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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윤정 Aug 23. 2020

무궁화(無窮花)

Rose of Sharon or Hibiscus syriacus 

미국에 이민 와 성공해서 수영장이 있는 근사한 집에 사는 한 부부, 하지만 정작 그 큰집과 수영장을 즐기는 이는 아이를 돌보는 가사도우미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부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하러 나가 해가 져야 돌아오는 바쁜 삶을 사느라, 정작 집에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함을 꼬집은 것이다. 나의 삶도 그랬다. 수영장이 있는 근사한 집은 아니지만 뒷마당에 무슨 꽃이 피고 지는지 알지 못한 채 바삐 하루하루가, 그리고 계절이 지나갔다. 

2017년에 큰아이가 대학으로 떠나고 난 후, 점점 뜰에 나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다. 그때서야 내 뒷마당 한쪽 구석에 무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11년에 이 집에 이사와 산 지 칠 년이나 지난 후였다. 뒷마당 구석에 키 큰 잡초를 베어내다 보니 분홍색 무궁화가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의 전 주인 성이 ‘김 Kim’이었는데 그가 한국인이어서 심었을까? 누가, 언제 심었는지는 몰라도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잠시, 계절이 머물다 지나간 후 잊고 지내왔다. 2020년 봄에 재택근무로 집에 머물면서 작정을 하고 화초와 나무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며 무궁화를 다시 만났다.

활짝 핀 무궁화를 꺾어다가 푸른 수국과 함께 화병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나팔처럼 피었던 꽃은 조개처럼 꽉 닫힌 채였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저녁 무렵이 되니 온종일 닫혀 있던 꽃은 바닥에 떨어지고 꽃대만 훵하니 남아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싶어 찾아보니, 무궁화는 아침에 피어 저녁에 지는 꽃이란다. 하루 만에 생을 마감하는 허무함이라니! 이런 무궁화를 두고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무궁화는 하루 동안에 스스로 영화를 이룬다."라고 노래했단다.

무궁화는 영어로 '샤론의 장미 Rose of Sharon' 혹은 '히비스커스 시리아쿠스 Hibiscus syriacus'라고 부르는데, 샤론의 장미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 중의 꽃으로 언급된 바 있다. 히비스커스라는 말은 이집트 신화의 아름다운 달의 여신 ‘히비스’와 그리스어 ‘이스코’를 합성한 말로 ‘신에게 바치는 꽃’이라는 의미인데, 히비스커스 티는 이집트의 고대 파라오가 즐겨 마시던 차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이 차의 건강과 미에 대한 효능을 인식하여 귀히 여기고 즐겼다니, 그 지혜는 어디서 온 것일까.


히비스커스는 혈압과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항산화 성분인 아스코르브산 (비타민 C)가 많이 들어 있어 면역력을 높일 뿐 아니라 간을 건강하게 한단다. 또한, 이 꽃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과 안토시아니딘은 우울증에 도움이 되고, 탄수화물 흡수를 돕는 아밀라아제 분비를 막아 체중 감량에 좋을뿐더러 식욕을 줄이는 효능도 있어 아침에 이 차를 마시면 식욕을 억제하고 이뇨 작용도 도와 불필요한 수분 배출에 좋단다. 게다가, 노화방지 (Anti-aging) 화초로 소문나 유럽과 한국의 화장품도 많이 나와 있었다. 나는 어찌 이런 걸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수술을 떼어낸 후 물에 씻은 꽃잎 (2020.8.6)

 명색이 한국의 국화인데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그 효능을 알아 활용하지 않았을까 싶어 찾아보았다. 우리 민족은 무궁화를 고조선(古朝鮮) 이전부터 하늘나라의 꽃으로 귀하게 여겼고, 신라는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 무궁화 나라)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a) 신라 시대 삼국통일의 초석이었던 화랑들이 무궁화로 장식된 관을 썼고, 조선시대 장원 급제자에게 임금이 내린 “어사화"도 종이 무궁화로 장식했다 한다. 무궁화의 껍질과 뿌리는 종이의 원료로 사용하였고, 허준의 <동의보감>엔 꽃을 꺾어 말렸다가 차로 마시고 약재로 쓴다고 기록했다.


무궁화 꽃송이를 따서 수술은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헹군 후 찻주전자에 꽃 세 송이를 넣고 뜨거운 물 150㎖를 부어 3분 정도 우려내면 생무궁화 차로 마실 수 있다고 해 당장 한 잔 시도해 보았다. 앞으로 무궁화차나 가루차도 만들고 두피와 피부에 좋다는 히비스커스 코코넛 밀크 에센스까지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무궁화 꽃을 모아야 할까. 무궁화 꽃이 하루만 살고 지니 얼마나 다행인가. 백일홍처럼 백일 동안 피어 있으면 살아있는 무궁화 꽃을 어찌 잘라내 이렇게 좋은 차와 화장품을 만들겠는가. 만물을 주관하는 신의 설계가 다시 한번 놀랍고, 감사하다.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닌 무궁화. 날마다 새로이 피는 그 꽃을 보며 나는 여름의 풍성한 삶을 노래한 서머타임을 흥얼거린다.


a) 출처: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웹사이트, 나라꽃 무궁화의 내력


생무궁화차 만들기

1)  무궁화 꽃송이를 따서 수술은 떼어내고 흐르는 물에 헹군다.

2)  유리 찻주전자에 꽃 세 송이를 넣고 뜨거운 물 150㎖를 부어 3분 정도 우린다.

* 달콤하게 즐기고 싶다면 꿀을 타서 마셔도 되고 기호에 따라 라임 혹은 민트를 추가해도 된다.


무궁화 가루차 만들기

1)  말린 무궁화를 곱게 가루 내어 보관한다.

2)  무궁화 가루 1 찻술 정도를 넓은 그릇에 담고 뜨거운 물 100㎖를 부은 뒤 저어 마신다.


무궁화차 만들기

1)  꽃송이를 따서 수술을 떼어낸다.

2)  찜솥에 보자기를 깔고 무궁화를 살짝 쪄낸다.

3)  소쿠리에 꽃송이를 한 송이씩 떼어서 말린 다음 비닐에 싸서 냉장 보관한다.

4)  찻주전자에 말린 무궁화 5송이를 넣은 뒤 뜨거운 물 150㎖를 붓고 3분 정도 우린다.


히비스커스 코코넛 밀크 에센스

재료: 빻은 꽃잎 2큰술, 코코넛 밀크 2큰술, 꿀 2큰술, 요거트 2큰술, 알로에 베라 젤 4큰술

재료를 골고루 섞은 후, 두피와 헤어에 바르고 30분간 기다린 후 따스한 물로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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