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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4. 2021

1. 한 줄기 희망 (A Silver Lining)

가족이 모두 잠든 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책상 위에 나타났다. 난 기겁을 하며 책으로 바퀴벌레를 밀쳐냈다. 책과 함께 방바닥에 떨어진 바퀴벌레는 엎어진 책 사이로 기어 나왔고, 나는 “아악~!” 괴성을 지르며 의자 위로 올라섰다. 내 소리에 놀란 부모님이 잠에서 깨어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내가 중2였던 겨울밤의 한 기억이다. 유난히도 바퀴벌레를 무서워했던 나는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며 또 다른 바퀴벌레를 만나게 되었다.


한국 공인회계사(KICPA) 시험에 합격한 후 첫 현장감사였다. 1994년 당시 KICPA는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뒤 회계법인에서 2년간 교육을 받아야 했다. 감사와 직업윤리에 대한 몇 달간의 사내 교육을 받은 후, 나는 1995년 초에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비상장 회사의 연례 감사에 배정되었다. 회계감사업무에는 대부분의 사회조직이 그러하듯 위계질서가 있다: 위계질서 꼭대기에는 고객과 계약 및 그 관계를 관리하는 파트너가 있고, 선임 CPA가 업무 할당 및 현장감사를 진두지휘한다. 나 같은 신입 쫄따구는 훈련병으로 투입되어 선임 (우리는 ‘인차지 Incharge’라 불렀다)의 지시에 따랐다.  

내 첫 현장감사에는 소심한 목소리에 창백한 얼굴의 20대 후반의 남자 회계사가 선임으로 배정되었고, 규모가 작은 회사인지라 신입으로 나 혼자 배정됐다. 첫날, 우리는 그 회사의 재무책임자 (CFO), 회계 이사와 회계 팀과의 회동으로 시작했는데 널찍한 회의실에 내가 홍일점이 되었다. 곧이어 회색 치마와 조끼를 입은 고등학교 교복 같은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이 커피와 아침 식사를 들고 들어왔다. CFO와 회계 이사는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회의실에 남아 감사와는 무관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일정을 논하는 회의를 마친 후 CFO는 "점심 먹으러 가시죠!"하고 마치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점심 먹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아직 아침 식사도 여기 남아 있는데..." 난 홍일점에 제일 쫄따구였지만, 본능적으로 답했다. "시내 최고의 일식집에 예약을 했어요. 좀 멀어서 지금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CFO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식당에 들어서니, 기모노를 입은 아주머니가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창문이 없는 외딴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기다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커다란 초밥 한 접시와 큰 사케 한 병이 들어왔다. CFO는 누가 원하는지 묻지도 않고 큰 잔에 술을 따른 후 나누어주고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건배하시죠! 모두 이 병을 비우지 않으면 다시 일하러 갈 수 없습니다."

일주일간의 감사 기간 동안, 매일 아침 우리가 회의실에 걸어 들어가면 곧 그 CFO와 회계 이사가 들어와서 잡담을 나누었다. 그리고 비서가 커피와 아침을 들고 왔고, 무의미한 잡담은 끊이질 않았다. 간신히 일을 시작한 후 두 시간도 안되어 그들은 점심을 먹자며 돌아왔다. 그들은 우리를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유명한 식당으로 데려가서 동네 최고의 음식이라며 우리를 귀빈 대접하듯 했고 점심식사임에도 독한 술을 주문해 모두 마실 것을 강요했다.

