찾으면 새 모이 막대에 올라가 곡예를 하며 새 먹이를 먹어 치우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나의 순진한 생각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보기 좋게 무너졌다. 아침에 먹이통을 채워놓았는데 오전도 지나지 않아 어느새 텅 빈 자신의 먹이통을 남겨놓고 다람쥐는 또다시 새 모이 막대 위에서 곡예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실패 후, 이번엔 기다란 통을 막대 중간에 달고 못쓰게 된 아이 우산을 그 위에 설치해 다람쥐가 막대를 타고 올라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제는 못 올라가겠거니 생각하며 창가에 서서 지켜보았다. 다람쥐 한 마리가 막대 근처에 왔다가 통에 가로막힌 막대를 지켜보더니 막대 뒤 자작나무로 달려 올라갔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아 키 큰 자작나무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어, 나는다람쥐가 얼마나 재빨리 나무로 올라가 새 모이 막대 근처 가지로 가서 그 가지에서 막대로 가볍게 떨어져 내리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곤 또다시 다람쥐는 새 모이통에 매달렸다.
먹이에 이토록 집요한 다람쥐에 대해 궁금해져 찾아보니 재밌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람쥐는 다른 동물을 속이고 실제 자신의 음식을 숨긴 곳을 보호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빈 구멍을 파고 나뭇잎으로 덮어 음식을 묻는 척한다고 한다. 근데, 이곳저곳에 실제 음식을 저장한 후 그것을 어디에 묻었는지 종종 기억하지 못해서 다람쥐는 산림 속에 씨앗을 퍼뜨려 나무 수를 늘리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다람쥐는 나무 꼭대기와 전깃줄을 달릴 때 팔랑거리는 꼬리를 사용하여 균형을 잡고, 그 꼬리는 또한 낙하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30미터 이상의 높은 곳에서 부상을 입지 않고 떨어질 수도 있다.
나는 다시 뒷마당에 나가 새 모이 막대를 자작나무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이제는 막대를 타고 올라가지도, 나무에서 점프해 막대에 내려앉지도 못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밖을 보니 다람쥐가 또 새 모 이통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어 창가에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땅에서 점프해 막대 위에 달아 놓은 통 위에 안착한 후 다시 막대를 타 고 기어 올라갔다. 막대에 매달려 새 모이 집에 팔을 뻗어 입을 대고 먹자니 성에 안 찬 다람쥐는 모이통을 뒤집어 모이를 땅에 쏟아부었다. 다른 다람쥐와 몇몇 새들은 땅에 떨어진 그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저토록 집요한 다람쥐 한 마리가 있어 어떤 생명은 먹이를 거저먹는구나.
그 다람쥐를 보며, 지난가을 미국 작가 지망생 수업에 참여했을 때 생각이 났다. 첫 수업으로 세이 쇼나곤(Sei Shonagon)의 “혐오스러운 것들(Hateful Things)” 을 읽으며 작가이자 초빙교수인 커터(Cutter Wood)가 말했었다. “싫어하는 것 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양한 묘사를 할 수 있다는 건 거의 집착에 가깝죠.” 전 체 42 문단에 마지막 세 문단이 연결되는 것을 고려하면 자신이 혐오하는 서른아홉 가지를 열거한 글을 읽고 그는 첫 글쓰기 연습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쓰라고 했다. 어쩌면 그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집요함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무언가에 집요하게 매달려 본 적이 없다. ‘집착은 번뇌를 낳는다.’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무의식 중에 뇌리에 새긴 것일까.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종종 산속의 절에 가곤 했는데, 산속을 거니는 것도 즐거웠고 절에서 내주는 산나물 비빔밥을 먹으며 스님의 말씀을 듣곤 했다. 이제 나는 거꾸로 매달려 새 모이를 먹는 다람쥐를 보며 집요함에 대해 새로이 배운다.
자료:
새 모이통 종류 https://www.almanac.com/bird-feeders-whats-best-type-feeder
수엣 모이 만드는 법 https://www.audubon.org/news/make-your-own-suet
(2021년 워싱턴 문학 제24호에 수록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