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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Mar 27. 2021

영화감독이 되는 지름길은?

10년의 결과 - 내가 얻은 불편한 진실

한국에 돌아와 혼자 고군분투하며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으로 장편 영화 데뷔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지 벌써 10년이다. 첫 10년은 가족을 위해 우선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며 가족 빼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모국의 문화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물론 이때도 시간 나는 대로 연구하고 공부하며 열심히 시나리오를 썼다. 그렇게 차근차근 영화계 사람들과 산업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고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몇 명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생겼다. 여러 영화제 피칭 랩과 마켓 참여와 제작지원금 수상도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데뷔를 못한 감독 지망생이다.


왜 그럴까?


가장 확실한 이유는 내가 못났기 때문에,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서, 작품의 완성도가 전문가들의 기대에 못미지치거나 달라서 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말을 해주는 프로듀서는 없었다. 대신 내가 들은 말의 가장 실망스러운 요지들은; 내가 '나이가 많아서', '30대에 이미 장편 영화 데뷔를 했어야 해서', '단편 영화로 수상을 했어야 해서', '상업 영화가 아니라서', 등이다. 그들 자신이 신인을 키울 용기나 리스크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실컷 내 작품에 대한 비판만 들려줄 뿐이다. 물론 그 덕분에 내 작품을 고치고 다시 개발하면서 더 나아지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보기에 감사한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이를 들먹이거나 어느 나잇대에 뭘 했어야 한다는 말, 수상 경력을 따지는 것은 잠재력을 가진 신인을 발굴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느 나잇대에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목표를 세우고 노력은 하겠지만 산업의 기회를 잡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한다. 정해진 나잇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도 이상하기 그지없다. 사람은 각자 인생의 흐름이 있고 굴곡이 있으며 변화가 다르니까 말이다. 수상도 100% 실력이라기 보단 경쟁에서 이기는 확률 싸움이기도 하다. 이처럼 객관적이지 못한 이유들로 신인을 평가하고, 잠재력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의지를 꺾어버리는 사고방식이 한국 사회에 만연하다.


그럼 그건 또 왜 그럴까?


한국어, 한국 서열, 한국 사회 구조, 사회 시스템이 모두 영향을 준다고 본다. 독특하고 멋진 언어이지만 이미 언어적 서열구조가 내포된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 구석구석 나이와 연결된 사회적 위치를 따져 사람을 차별하고, 자신의 가치 판단과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서열 구조의 영향을 받으며, 개인들도 무의식적으로 이성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못한 데이터를 상식인양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절대적인 진실이자 영원히 바꾸지 못할 원칙처럼 말이다.


물론 다른 문화나 사회도 신인 발굴이나 잠재력을 키우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오류 없는 가치 평가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뻔한 오류를 자주 발생시키는 한국의 서열 또는 나이 차별은 이 사회와 나라 전체를 혁신하고 개인의 삶을 풍성하게 해주지 못한다.


차별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여파를 줄이도록 교육하는 시스템, 리스크를 부담하고 모험을 지원하는 체계, 항상 최대한 자신의 편견에 주의를 기울이고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소양을 갖춘 전문가들이 없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조건들로 나를 평가해버리는, 기회를 고루 주지 않는 사회는 영원할 것이다.


그래서 지름길은?


어릴 때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이 잘났다고 믿고, 직접 작품을 써서 감독으로 어필하고, 집을 팔아서라도 투자를 받아 장편 영화를 만들어서, 어디에서라도 최대한 많이 수상을 했었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나는, 그래도 꿈을 꾼다.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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