한날 오후, 나는 지출 내역을 추적하며 그에 대한 영수증을 요구했다. 회계부서의 한 젊은 직원이 영수증을 여기저기 찾다가 과일상자 같은 커다란 튼튼한 상자를 가지고 왔다. “여기에 영수증이 가득 있으니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그 상자 안에서 놀랍게도 수백 개의 위조 영수증을 발견했다. 탈세를 위해 실제 발생하지 않은 경비를 지출로 조작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마치 보물선의 보물을 찾은 것처럼, 감사에서 발견한 내용을 나는 선임에게 보고했는데 선임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회계법인에 돌아와 담당 회사의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 의견에 대한 궁극적인 의사 결정권자인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내가 발견한 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사회 구석구석 부패가 만연한 한국에서 성장했다. 1970 ~ 80년대에 자라며, 부패 스캔들이 파헤쳐질 때마다 의문의 자살 사건 보도와, 임기가 끝난 대통령들은 부패 혐의로 기소되어 감옥에 보내지거나 자살하는 뉴스를 들었다. 1980년대 후반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리는 어떤 선생님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받는지, 얼마나 부패했는지, 돈을 받은 집 아이들을 어떻게 편애하는지 등등을 얘기하며 수다를 떨곤 했다. 몇몇 친구들은 대학에 지원한 후 비밀리에 기부를 한다는 조건으로 대학 입학을 제안받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CPA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4년 10월에, 서울 한강에 있는 성수대교라는 큰 다리가 무너져 서른두 명이 사망하고 열일곱 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강남에서 강북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 매일 출퇴근하던 때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1995년엔 내가 종종 다니던 도서관 근처에 있던 삼풍 백화점이 무너져 오백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내고 잿더미가 되었다. 신문은 "건설사와 감독기관의 비리로 인한 인재"라고 보도했다. 느슨한 규제, 태만, 도덕적 해이로 이어진 부패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부패의 기반에는 항상 회계부정을 통한 비자금이 있다.

현재의 복식부기 회계와 외부감사인의 보증 체계는 15세기 루카 파시올리(1446–1517)에 의해 처음 문서화된 것으로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체계이나 결코 완벽하지 못했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메디치 Medici'는 15세기 이탈리아 은행가 메디치 가문이 회계장부를 어떻게 조작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당대 부와 명예를 축적했는지 보여준다. 은행 업무는 기본적으로 누가 언제, 무엇을 소유하거나 빌리는지 장부(ledger)라고 불리는 기록을 관리하는 것인데, 세금을 회피하거나 개인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오용하기 위해 장부를 조작하면서 빼돌린 돈은 부패의 온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불완전한 시스템은 경제활동이 방대해지고, 세계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더욱 악화되고 있다. 또 기업이 감사인을 선정하고 수임료를 지급하며 수익성이 높은 컨설팅 수수료로 인센티브를 주는 관계로, 감사인은 열심히 파고들어 그 기업의 숨겨진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혹 나같이 철 모르는 쫄따구가 얼떨결에 감추어진 부정을 발각한다 해도 그것을 드러낼 용기를 내지 않는다. 나의 첫 감사 시즌이 끝난 후, 그 담당 파트너는 잔혹한 감사 시즌을 마친 신입 CPA 연수생들을 모두 스트립 바로 데리고 갔다. 어두침침한 스트립바 뒤쪽, 넓고 푹신한 의자에 모두 자리 잡고 앉아야 했다. 

"이건 너희들 훈련의 일부야. 조만간 자네들 고객이 이런 곳으로 데려갈 텐데, 이러한 환경에 대처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거든." 그는 담뱃재를 털며 말했다. 탁한 공기에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 현란한 음악에 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 생각이 없어,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동료들에 가리어지길 바라며 깊숙한 의자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왜 미국으로 이민을 왔나요?"

몇 해 전, 내 둘째 아이가 중학교 숙제 때문에 나를 인터뷰하며 이 질문을 던졌다. 1999년 5월 미국에 왔을 때, 별다른 목적을 품고 온 것이 아니어서 나는 딱히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가난 또는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거나 더 나은 기회를 찾거나 혹은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이 나라에 온 많은 이민자와 달리 단지 남편을 따라온 것이었다. 1996년 한국에서 결혼한 남편은 군 복무를 대신해 일해야 했던 연구원 기간을 마치자마자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한 회사에 취직해 ‘99년 2월에 먼저 떠났고, 나는 그해 1월에 태어난 첫아이의 백일잔치를 한국에서 마친 후 아이와 함께 5월에 미국 텍사스에 도착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의 삶에 기대한 것이 없었어요?” 답을 못하고 있는 내게 아이는 다시 물었다. “음.. 정직하게 사는 것…?” 나는 중얼거리듯 답했다. “네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아이는 다그치듯 다시 물었다. 

