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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Aug 26. 2021

빨래: 대학으로 떠나는 막내에게

여름에 들어서며 넌 내게 종종 물었지. “엄만 내가 대학으로 떠날 때 울 거예요?” 난 네게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기에. 8월 중순에 대학으로 떠날 넌 새로 살림을 차리는 새색시처럼 수건, 침대보 등등 여름내 가지고 떠날 것을 알뜰히도 챙겼지. 떠나기 전 주말에 함께 코스트코에 갔을 때 세제를 모아둔 칸을 샅샅이 돌아보며 어느 세제를 사야 하냐며 넌 또 내게 물었지. 기숙사에서 오가며 빨래를 할 널 생각하며 낱개 포장된 세제를 골라 준 내게 “빨래할 때 세탁기 설정하는 것도 배워야 해요.”하며 덧붙였지.


‘그냥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되지, 뭐 빨래하는 법까지 배울 필요가 있냐?’ 순간 난 속으로 생각했단다. 빨래는 마지못해 해야 할 엄마의 의무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클리닝용 빨래를 제외한 후 모든 빨래를 세탁기 가득 넣고 돌려온 나였기에. 항상 시간이 부족했던 난 색깔별로 또 옷감별로 나누어 빨래해야 한다는 네 할머니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도 무시해왔었지. 세제도 다양하고 세탁기 기능도 진화해 선택할 수 있는 버튼이 워낙 많으니 네가 궁금할 만도 하겠다 싶어, 너를 보낼 생각을 하며 세탁기로 빨래 잘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내 사랑하는 막내에게 ‘그냥 아무렇게나 해’라고 할 순 없어서.


검색을 하다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세탁기 빨래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미국 국립공원관리청에 따르면 가구당 평균 세탁기를 한번 돌릴 때마다 41갤런 (155리터)의 물을 쓴다고 한다. 드라이기는 평균 가정의 전체 전기 소모량의 6%를 차지하고. 제한된 수자원의 낭비나 에너지 소모로 탄소배출을 높여 환경을 파괴하는 것 외에 빨래 세탁은 심각한 수질오염의 원인이기도 하단다.


세제의 독성뿐 아니라 한번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70만 개가 넘는 미세한 플라스틱 섬유가 합성 의류에서 배출되는데, 우연히 그것들을 섭취한 수중 동물들은 그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단다. 네가 어렸을 때 여름철이면 가곤 했던 아세틱 섬에서 올해 초에 커다란 흑고래가 죽었다는 뉴스를 기억하지?


아이들 옷은 찬물에 빨면 때가 안 빠진다고 더운물에 빨라고 한 네 할머니의 조언도 무시하고 여러 옷감의 옷들과 모두 함께 빠느라 찬물 세탁을 해 왔는데 찬물 세탁이 친환경 세탁법임을 알게 되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어. 세탁기 전기 소모량의 90%가 물을 데우는 데 쓰인단다.


친환경 세제 개발을 위해 애쓰는 Proctor & Gamble과 같은 회사들은 찬물에서도 때를 잘 뺄 수 있는 세제 기술을 개발해 찬물에 빨아도 찌든 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단다. 게다가, 피와 땀과 같은 단백질 얼룩은 찬물로 빨아야만 제거되고, 찬물 세탁은 옷감의 손상도 줄일 수 있다.


널 위해 세탁기 빨래 방법을 요약했다. 가능한 한 빨래 횟수를 줄일 것 - 빨기 전에 한 번 더 입을 수 있는지 볼 것. 가능하면 합성섬유가 아닌 자연소재 옷을 선택하고, 친환경 세제를 사용할 것. 세탁기는 찬물 빨래로 설정해 돌릴 것. 빨래 양이 적을 경우는 물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의 양을 조절할 것. 드라이기를 돌리지 않고 말릴 수 있는 것들은 가능한 한 자연적으로 말릴 것.


자연 건조를 언급하니 두 해 전 겨울, 한국에 방문했을 때 건조대를 마루에 펴시고 빨래를 너시던 네 할머니 생각이 난다. 세탁기나 전기다리미마저 없던 시절에, 네 할머니는 마당 가운데 수돗물이 나오는 곳에서 손빨래를 하시고 빨랫줄에 말린 후 다듬잇돌에 다듬잇방망이로 두들겨 옷 주름을 폈었다. 엄마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주 어릴 때 잠자리에 누워 들었던 리드미컬하게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는 아직도 내게 자장가처럼 남아 있단다. 네 할머니가 엄마에게 다했던 정성을 생각할 때마다, 난 너와 네 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네 언니를 대학에 보내고, 항상 많은 바쁜 일들로 정성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해 많이도 울었지. 그리고 네게는 아직 기회가 있으니 네가 대학에 갈 때는 그렇게 후회하지 않기 위해 하던 일을 남들에게 넘겨주어 출장도 줄이고 최선을 다하려 했었단다. 하지만, 난 이번에도 또 울고 마는구나. 네 앞에서 울음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얼룩진 내 마음을 이 눈물이 씻어내고 나면 다음에 더 보송보송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겠지. 


사랑한다. - 엄마가.


미주 한국일보 2021년 8월 21일 자 주말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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