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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Jul 18. 2022

당신 아니면 누가?

2020년 봄부터 시작된 코비드 이후로 거의 집에서만 생활해 온 터라 운전할 일이 없이 지내왔다. 2021년 8월, 둘째 아이가 집에서 두시간 정도 떨어진 버지니아 대학에 간 후로 장시간 운전하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 몇 달간 몇 차례 아이 학교를 오가게 된 것이다. 오랫만에 운전을 하며 가장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이 곳곳에 죽어있는 동물들이었다. 동네를 지나는 길에 차에 치이거나 깔렸던 사슴과 다람쥐뿐 아니라 고속도로 진입로나 외곽로에 버려져 있는 여우나 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도 있었다. 내가 사는 워싱턴 DC 근교는 미국에서 교통체증이 심하기로 유명해 하이웨이 확장 공사를 하느라 지난 몇 년간 엄청나게 많은 나무를 베었고 새로운 집을 짓느라 숲을 밀어내었다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이 몇 해 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는 1970년 이후로 포유류, 조류, 어류와 파충류의 60%를 멸종시켰다 한다. 그들이 살아갈 곳, 먹을 것을 빼앗은 결과다. 게다가 우리의 오물은 물을 오염시켜 생식에 깨끗한 물이 필요한 동물과 어류는 83%가 사라졌다. 우리가 무심코 버리는 플라스틱, 음료 캔, 일회용 용기 등등의 쓰레기로 이를 섭취하는 동물들이 매해 백만 마리 이상이 죽고 1억 마리 이상의 돌고래, 물고기, 거북이 등이 사라져 간다. 날마다 뿜어내는 탄소와 화학물질 폐기 등으로 인한 오염은 또 어떤가? 동물 및 어류뿐 아니라 매해 삼백만 명 이상의 다섯 살 미만 아동이 환경오염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을 반신반의하는 미국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나는 요 며칠간 월드뉴스 시간에 잠시 나오는 COP26 관련 보도를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다. COP는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Parties)의 약자로 유엔 기후변화협약을 위한 각국 정상 및 정책결정자들의 연례 모임으로 올해 스물여섯 번째를 맞아 COP26로 불린다.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라스고 (Glasgow)에서 열렸는데, 대회가 열리는 동안 매일 저녁 뉴스에 시위대의 모습이 보도되었다. 그중 커다란 푯말을 들고 서 있는 한 여자아이가 화면 중앙에 잡혔다.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파란 눈의 금발 머리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들고 선 푯말의 문구는 “당신이 안 한다면 누가 할 것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할 것인가?”였다.  


그 아이가 카메라에 잡힌 순간이 일 초는 되었을까? 아이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며 묻는 듯했다. “당신이 아니면 누가 하나요?” 환경 문제는 정책 결정자나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는 모든 개개인의 문제이자 책임이다. 안 그래도 집 근처 고속도로 출구에 죽어있는 회색털의 정체 모를 두 마리의 동물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던 터였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두 동물의 모습과 겹쳐졌다. 푯말에 적힌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 WWF 웹사이트에 들어가 “당신의 세상을 위해 싸울 12가지 방법”을 클릭했다. 첫째, 환경파괴로 멸종 위기에 있는 코끼리, 펭귄, 흰표범, 북극곰, 팬다, 호랑이, 거북이, 사자 등등의 동물을 지원하라. 둘째, 당신의 삶의 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발자국을 재어보라. 두 번째를 클릭하니, 질문이 이어졌다. 먼저 먹는 것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얼마나 고기를 자주 먹는지, 일주일에 외식 혹은 포장된 음식을 얼마나 먹는지,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되는지, 수입된 식재료가 아닌 가까운 곳에서 재배된 것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묻는다. 다음으론 교통과 여행에 관한 질문으로, 어떤 차를 운전하는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지, 얼마나 여행을 자주 하는지 묻고, 또한 어떤 집에, 에너지원과 그 효율성 등의 주거방식에 대해, 그리고 소비에 대해 물었다.


답을 마치니 내 탄소발자국이 연간 12.68톤이라 한다. 내 수치는 2021년 평균 목표치인 10.5톤에 비해 20% 이상 높았다. 이 목표치는 지구 온도가 섭씨 1.5도 이상 오르면 극심한 자연재해, 수면 상승 및 급격한 생태계 파괴로 인류 생존의 위협을 받은 지경에 이르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순 배출량이 0인 ‘넷제로’를 이루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내 탄소배출량의 절반은 집에서 나오고 30%는 소비, 나머지 20%는 음식에서 나왔다. 그나마 팬데믹으로 운전해서 다니는 시간도 거의 없고 지난 일 년간 비행기를 타고 다닌 일이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큰 집에, 소비 지향적인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내 삶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11월, 단풍이 절정이다. 지난 주말, 가을 색을 사진에 담으려 근처에 있는 주립공원에 갔을 때 포토맥강 강가의 많은 나무가 물에 잠겨 뿌리가 썩어 쓰러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구 온난화로 수면이 더 상승하면 더 많은 나무가 죽어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출구엔 여전히 콘크리트 도로 위에서 생을 마감한 두 마리 동물이 누워있었다. 그들의 등에 늦가을 따스한 햇빛이 머물고 있었다.  (2021.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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