“정직하게 살면서 내가 하는 일에 죄책감 없이 사는 것. 엄마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시구절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기를'이란 구절이 있거든, 그 시처럼 살고 싶었어.” 

아이와 대화를 하며, 나는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을 방문했을 때 그 교수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한국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미국 생활이 그리울 때가 있다. 미국에서 외국인 학생으로 살면서, 그리고 교수가 된 후에도 재정적으로 항상 궁핍했지만, 나는 의식적인 죄책감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기가 매우 힘든 나라야. 넌 남편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또 똑똑한 넌 곧 취직할 수 있을 테니 미국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게다. 영적인 고통 없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그 교수님과 나는 한국에서 같은 교회를 다녔다. 교회 장로로서 교수님은 교회 여기저기에서 봉사하셨는데,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삶이 상당히 고통스러울 수도 있었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모교로 돌아오기 전 뉴욕대에서 종신교수로 재직했었다. 미국으로 떠나오기 전 1999년 봄에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서울대 부총장으로 캠퍼스가 내려다보이는 큰 방에 있었다. 관악산 입구에 위치한 캠퍼스에는 봄이 만개해, 그의 방에 놓인 널찍한 소파에 앉아 커다란 창을 통해 봄의 정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막연히 품었던 정직한 세상의 삶은 이곳 미국에서도 쉽지 않은 듯하다, 미국의 모습도 점점 부패해지고 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닷컴 버블과 함께 엔론(2001년), 월드콤(2002년) 등 회계 부정으로 인한 도산과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후, 2007-8년 미국의 금융위기로, 500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숨겼던 리먼 브라더스가 2008년에 붕괴되었고, 이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같은 해 나스닥 회장이었던 버니 메이도프는 648억 달러의 분식회계 혐의로 체포됐다. 

썩은 윗물이 흐르면 모든 곳에 스며들 듯, 정재계 지도층의 부패한 환경은 평범한 삶에도 스며들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매년 명절 연극 공연을 할 때였다. 아이는 중국 신화의 이야기인 연극 <옥황상제>에 석공으로 출연했는데, 공연 도중 딸 친구의 엄마인 크리스틴이 귓속말을 했다. “아이들 각자가 특정 배역에 지원한 후 연극감독이 아이들의 희망에 따라 배역을 배정해줬데요. 황후 역을 맡은 소녀, 그 애 엄마는 PTA (학부모회) 회장이에요. 그래서 백인이지만 중국 황후 역할을 맡게 됐데요.”.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에게 어떤 역할을 지원했는지 물어봤다. 아이는 볼멘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황후가 되고 싶었어요. 황후 역을 맡았던 그 애 하고 난 경쟁했는데, 결국 그 애가 됐어요. 내가 가진 웹킨즈(Webkinz)를 다 주고라도 그 역을 하고 싶었는데.. 황후 역할을 위해서라면 웹킨즈를 다 포기했을 거야!"

그 해, 웹킨즈 동물 인형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어서, 내 딸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 1호로 웹킨즈를 사 달라고 적어놓았었다. 연극은 큰아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방과 후 활동이었다. 큰아이는 세 살 때부터 연극에 관심을 보인 후 유치원 때부터 매년 방과 후 연극 프로그램과 연극 여름 캠프에 참여해온 터였다. 딸아이가 연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지라, 나는 아이의 그 말을 들으며 순간 날카로운 창이 내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학교 연극 수업에 선발되지 않아 또 한 번 아픔을 겪었다. 미국은 중학교부터 마치 대학생처럼 필수과목 외에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신청해 정하는데, 큰아이는 당연히 연극 수업을 제1순위에 신청을 했었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아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연극반 담당 여선생이 백인 여자였는데 인종차별주의 자라는 풍문도 있었고, 한 소년의 부유한 가족이 그를 연극반에 넣기 위해 학교 극장 오디오 시스템을 교체했다는 소문도 들었다. 

