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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l 18. 2022

자연을 닮아가며

나의 깨달음은 퇴비에서 시작되었다. 몇 해 전 중고물품을 파는 사이트에서 퇴비를 만드는 통을 사서 뒷마당 키 큰 자작나무 뒤에 놓았다. 환경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때, 전 세계 일인당 평균 탄소 배출량의 4~5배를 배출하는 미국인의 한 사람인 것이 부끄러워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집, 큰 차, 풍부한 식료품과 물질로 온갖 쓰레기를 쏟아내는 미국인의 생활방식,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해 지구 끝이라도 최소의 비용으로 생산해 이산화탄소를 마구 뿜어내며 운반해오는 기업의 산업화된 생산방식, 이로 인해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단 하나뿐인 지구의 신음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집과 차를 없앨 수도, 산업화된 사회를 내가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소비해 과도하게 많은 음식이나 물건을 버리는 쓰레기를 줄이고, 날마다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일은 최소한 나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각종 음식물 쓰레기를 밀폐가 잘되는 한 용기에 일주일간 모았다가 주말이면 뒷마당 퇴비 통에 부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재활용하려는 야무진 꿈을 꾸며 성급한 마음에 퇴비 만드는 통을 사고 그곳에 쓰레기를 내다 붓는 것까지는 했지만, 몇 주가 지나도 통 안은 쓰레기만 보일 뿐 퇴비는 흔적도 없었다. 

세상만사 쉬운 일이 하나 없구나. 음식 쓰레기만 모은다고 저절로 퇴비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이런 것은 자라며 한 번도 배운 적도, 본 적도 없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째서 학교는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안 가르쳤을까? 다행히 인터넷과 유튜브의 발달로 필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고 배울 수 있는 세상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여러 사이트를 뒤져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법을 요약했다. 

첫째, 좋은 퇴비는 세 가지 성분이 필요하다. 질소와 인산과 칼륨. 질소는 잎과 줄기의 성장을 돕고, 인산은 뿌리와 꽃과 열매를 촉진시키며, 칼륨은 당근, 무와 같은 뿌리채소 성장에 좋다. 둘째, 음식물쓰레기는 질소 성분이 많기 때문에, 퇴비가 되기 위해서는 톱밥, 낙엽, 왕겨와 같은 마른 재료를 같이 넣어야 한다. 셋째, 좋은 퇴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기와 미생물 역할 외에도 적정한 온도와 수분이 유지되어야 해서, 산소공급을 위해 퇴비 통을 돌려주어야 하며 수분도 공급해주어야 한다.

대충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다시 뒷마당에 나가 먼저 쌓아놓았던 잡초의 마른 더미를 한 아름 안아 퇴비 통에 집어넣고 약간의 물을 뿌린 후 뚜껑을 닫은 퇴비 통을 여러 번 돌려주었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후 겨울에 들어 모든 게 시큰둥해지고 유난히 긴 겨울 동안 나는 퇴비를 만드는 일을 잊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 있었다. 

이듬해 봄이 더디게 왔다가 훌쩍 가고 한여름 땡볕이 내리쬐고 잡초더미가 다시 쌓이기 시작할 무렵 나의 묻힌 꿈이 고개를 들었다. 잡초도 버릴 겸 다시 퇴비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던 퇴비 통에 다가갔다. 반년이 넘도록 퇴비 통을 열어보지 않은 터라 처음엔 문을 열기가 두려웠다. 문을 열면 마치 이상한 괴물 같은 벌레나 쥐 같은 끔찍한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큰 숨을 내쉰 후, 이상한 악취가 날까 싶어 숨도 멈춘 채 퇴비 통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그동안 쏟아부었던 음식물쓰레기와 마른 잡초더미는 사라지고, 악취는커녕 숲 속 풀 혹은 흙냄새와 함께 거무스름한 퇴비 속에 꿈틀거리는 지렁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지렁이가 생겼을까 의아해 퇴비 통을 둘러보니 양옆에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다. 이전엔 비 온 뒤 땅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에 기겁을 했었는데, 퇴비 속으로 숨어드는 지렁이가 신기해 지렁이가 왜 퇴비 통 안에 많은지 지렁이에 대해 찾아보았다. 지렁이는 낙엽이나 유기물이 많은 흙을 좋아해 흙 속에 사는데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의 먹이를 먹는단다. 그래서 지렁이 한 주먹 정도를 키우면 한 가정에서 나오는 일주일 치 음식물 쓰레기를 다 먹어 치울 수 있다고 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버리면 부패해서 토양을 오염시키지만, 지렁이가 그 쓰레기를 먹고 배출하는 분변토는 작물이 잘 자라는 비료가 될 뿐 아니라 주변의 악취를 정화하는 탈취, 유익한 미생물의 배양 등의 역할을 해 환경운동의 하나로 ‘지렁이 키우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퇴비가 만들어지자 나의 정원과 삶은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열매와 꽃을 꿈꾸며 뒷마당의 과일나무와 화초에도, 화분에 심은 딸기, 토마토 등에 거름을 주며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틈만 나면 마당에서 보내었다. 처음엔 간혹 새와 토끼, 다람쥐가 풀 속에서 놀란 듯 도망치면 내가 더 놀라 뒤로 자빠지기도 했다. 이제는 제법 여유롭게 탐스럽게 핀 파란 수국을 보며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라고 노래한 이해인 시인의 <수국을 보며>를 생각하고, 이름 모를 작은 풀꽃을 보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떠올리기도 한다. 

여름이면 이런 꽃을 잘라다 집 안 곳곳에 장식해 꽃의 화사함과 향기를 누린다. 예전엔 꽃이 피었다 힘을 잃고 고개를 떨구면 아쉬운 맘에  말라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안타까운 맘으로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는데, 퇴비를 통해  자연의 방식을 배운 후로는 새로운 풍요로움을 꿈꾼다. 이제는 잘라온 수국이나 장미의 꽃이 수명을 다해 꽃을 떨구고 나면 삽목을 시도해 새로운 꽃나무를 키우기도 하고 다른 시든 꽃들도 그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퇴비가 되어 또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된다. 이 세상은 이렇게 순환하며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도록 설계되었음을 늦깎이로 배우고 있다.

 2020년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정지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멈추자 망가져 가던 세상은 자연의 방식을 따라 치유를 얻고 있다. 베니스에는 물이 맑아져 사라졌던 물고기가 나타나고, 호주에는 캥거루가, 남아공에선 펭귄이 빈 거리를 활보하고, 오염에 찌들었던 도시엔 공기가 좋아졌다고 한다. 유례가 없는 전염병은 인간이 파괴해온 자연의 결과물이다.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전염병 증가와 직접적 관련이 있고 이에 대한 치유를 위해 우리는 일시적 멈춤이 아니라 자연을 회복시키고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방식으로 삶을 바꾸어야 한다. 

지난 몇 달간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날마다 지켜볼 수 있었다.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지 못하고 새벽부터 서둘러 길을 나서고 콘크리트 벽 안에 갇혀 일을 하며 지내온 삶이 얼마나 비정상이었는지 나는 비로소 돌아본다. 늙은 상추에 달린 노란 꽃망울을 보며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지, 매미 소리를 들으며 땅에서 오랜 기간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 부활을 상징하는 매미를 생각하며 자연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음을 깨닫는다. 자연을 닮아 풍성한 생명을 나누며 주어진 소명을 다하다가 자연의 일부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늦은 오후 길어진 나의 그림자가 내게 속삭인다.

(2020년 7월)


제2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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