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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Mar 29. 2021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8)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다시 고민하던 날들이, 대학 수업 후 어느 날 저녁,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리가 되었다. 복잡하고 지친 머리가 거의 회전이 멈춰갈 즈음, 아무 생각 없이 집 안 거실에 들어섰는데, 홀로 어두운 조명 속에서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조용히 보고 계셨다. 화면에는 경극이 펼쳐지고 있었고 분장을 한 주인공 남자 두 명이 장렬한 표정으로 연기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방도 벗어던지지 못한 채로 화면 앞에 앉아 버렸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고 아버지가 조용히 침실로 들어가신 후 거실에 홀로 멍하니 있던 나는 퍼즐이 맞춰지듯 뭔가 확실해졌다. '저거다!'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벌써 감이 오실 거다. 영화는 "패왕별희"였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잘하고, 어떤 책이든 펼쳐서 다양한 내용을 탐구하기 좋아하고, 일기에 있지도 않은 상상한 스토리를 적었던 소녀가 떠올랐다. 나는 예술가적 스토리텔러였다. 그림만 그려서도, 남이 적어놓은 책만 읽어서도, 나를 담을 수 없는 제품을 만들어서도 안 되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상상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이란 점이 분명해진 것이었다.


이날 이후, 영화가 뭔지, 이건 어떻게 하는 건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이란 책은 다 뒤져보고, 다행히 내 대학교엔 영상과가 있길래 교수들을 불쑥 찾아가 질문을 퍼부었다. 친절한 교수들은 영화를 공부하는 영화학교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또한 영화를 만드는 회사들도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며칠 고민한 나는 디자인과를 때려치우고 영화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모님은 뜻밖의 제안을 하셨다. 직접 미국의 영화학교를 탐방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과감한 결정을 내려주신 부모님이셨다. 아마 미국이라는 먼 나라에 나를 홀로 보내기 걱정도 되고, 위험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현지를 직접 보길 원하셨던 것 같다. 바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나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내가 고른 영화학교들을 방문하기 위해 동부에서 서부까지 이르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이때 NYU Tisch, Parsons, UCLA, Pasadena, USC, 등에 직접 찾아가, 담당자들과 면담은 물론 학교 시설, 주변 환경 및 분위기, 그리고 재학생들까지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동부에 계신 친척 집, 서부에 계신 친척들도 만나 뵙고 인사드렸고 덤으로 유명 관광지도 군데군데 구경할 수 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90년대는 그렇지 못했다. 직접 찾아보고 확인해야만 했고, 내 눈으로 보고 나니 현실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해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상태, 작품은 커녕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린-어른이, 게다가 공짜로 다니는 싱가포르의 대학교와 달리 수백만 달러가 넘는 엄청난 액수의 학비와 생활비를 부모님께 구하자니 염치없는 바람이라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 좀 하자고 가족이 거덜 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나는 영화학교 행은 포기하고 부모님 말씀대로 우선 졸업하고 난 후 영화를 만드는 경험을 쌓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미 디자인과에서 마음이 떠난 나는 동창들과 달리 부담 없이 과제를 해치웠고 어이없게도  무사통과되 졸업 시험을 완료했다. 하지만 나의 여정은 다시 시작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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