2016년, 큰아이가 고등학교 때 대학 원서 접수로 바쁠 무렵, 가족 중 그 학교 출신이나 상당한 기부금이 없으면 아이비리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축구를 전혀 하지 않은 한 소녀가 100만 달러가 넘는 기부금으로 예일대 축구팀에 모집되었대요." 엄마들은 모일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해, 폴 매너포트(Paul Manafort )도 트럼프와 함께 등장했다. 2011년 직장에서 한 프로젝트를 위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두 차례 방문했었는데, 그곳에서 폴 매너포트에 대해 처음 들었었다. 키예프 중심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이나 워싱턴 D.C. 라파예트 광장 같은 곳이 있는데, 내가 키예프에 있을 때 대규모 시위 군중들이 매일 그 광장에 모였다. 시위는 폭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시끄러운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것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반러 혁명을 주도한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과 유셴코 밑에서 총리를 지낸, 전통 농부처럼 머리를 땋아 '오렌지 공주'로 유명한 율리아 티모셴코를 위해서였다. 

구호를 외치며 포스터를 높이 치켜드는 군중을 보며, 프로젝트를 위해 함께 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우리에게 그 시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지난해 대통령이 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전 대통령과 전 총리에게 부패 범죄를 덮어씌워 감금했어요. 야누코비치는 감옥에 여러 번 갔다 온 범죄자였고, 불법행위로 2010년 대선에서 승산이 없는 후보였죠. 그의 정당은 크렘린의 지원을 받는 폭도들과 과두정치의 안식처로 악명이 높았고요. 그런 그가 미국 컨설턴트인 폴 매너포트를 고용했는데, 그는 극악한 이도 대통령으로 만드는 연금술사 같은 능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대요.” 

야누코비치가 매너포트에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너포트는 1980년대부터 전 세계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의 정치 코치로 활동해왔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32년간 잔혹한 독재자였던 모부투 사세코,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앙골라의 반군 지도자 요나스 잠비가 그의 고객 중 일부였다. 그는 왕좌에 앉은 사람들의 배후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해 그 돈으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 큰 호텔을 사려고 했고, 2011년에 우크라이나의 티모셴코 전 총리는 이를 국제 돈세탁이라고 주장하며 뉴욕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었다.

당시 나는 그 시위를 한국과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대국들에 의해 분열된 지도자들, 그들의 지지자들 사이의 투쟁으로만 여겼다. 왜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국가가 항상 분열되고 부패의 악순환을 반복하는지 애써 분석하지 않았다. 얼마나 그럴듯한 정보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려 그런 사기꾼과 그에 결탁한 이들이 권력을 차지하려 많은 사람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지 나는 맥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2016년 미국 대선후보 선거운동본부장으로 이런 사기꾼이 나타났을 때 나는 경악했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바퀴벌레를 만났을 때처럼. 


부정부패는 사회의 바퀴벌레다. 부정부패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들여놓으면 빠르게 번식해 다른 이에게도 옮긴다. 바퀴벌레가 배설물 속에 있는 집합헤르몬(aggregation pheromone)을 좋아해 군집하듯, 그러한 이들은 그 배설물인 부패한 부를 좋아해 모여든다. 한 집에 바퀴벌레가 출몰하면 온 식구가 함께 박멸해야 하듯, 사회에 이 부정부패라는 바퀴벌레가 나타나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청결케하고 몰아내야 하는데, 한 가족의 마음도 맞추기 힘든데 한 사회가 한 마음이 되는 건 요원한 일이다. 지구 상에 3억 5천만 년을 살아남아 전 세계 곳곳에 번식하는 바퀴벌레처럼 부정부패는 살아 움직인다. 

어둡고 구석진 곳에 모여있다 불을 밝히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지고 커지자 대낮에도 활개를 치는 판이었다. 내 눈앞에 득실거리는 바퀴벌레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동거릴 때, 우연히 블록체인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로부터 실낱같은 빛처럼 새어 나오는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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