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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Oct 27. 2022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모든 인간의 삶은 각자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에서

한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책 <헤르만 헤세 - 모든 시작은 신비롭다-> (알로이스 프린츠 작/ 이한우 역)을 집어 들었다. 헤르만 헤세는 내 어린 시절 내가 제일 좋아한 작가 중 하나로, 중학교 때 그의 작품 <데미안>을 읽고 열광했었다. 당시엔 내가 특별히 헤세와 교감이 통한다고 착각했다. 이 책의 앞머리에 추천의 말을 쓴 헤세 도서관장 홍순길 교수는 헤세의 글은 학창 시절의 고뇌와 슬픔, 청년의 낭만과 좌절을 생생히 기록해 청소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로 불린다고 한다. 들어가는 말에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바로 그렇게 나는 살려고 했을 뿐이다”라는 제목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열두 살 때부터 시인이 되고자 했던 헤세는 밥벌이를 할 수 없는 시인이 되겠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열여덟에 죽기를 결심하기도 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어느 곳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전전했다. “헤르만 헤세의 양친은 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아들은 어디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우수한 학생은 완전히 실패한 인간이 된 듯했다” 자신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그를 이렇게 묘사한 4장 ‘정신병원’ 제목 아래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있는 힘을 다 쏟았다”는 헤세의 글귀가 달려있다.


헤세의 학창 시절, 학교를 졸업한 후 견습생이 되어 전전하는 그의 모습에 그의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를 다시 읽어보았다. 

어릴 때부터 명석했던 한스는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의 강요로 신학교(神學校)에 진학했지만 낯설고 강압적인 신학교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집으로 돌아온다. 어릴 적 친구가 일하는 시계 부품공장의 견습공이 되지만, 약한 몸과 공장일에 익숙지 않은 데다 ‘신학교 대장장이’라 업신여김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한스는 공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헤어진 후 취한 채 강가를 걷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소년. 하지만, 부모님과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삶. 순간 대학 선배 생각이 났다. 한국에 도착한 날 밤 우연히 잊고 지냈던 그 선배를 기억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잠이 깼을 때였다. 엄청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전날 밤 뉴스에서 보도하더니 그 태풍의 시초인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뚜라미와 풀벌레들의 소리가 비와 어우러져 마음을 적셔, 잠들기를 포기하고 일어나 불을 켰다. 오래된 앨범과 빛바랜 책들이 쌓여 있는 방안 책장 문을 여니, 두툼한 미당 시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좋아하셨던 아빠의 것인가 생각하며 빽빽이 채워져 있는 책들 속에서 빼내어 펼쳤다. 책장 커버 안, 빈 여백에 손으로 쓴 글이 있었다.


습관이란 참 고약하기도 하지

아니다 싶다가도 이내 익숙해져

아무일 없듯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두터운 콘크리트 각질에 쌓인 도시

수없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별로 원치 않는 일들을

죽을 때까지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그래 우리는 술을 마시고

몇 줄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미치지 않기 위해

미치기 위해

—--------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그래도

온몸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듯

기분 좋은 날

사랑스런 후배 윤정이에게

98년 1월 5일


내게 이 책을 선물해 준 이는 대학원에서 내가 잘 따르던 선배였다. 경상도 사투리가 온몸에 밴, 하지만 미소는 따스하고 목소리도 부드러운 그 선배는 학년은 동급생이었지만 군대와 사회생활을 한 후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나보다 나이는 훨씬 위였다. 낯을 가리고 어린 동생뻘 되는 학생들과 그리 어울리지 않았던 그 선배와 어쩌다 친해졌는지는 잘 기억에 없지만, 졸업 후 서로의 직장이 종각에 있어 시간이 날 때면 점심이나 차를 함께 하며 인생 얘기를 하곤 했었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고 학부를 나와 같은 미학을 전공한 그 선배는 나와 이야기가 통한다고 느꼈던 듯하다.


시와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넉넉지 않고 어릴 때부터 사귀어온 오랜 여자 친구가 더 나이 들기 전에 결혼도 해야 하니 경영대학원을 나와 직장생활을 한 그 선배의 마음이 책장에 남겨진 글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온 후론 서로 연락이 닿은 적이 없었다. 그 선배나 나나 SNS를 할 성격이 아닌지라 연락처를 잃은 후론 찾아볼 겨를도 없이 잊고 지내왔었다.  선배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설마 한스처럼 수레바퀴에 깔린 건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 구글에 선배의 이름과 경력을 조합해 검색해 보았다. 기회를 쫓아 직장을 옮겨 다닐 성격이 아닌지라 한 직장에 계속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반세기도 전에 다니기 시작한 기관에 여전히 몸담고 있었다. 내 찰나의 염려가 무색하게도, 선배는 그 기관의 본부장이 되어 조직 정보란의 경영진에 프로필이 올라와 있었다. 거무스름한, 광대뼈가 불쑥 나오고 깡말랐던 젊은 날의 얼굴은 간데없고 뾰얀 얼굴에 중년의 살이 올라 중후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그 선한 미소와 눈빛은 여전해 보였다. 


선배는 여전히 시를 읽고 술을 마실까? 경영진의 길에서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찾았을까? 다음에 한국에 가면 선배를 만나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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