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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진희 Feb 02. 2021

나의 인생 돌아보기

싱가포르에 적응하기 - 15세에서 21세까지 (PART 7)

정확하게 며칠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대략 2~3주 정도 한국에 홀로 처음 날아가서 여기저기 다니며 촬영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서울에 계시던 외할머니댁에 머물면서 서울 지리와 여행에 사촌언니와 오빠의 도움을 받았다.


대학생이었던 사촌 언니와 오빠를 따라 한국의 대학교 캠퍼스에 들려 청강도 해보고, 동네 중학교에도 불쑥 들어가서 아이들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서울 토박이로 선발된 삼촌을 따라 전통 행렬에도 따라가 보고, 그간 편지로만 연락하던 펜팔 친구를 만나러 인사동을 헤매고, 일일 호프 포차에 들려서 술과 놀이 문화도 경험해보고, 유명한 곳, 젊은이들이 다니는 곳, 등을 버스와 전철을 타고 이리저리 누볐다. 아직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자유롭게 사용되던 시절이 아니어서 지도책과 전화카드 및 동전을 항상 챙기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디자인 학교 수업에 필요해서 구매한 묵직한 내 니콘 수동 필름 카메라도 목에 걸고, 뭐든 흥미롭다 생각되면 마구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10살 때 떠나온 한국은 내게 다른 나라처럼 모든 게 새로웠다.


아마도 이때 내가 '한국'이란 곳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동안은 이국 땅에서 공부하고 성장하느라 모국이 뭔지 그리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내 소감을 말하자면, 뭔가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인 듯한데, 왠지 모르게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그냥 아무 집에나 쑥 들어가서 밥상에 끼어 앉아도 뭐라 하지 않고 숟가락을 내어줄 것 같은 그런?... 하지만, 그건 나 혼자의 느낌이었다. 한국어 말투나 제스처가 왠지 달라 보이는 나를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며 차가운 몸짓으로 거리를 두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그래도 지독하게 나쁜 경험은 없었다. 주로 친척의 보호 아래 있었고, 가만히 있으면 그들과 다를 게 없었으니까.


모국, 본인이 태어난 나라는 한 개인에게 선택 밖의 장소인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이 선택해서 국적을 취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출신'이 어디냐에 따라서 정체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그 장소는 특정 사회 문화, 집단 성향 및 철학과 역사가 부여된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 똑같이 그 영향을 소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 깊이와 결과는 다르다. 다만,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그 영향은 존재한다는 뜻이다.


나는 그 영향을 성장 후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선택적으로 소화한 경우에 해당한다. 즉, 태어난 곳에서 쭉 자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국 사회의 영향을 총체적으로 받은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나도 이해하게 되었는데, 공부한 것과 체득한 것은 다르기 때문에 '분별력'이 생긴다는 장점이 있다. 즉, 모국에 대해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과 현지인 다수의 경험이 동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대한 공부는 이때부터 시작되어 귀국 후 이어졌고, 나름 지적 감정적 논리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이때 당시의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떤 한국인이 될지 알지 못했다.


딱 하나,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좋든 싫든 언젠가 내 방식으로 깊이 있게 소화해야 할 부분임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왔는데, 이때부터 내 부모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타지로 날아와 적응하고, 아이들을 어떤 철학으로 교육시켰는지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해졌다랄까? 쪼끔 성숙해진 기분으로 내 고민은 결론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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