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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Feb 08. 2016

남편의 용도

원인

남편은 천생이 부지런한 사람이다.  설겆이도 잘하고 재활용도 잘하고 음식물쓰레기도 잘 내다 버린다. 감탄할 때도 많다.  


신혼때 내 머리가 길었다. 화장실이 두개라서 우리는 각각 하나씩의 화장실을 사용했었는데 나는 샤워할때마다 머리카락을 집어내는게 귀찮아서 발로 머리카락 뭉치를 끌어내며 샤워를 하고 끝나면 다시 머리 뭉치를 수채구멍위에 올려놓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느날 무슨이유인지는 잊었지만 남편이 내 화장실을 사용한 후로 머리카락 뭉치가 없어졌다. 그때 어찌나 놀랐던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을 할 정도다. 결혼 전 같이 살던 남자들에게서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편은 샤워를 하고 나면 머리카락을 휴지에 싸서 없앤다.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유용한 사람인지 감탄스럽다. 남편이 그렇게 부지런 바지런 한게 너무나 낯설었지만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남편이 결혼해서 평생 설겆이 한번 안 해 준다는 여자를 만났다. 그럴수도 있겠지 했다. 우리 친정집에 그런 인간들 많으니까.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을 알게됐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그녀들 - 설겆이 한번 안해주는 남편을 둔-이 공통점이 있다는것이다. 


그녀들은 밥먹은 후 밥상에 퍼지지 않는다는 점, 밥먹자마자 단 거하나 물고 티비앞으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점, 스스로 수채구멍의 머리카락을 항상 말끔히 치운다는 점, 음식물 쓰레기가 썩어서 날파리가 꼬일 때까지 방치하지 않는다는 점, 매주 재활용 날자에 내다버림으로서 베란다를 쓰레기하치장수준으로 버려두지 않는다는 점.


남편의 부지런함은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발동하는 기제라는 점.


나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부지런함을 발동 시키며 평생을 내곁에서 동동대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내가 불운했다면 나의 게으름으로도 절대 발동되지 않는 남편을 만났을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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